[내가 겪은 멕시코 공권력①] 피해자를 범인으로 만들기 ‘밥 먹듯’
해외에서 사업하는 것은 국내보다 몇 갑절 힘들다고들 한다. 언어가 안 통하고 문화가 다르며 특히 법과 제도보다 물리력이 우선인 국가에선 더욱 그렇다. 게다가 공권력이 불완전·불공정한 경우 숨이 턱 막힌다고 한다. 멕시코도 그런 국가 중 하나다. 1968년 올림픽과 1970년 월드컵을 치르며 남미의 선도국가로 알려진 이 나라는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성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게 교민들 이야기다. 현지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불리는 홍금표 대표가 멕시코 공권력의 민낯을 고발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시아엔>은 멕시코 산타마르타교도소에서 20개월째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양모씨 사건을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홍금표 대표의 기고문을 4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아시아엔=홍금표 멕시코 현지 기업인] 나는 멕시코에서 만 33년을 살았다. 이 기간 동안 주로 치안부재에 기인한 위험상황을 여러 번 마주하였다. 실제로 나에게 물리적 위해가 가해져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적도 있었다. 그렇다 하여도 ‘코르도바(C?rdoba) 사건’만큼 위험했던 일은 없었던 것 같다.
7~8년전 일이다. 그날은 모처럼 볼링장에서 공을 굴리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의 Bol Insurgentes(멕시코시티에 있는 유명한 볼링장)는 넘치는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전날 토요일 밤 한국 출장에서 돌아온 나는 지인들과 함께 내기 볼링에 한창 열중하고 있었다. 내기라 하여야 고작 음료수나 게임 값을 거는 정도였지만···. 한참 게임에 열중할 때 휴대폰이 계속 울려댔다. 회사 임원으로부터였다.
우리 회사 차량을 목표로 한 강도사건에 대한 보고였다. 당시 L전자의 휴대폰을 적재한 우리 회사의 운송차량은Veracruz주의 C?rdoba시 근처를 시속 약 100km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앞뒤로 한대씩 2대의 무장경호 차량이 동행하고 있었지만 시티의 경계를 벗어나자마자 짙은 선팅을 한 4대의 검정색 밴이 순식간에 각 차량에 바짝 달라붙었다. 중화기로 무장한 12인조 강도단이었다.
비교도 되지 않는 화력에 우리측 경호차량은 바로 제압되었고 그들은 신속히 운송차량에 탑재된 GPS 전력 케이블을 사정없이 잘라 버렸다. 다행히도 강도들은 그 차량 하부에 착탈식 GPS가 하나 더 부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 회사의 모든 운송 차량에는 기본적으로 GPS가 장착되어 있다. 이는 차량의 운행 관리보다는 사실 강도사건 발생 시 차량의 위치추적용으로 더 가치가 있다. 어느 날부터 이 GPS로 인하여 강도들의 업무 성공률이 바닥을 치게 되자 그들은 습격과 동시에 먼저 GPS 연결 케이블을 절단하기 시작하였다. 강도들도 진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우리는 무장 경호 차량을 배치하기 시작하였으며 발견이 쉽지 않은 착탈식 GPS를 하나 더 트럭 하부에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그날 강도들이 인지하지 못했던 이 착탈식 GPS는 쉬지 않고 계속 강탈당한 우리 차량의 좌표를 실시간으로 보내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 데이터를 즉시즉시 현지 공권력에 전달하여 강도들을 전부 체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도 없었고 화물도 안전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호회사 직원 2인과 함께 피해자인 우리 직원 2명도 C?rdoba교도소에 수감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이야기를 회사 임원은 내게 보고하고 있었고, 그도 자초지종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의문은 그 다음날 월요일, C?rdoba교도소에서 쉽게 풀렸다.
당시 멕시코에서는 한국의 L사 휴대폰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수입 통관이 끝난 휴대폰은 L사 창고에 옮긴 후 우리 회사를 통하여 멕시코 전역에 아주 바쁘게 운송되고 있었다. L사 휴대폰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면서 덩달아 강도들에게도 휴대폰은 강탈 1순위의 최고 인기 품목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사실 강도들이 가전 택배 차량을 털어 봐야 전체 인보이스 밸류는 미화 10만달라 전후인데 비해 휴대폰 운송 트럭을 제대로 털면 경우에 따라 100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을 단번에 올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가전은 부피가 커서 처리하기 조차도 쉽지 않지만 휴대폰은 소형이어서 운반과 은닉이 수월하며 워낙에 부가가치가 높아 강도들이 선호할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우리 회사 휴대폰 택배 차량 강탈사건은 멕시코시티 내에서도 잊을 만하면 발생하고 있었다. 착탈식 GPS의 존재를 강도들이 인지하고 나서는 전파교란 장비까지 동원하여 모든 GPS 기능을 무력화시킨 다음 유유히 운송 중이던 휴대폰을 전부 털어 가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사건은 멕시코에서는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보험처리에 필요하여 강도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건마다 신고하고 공식적인 진술서도 여러 차례 작성하였지만 단 한번도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언젠가는 멕시코 북부 지역으로 L사 휴대폰을 운송하던 중 자카테카스(Zacatecas) 부근에서 강도를 당하여 미화 100만달러 상당의 휴대폰을 몽땅 털린 적이 있다. 이 역시 지방 매스컴에조차 보도되지 않았다. 그만큼 더 험악하고 흉악한 범죄가 멕시코 전역에 창궐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건 발생 다음날 나는 멕시코시티를 출발하였다. 교도소에는 우리 회사에서 15년 넘게 근무하고 있던 페페(Pepe)도 구치되어 있었다. 빨리 그를 만나봐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베라크루스(Veracruz) 행 고속도로를 타고 코르도바교도소까지는 4시간 반 정도 걸렸다. 흉악범들을 가둬놓은 곳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였다. 물론 내부는 지옥이었다.
면회실에 나타난 우리 직원들은 얼굴 여기저기에 멍 자국이 선명하였다. 페페는 오른쪽 옆구리까지 감싸 쥐며 고통스러워 했다. 둘 다 교도소 안에서 집단구타를 당한 까닭이었다. 면회는 예상 밖으로 아주 자유스러웠고 우리의 대화 내용을 듣거나 기록하는 근무자도 없었다. 직원들의 얼굴엔 두려움과 안도의 표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일단 폭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각자의 ‘보호비’부터 내주겠다는 나의 말에 연신 “Gracias Se?or!”를 반복하였다.
C?rdoba 근처에서 우리 차량을 턴 강도단은 알고 보니 아주 악명 높은 전국구 Z의 조직원들이었다. 그래도 감추어진 착탈식 GPS 덕분에 신고를 받은 연방경찰 기동대에 의해 12인조 무장강도들은 일망타진되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우리 회사 직원 2명과 무장경호원 2명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출동한 연방경찰 기동대와 Z의 조직원들은 이미 잘 아는 사이였으며 심지어 일부 경찰과 Z 조직원은 서로를 Amigo(친구)라 부르며 이렇게 호칭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 상황을 목격한 우리측 4명(직원 2명과 경호대원 2명)은 엄습하는 공포감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공권력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잘못하면 오히려 공권력의 묵인 하에 땅속에 묻혀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최초 신고를 한 우리 회사를 비롯한 경호회사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럴 우려는 없을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그래도 이런 감시가 없는 경우라면 다분히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공권력과 범죄조직 사이의 결탁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은폐하려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담하게도 그들은 피해자들 앞에서 평소의 친분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는 최소한 그 지역의 공권력이 전반적으로 범죄집단화되어서 고발이나 제보 등 범죄 대응 시스템이 완전히 작동을 멈췄다는 증거였다.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유착관계를 초월하여 상당수 범죄집단 조직원들이 아예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을 정도로 멕시코 전역의 범죄구조는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쯤 되면 경찰서 역할을 하는 코르도바시의 Ministerio P?blico(MP)에서도 제대로 된 사건처리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사건현장에서도 연방경찰 기동대는 무장 경호원 2명을 포함한 우리 측 4명을 협박하며 사실과 다르게 각색된 내용을 진술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러다 보니 MP로 이송된 4명의 진술내용은 일치할 수가 없었고 이를 빌미로 피해자인 우리측 4인을 오히려 공범으로 몰아 C?rdoba 교도소에 수감시킨 것이다.
동시에 12명의 Z 조직원들 중 가장 얼뗘보이는 2명을 연행·구속하고 나머지 10명은 현장에서 바로 풀어 주는 불법행위를 공권력 스스로 아주 자연스럽게 저지르고 있었다. 사건 규모에 비추어 최소한 조직원 2명 정도는 연행해야 한다고 경찰 기동대장이 Z의 행동대장에게 이해를 구하는 장면을 우리측 4인이 무릎 꿇려 있는 상태에서 모두 목격하고 있었다. 경찰 기동대장과 조직범죄단 Z의 행동대장은 누가 듣건 말건 개의치 않고 행동했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 직원 페페(Pepe)는 졸지에 강도사건의 공범이 되어 있었다.
페페는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해 주리라 생각했는지 면회가 끝날 무렵엔 예전의 평온한 얼굴을 되찾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채로 잠 들었던 나는 눈을 떠 보니 벽에 걸린 시계는 낮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판사 면담을 신청해 놓고 이미 1시간도 더 지났는데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였다. 저쪽에서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Secretario de Acuerdo(조정관)은 나의 시선을 의식했을 터인데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급행료를 받아 챙길 때는 언제고 괘씸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