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도전100인②] 청소년상담가 이정기 추천 안중근 의사의 ‘보국헌신’

[아시아엔=조영관 도전한국인운동본부 본부장] 병신년을 마무리하는 요즘 국내외적으로 매우 불안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은 ‘헬조선’을 외치며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취업과 결혼 출산 모두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때 생각나는 이가 있다. 한국사춘기심리상담연구소장 이정기 박사다. 루터대 상담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는 이정기 박사를 만나 2016년 대한민국을 사는 청소년에게 길을 제시해달라 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안중근의사에게 답을 찾자”고 했다. 이 소장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주권을 강탈당한 내 땅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안중근 의사가 롤모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영관: 심리상담을 전공하셨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이정기: 저는 주로 청소년과 학부모상담을 합니다. 학교나 기관의 요청에 의해 강연을 하고 틈틈이 청소년 관련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강의 주제는 심리상담 현장에서 경험한 사례를 중심으로 하다 보니 스트레스, 우울, 중독, 폭력, 자살, 관계회복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습니다.

조영관: 상담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안중근의사의 애국심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보시나요?
이정기: 단순하지만 어려운 질문입니다. 안 의사의 애국은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기 때문에, 태평성대의 애국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무엇보다 절박하고 위태로운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현실 속에서 누군가는 목숨을 내건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입니다. 안의사의 애국은 자기희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자기희생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는 될 수 없습니다. 바로 자기사랑의 역발상이 자기희생으로 나아가게 된 거죠. 자기사랑은 나라사랑으로 이어지고, 뒤집어 보면 나라사랑은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조영관: 이박사님이 하시는 일을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시죠.
이정기: 저는 상담전문가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갈등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부모들을 치유하는 상담자입니다. 더불어 상담현장에서 많은 경험들을 강의를 통해 청소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만나고 있습니다. 현재 루터대학교 상담학과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중독상담과 예방강사로 활동하며, 한국사춘기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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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참 애국자 청년 안중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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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106년 전으로 돌아간다. 젊은 나이에 세상의 아름다움을 맛보기도 전에 육신을 몸을 벗어야 하는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여순감옥이다. 이곳에서 만난 안의사는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조언을 할 것인가?

이정기: 안중근 장군님! 반갑습니다. 조국의 존폐 위기 가운데 우리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고통을 감당하시는 모습을 뵈니 우리 자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
부인 김아려여사와 두 아들
?어머니 김아려여사

신에 대해 부끄러움과 함께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후손들은 안중근 장군님의 애국심에 감사와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나라의 리더십이 부재하고 애국의 의미와 가치가 상실한 지 오래입니다. 대한민국 청소년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어떤 신념이 필요한 지 배우고 싶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다 ‘믿음·소망·사랑’

안중근의 삶을 돌아보면 가장 자신에게 충실한 삶이었다고 보여 진다. 안중근은 자신의 삶의 가치를 이미 완비한 사람으로서 누구와 대적해도 이겨낼 수 있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던 근본정신은 무엇인가? 이를 통해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어떤 귀감이 되는지 직접 만나서 듣는다.

#1 안중근의 믿음

안중근의 믿음의 뿌리는 독서와 신앙이었다. 그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안중근은 독서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다졌고, 신념의 기초는 신앙이었다. 죽음을 맞이한 순간 가장 두렵고 무서웠을 공포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안중근의사 사형이 집행되던 날 일본관리가 물었다.

“사형을 집행하려 합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 소원이 무엇입니까?” ?안중근은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5분 동안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의 나머지 부분을 다 읽고, 관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형장에서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에도 그는 “3분의 시간을 주십시오” 하고는 기도를 마친 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참 신앙인의 자세가 그대로 묻어난다.

#2 안중근의 소망···대한 독립과 나라사랑

안중근의사의 잘린 손가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안중근은 말한다. “옳은 일을 짓밟는 것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을 보거든 구해줄 마음을 가져라. 그리고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을 때는 목숨을 던져 나라를 바로 잡는 데 힘쓰는 사람이 되라.”

안중근은 거사 전 해인 1909년 초 뜻을 같이 한 동지 11명과 동지단지회를 결성하였다. 그는 왼손 네 번째 손가락 마디를 끊으며 마음을 다잡기 위한 결의를 다졌다. 안중근은 나라의 독립을 위한 결연한 마음을 표현하면 아마 다음과 같지 않았을까?

“나라는 우리의 몸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몸이 없다면 정신이 머물 수 있겠습니까? 몸이 건강해야 정신이 건강할 수 있는 법이지요. 나라는 나의 몸인 동시에 우리 가족의 몸입니다. 또한 우리 민족의 몸인 것입니다. 내가 내 몸을 던져 이 나라를 구하는 것은 크게는 국민을 위한 것이요, 작게는 우리 가족을 위한 것입니다. 비록 나는 이 땅에서 몸이 없어져 정신이 머물 수는 없지만 나를 기억해줄 가족과 수많은 애국동지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단순하게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도 나는 목숨을 바칠 수 있는데, 이 육신으로 우리나라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겐 큰 영광이고 더 없는 기쁨일 수밖에 없습니다.”

#3 안중근의 사랑

이땅에서 부모의 같은 혈육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다. 누구보다 어린 시절부터 투닥거리며 함께 한 이불 덮고 작은 반찬을 나누며 지낸다는 것은 이 세상 존재가치의 가장 소중한 일이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사랑은 마지막 순간까지 각별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신앙과 독서를 통해 내 안에 큰 꿈의 씨앗들을 심어주셨습니다. 인생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 소중함을 유산으로 물려주셨습니다. 비록 32살 짧은 인생을 살다 가는 불효자지만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나를 응원하고 계십니다. 보내주신 수의는 어머니가 손수 오랜 시간 낮밤을 가리지 않고 지은 것입니다. 곧게 다려진 수의는 어머니의 몸과 같은 것입니다. 어머니가 나에게 이 옷을 입고 죽음의 길을 두려워하지 말고 가라고 한 것은 어머니가 품어주시겠다는 메시지입니다.? 수의 속에는 어머니의 눈물과 한이 서려 있습니다. 어머니는 혹시라도 두려움이 있다면 자식의 마지막을 자신의 품으로 안아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말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사실 어머니도 많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두려움을 수의를 통해 승화시킨 것이지요.?나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겨서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품어주던 따스함을 느끼며 떠날 것입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끝까지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세상에 또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요. 효도하고 싶었는데 죽음을 선물로 드리는 불효자입니다.”?

#4 안중근의 빈무덤 무얼 뜻하나
안중근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형제들에게 자신의 몸을 독립이 되면 대한민국에 묻어달라고 부탁하였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효창공원에는 빈 무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안의사가 편안히 영면할 거처를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여러분, 제 무덤은 비록 내 유골이 들어있지 않지만, 내가 독립을 원했던 그 대한민국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나의 새 몸입니다. 나를 오래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쩌면 내가 잊혀질 수 있도록 존경받는 지도자들이 탄생되기를 기원합니다.”

 

*다음 도전 한국인은 다산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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