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도전 100인①] 조영관이 묻고 박희영이 추천하다 ‘이순신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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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관 도전한국인운동본부 본부장

[아시아엔=조영관 도전한국인운동본부 본부장] 병신년을 마무리하는 요즘 국내외적으로 매우 불안하고 예측불가능한 시점에 와 있다. 오늘 도전한국인협회 박희영 회장에게 과연 이 시대에 어떤 리더십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박 회장은 단 1초도 주저함이 없이 “이순신 장군의 고견을 들으라”고 했다. 박 회장은 “난세의 영웅이 나온다고 조선왕조 500년간 가장 위태로웠던 시기에 조국을 외침에서 막아 이후 300년간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길 수 있게 한 토대를 마련한 분”이라고 이순신 장군을 소개했다.

%ec%9d%b4%ec%88%9c%ec%8b%a0_1타임머신을 타고 430년 전으로 날라갔다. 혼탁하고 혼돈의 시대, 과연 답은 없는 것인가? 이순신 장군을 만나기 위해서다.

-장군님 반갑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힘들어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요? 후손들은 장군님을 ‘최악의 상황에서 완승의 길을 찾아낸 성웅’이라고 평가합니다.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인지요?

=대한민국이 리더십의 부재로 겪는 심리적 불안과 위기감에 휩싸여 있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 리더십은 더욱 빛나는 법이라오.

-최근의 여러 사태에서 리더십의 좋은 사례가 될 만한 리더에 가장 근접한 분은 이순신 장군님이라고들 합니다.

인기영화였던 ‘명량’을 통해서 ‘명량해전’을 한번 알게 됐지요. 명량해전은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해군사의 찬란한 승리의 전투로 저희는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전쟁을 치렀지만 어명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직되고 백의종군했다오. 그리고 12척의 배를 이끌고 ‘사즉시생’ 죽기를 각오하며 싸워 마침내 승리를 거뒀어요.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정신이 바로 그것이오. 특히 정치지도자들에게 그러한 정신이 절실하지오.

?-장군님의 리더십은 소통과 솔선수범의 리더십으로 배웠습니다.

=맞아요. 장수는 직접 병사들을 설득하며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수직사회인 내 시대에도 그러할 진대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시민사회인 지금 그러한 실천적 리더십이 더욱 요구되지요. 내 시대에 어떤 이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병사들을 지휘하던 이도 있었지만, 그들은 이름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지요. 나는 배 밑바닥으로 내려와 노를 젓는 격군과 함께 노를 함께 젓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오. 아들같고 조카같은 병사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게 얼마나 축복이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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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영 도전한국인협회 회장

-장군님의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격군들은 감동을 받으며 함께 혼연일체가 되었지요. 역경을 딛고 솔선수범하는 이순신 장군님의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도전하는 위대한 인재상으로 국민들은 한결같이 믿고 있습니다. 장군님 스스로 자신에 대해 평가해주십시오.

=나는 변방의 조그만 규모의 부대를 이끌다 전라좌수사가 되었다오. 나는 체구가 크고 수염이 붉으며 담력이 좋다고도 알려졌지만 그게 뭐 대단합니까? 나는 서른둘 늦은 나이에 과거에 간신히 급제해 멀리 함경도땅에서 요즘 말로 물을 먹고 지냈지요. 하지만 어느 곳에서나 훈련과 공부에 절대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성공은 기적처럼 오는 게 절대 아니란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준비하는 사람만이 도전을 해도 성공하는 법이라오. 나는 상관에게 밉보이고 더욱이 임금의 눈에 나기까지 했지만, 결코 낙망하지 않았다오. 내 인생은 말 그대로 냉탕온탕인데, 백의종군하기도 하고, 선조임금에 의해 종8품에서 종4품으로 오르기도 했어요. 전쟁 직전에는 사간원이 현감 이순신을 좌수사로 올리는 것을 비판했는데, 임금은 인재가 부족해 불가피하다며 단호하게 내 편이 돼주었지요.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낙하산 인사였어요. 하지만 조선을 구했기에 이해가 됐던 겁니다.

-장군님은 세계 해전사에서 가장 모범이 될 제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넬슨 제독을 능가하는 분으로 일본 해군은 장군님의 전략과 전술을 교육받고 있다고 합니다.

=역사책에서 나와 있듯이 11번 나가 29번의 전투를 치렀다오. 병력을 한 번 움직이면 매번 3번 가량 왜군과 싸운 셈이고, 놀랍게도 매번 압도적으로 이겼다오. 조선 수군의 피해가 없는 전투도 절반이 넘었구. 안골포 해전과 부산포 해전에선 왜군 8천명을 무찔렀지요. 조선의 군대는 비록 전사자가 6명뿐이지만, 그 6명은 왜군 8천명이 아니라 8만명 하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들들이었다오. 그게 나는 너무 가슴 아프다오.

-지금 대한민국 해군은 “우리는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속상할 일, 즉 겪지 않으셔야 일도 많으셨지요?

=동맹이라던 명나라 수군은 게으르고 무능하며 탐욕스러웠고, 우리 임금은 그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다오. 나는 무기, 목재, 식량, 자금, 의류, 병력을 오로지 스스로 채워야 했다오. 어느 날 왜군이 크게 움직인다는 정보가 들어왔으나, 악천후와 불리한 전황이 겹쳐 출정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게 빌미가 돼 한양으로 끌려가 고문당하고 다시 백의종군해야 했다오. 그 사이 조선 수군은 원균과 함께 패해 무력해졌고 조정은 육군에 합류하라는 명을 내렸다오. 하지만 나는 열두 척을 이끌고 기적처럼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오.

-저는 한산대첩, 노량해전을 가장 위대한 승리로 여기며, 명량해전은 가장 극적인 승리라고 부른답니다.

=허허 일리가 있는 말이오. 함선은 열두 척뿐이며 사기는 바닥이고, 수군은 해체될 뻔했으니. 몸과 마음은 고문과 백의종군으로 상처뿐이고 무엇보다도 충성의 대상인 임금이 나를 고문하니 대체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할까 이런 생각도 했지요. 그때 내 생각은 ‘장수가 단순히 전략전술에만 뛰어나다면 그것은 민족의 불행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묵묵히 배를 건조하고, 병력을 모으고, 모든 것을 계획해 전투에 나섰다오. 유비무환이라고 먼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이 필요한 거라오.

-장군님 오늘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한지 400년이 넘었는데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장군님을 그리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삶이 너무 팍팍하고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2, 제3의 이순신 장군이 이땅에 나올 수 있도록 함께 염원해 나가겠습니다. (다음호엔 안중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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