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산책] 그림으로 읽는 박정희 할머니의 육아일기

s22c-116120616400[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일상생활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과거사를 찾아내는 것은 매우 큰 발견이자 바꿀 수 없는 기쁨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내가 지향해야 할 방향과 동력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시대 경성여자사범을 우등으로 졸업한 활동적이고 헌신적인 여성이 5남매를 낳아 한글을 배울 때까지 쓴 육아일기와 가족이야기가 있다.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걷는책, 2011년 9월1일 3쇄 발행)가 그것이다.
저자 박정희(1923~2014)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훈맹정음’으로 잘 알려진 한글 점자를 창안한 송암 박두성의 딸이다.
그는 인천 제2송림보통학교 교사 시절 평양에 사는 의사에게 구혼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명세서’를 보낸 장면 등 을 가감없이 책에서 털어놨다. 약간의 자랑마저 없을 수 없는 이런 류의 책이 갖고 있는 한계를 박정희는 대담함과 솔직함으로 극복해 냈다.
2년 전 이맘 때 아주 춥던 날, 인천의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그의 영정은 평생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 온화함과 강직함이 배어있었다. 나름대로 출세했다고 평가받는 자녀를 둔 여느 ‘난사람’ 집안의 마지막 가는 길과 달리 일생을 험난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 곁은 지킨 발자취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그래서 훈훈했다.
그후 반년 쯤 뒤 고인의 넷째딸인 유순애 배재대 교수가 이 책을 건넸다. 유 교수는 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예 육군소장)의 부인이다.
저자는 모든 생활이 공부와 다름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대했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었다. 힘든 가사 속에서도 육아일기를 쓰며 살림살이 자체를 예술 창작으로 승화시킨 감각과 지성이 번뜩였다. 그는 나이 드는 것에 거역하지 않고 자연에 따라 늙으며, 젊었을 때의 열정과 패기를 노년의 성숙함으로 버무릴 줄 알았다.
“노년기를 맞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아름답게 늙어가기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
그의 인생을 아주 심플하게 요약하면 이럴 수 있겠다.
“어려운 형편에서 앞을 못 보는 이들에게 빛을 전해주겠다는 뜻을 품은 부모의 딸로 태어나, 가난한 의사의 아내가 되고, 4녀1남의 어미가 되어 11명의 손자, 7명의 증손자를 돌보다 91세로 별세하다.”
이 책 앞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자녀들에게 무엇을 줄까 고민하는 이 시대의 부모들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책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육아일기 몇 대목과 일기마다 새겨놓은 목차를 읽다보면 초보 시부모, 장인장모들이 고개를 절로 끄덕일 것 같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의 성정이 얼마나 호쾌한지 쉽사리 눈치챘다.
언젠가는 산수답안지가 백점이기에 내가 두 팔을 번쩍 들면서 칭찬했더니 ‘우리 반에서 백점 맞은 애가 절반도 더 된다’ 하기에 그야말로 더더욱 신이 난다고 칭찬해주기도 하였다.
육아일기는 머리말과 1.이야기의 가지가지 2.낳은 날과 시간 3.당시의 세계정세 4.출산 당시의 식구들 5.당시의 집 구조 6.자녀들 이름과 별명 7.출산 당시의 부모 상황 8.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9.아이들을 키워준 분 등 가족 상황은 물론 사회분위기까지 소소하게 적고 있다.
맞사위 권태환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이렇게 썼다.
“매일매일이 인천 어머니에게는 새로운 날이다. 그녀는 감사와 간구로 하루를 시작한다. 모든 일에 눈물로 감사하고 성령의 인도를 구한다. 그리고 힘찬 기쁨에 넘치는 하루가 이어진다. 그가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에게 삶의 증거요, 그녀를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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