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계엄령 선포’ 택도 없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50년 6월 25일 인민군의 남침이 개시된 뒤 이승만 대통령은 바로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았다. 이는 이승만이 선후, 완급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계엄령을 선포하면 육군참모총장이 주체가 되어 계엄업무를 시행하게 된다. 전쟁을 수행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계엄업무는 군에 부담을 제기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7월 5일 미군 참전 후 7월 8일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고 민사부를 설치했으며 헌병과 방첩대를 계엄사령부에 배속시켰다.
오늘날 을지연습 때 단계가 올라가면서 계엄령 선포가 자동적으로 뒤따른다. 잘못된 것이다. 박정희가 을지연습의 대강을 잡았을 터인데, 이 점은 군인 박정희가 문민 이승만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다. 박정희 시대에는 계엄령, 위수령 등이 많았기 때문에 국가 위기시 계엄령이 선포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우리의 경우 계엄령은 4·19, 5·16, 10월 유신 등 헌정이 중단되는 상태에서 계엄령이 선포되었는데 이는 통상(通常)은 되었을지 모르나, 정상(正常)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이러한 성격의 계엄은 한번도 선포되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계엄령이 선포되는 경우가 있지만 연방정부가 아니라 주정부 단위다. 주 방위군(National Guard)이 투입된다. 주지사는 주 방위군의 사령관이며, National Guard의 장이 고급부관(Adjutant General)으로 주지사를 보좌한다. 미합중국 육군 즉, U.S. Army는 이런 종류의 작전에 한 번도 투입된 적이 없다. 1960년대 흑백분쟁이 한참일 때 아리조나주에서 흑인 아동을 학교에 등교시키기 위해 주지사가 주 방위군을 동원한 예가 있고, 20세기 초엽 클리브랜드에서 탄광 쟁의가 격렬할 때 오하이오 주지사가 주 방위군을 동원한 적이 있다. 이 경우 동원된 부대는 county의 police chief의 명령을 받는다.
즉, 계엄군은 어디까지나 경찰을 보조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것이 미국에서의 계엄령(martial law)이다. 미국에서 40년 넘게 생활한 이승만은 미국 헌정의 구조와 질서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전쟁 중인 부대가 계엄에 동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추론이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軍이고 民이고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지도자가 매우 드물다. 모두들 전쟁이 개시되면 당연히 계엄령이 선포되고,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합참의장은 전쟁을 지휘하느라 일분일초도 다른 데 신경을 쓸 수가 없다.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부름에 즉각 응해야 되며 한미연합사령관과도 부단히 연락하고 상의하여야 한다. 오늘날의 전쟁양상은 6·25때와 다르다. 6·25때는 分 단위로 판단하고 움직였다고 하면 오늘날은 秒 단위로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
계엄령이 선포될 때가 되면 합참의장이 계엄업무를 할 것이 아니라 군정을 담당하는 참모총장이 하는 것이 맞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 논리와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는 군 고위층을 본 적이 없다. 이는 “전쟁은 우리가 주도한다”는 정신이 투철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