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교회협의회 ‘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민주주의·헌법 부정하고 국론만 분열시킬 뿐”

[아시아엔=최정아 기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영주 목사) 산하 교육위원회(위원장 김종선 구세군 사관)는 12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 701호에서 ‘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민주주의와 헌법을 부정하는 일로 국론분열을 일으킬 뿐”이라며 “정부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교육위원회는 또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요한복음 말씀처럼 역사에 대한 해석은 누구나 자유롭되, 사실 앞에서는 지극히 겸손해야 한다”며 “정직한 역사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옳고 그름에 대해 용기 있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국민으로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위원회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진보는 물론 보수 진영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높다”며 “대학교수, 교사, 학부모, 시도교육감, 사회원로 등과 연대해 대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은 연대발언에서 “세계적으로도 국정 국사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극소수이며 OECD 국가 가운데 하나도 없다”며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은 역사의 후퇴”라고 말했다.

성명서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중단하십시오!

균형 잡힌 가치관과 건강한 시민의식을 소유한 미래세대를 키우는 교육의 문제가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선교과제임을 인식하고 우리나라 공교육 정책의 대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위원회는 정부가 추진을 시도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교육부가 지난 9월 22일에 ‘2015 역사과 교육과정’을 발표했습니다. 교육부는 이 역사과 교육과정을 제대로 된 공론화 없이 폐쇄적으로 개정을 추진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의 정체성에 중요한 근현대사, 특히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에 대한 내용이 대폭 축소 및 삭제되고, 친일언급은 삭제되었고, 독재는 권위로 포장되었습니다. 이렇게 새로 발표된 역사과 교육과정은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시작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의 과정에 있습니다.

2013년에 교학사 교과서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황당한 내용 외에도 1,000곳 이상의 오류가 발견된 엉터리 책자였지만 교과부의 검정을 통과했습니다. 정부는 노골적으로 일선 학교에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강권했으나, 이 교과서의 역사왜곡·사실오류 문제가 제기되면서 결국에는 어느 학교도 교과서로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와 새누리당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정화는 진보나 보수 진영에서 모두 반대 목소리가 높습니다. 대학교수, 교사, 학부모, 시도교육감, 사회원로 등의 국정화 반대 선언이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민주주의와 헌법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의 기틀을 파괴하고 국론 분열을 일으킵니다. 국정화는 독재 권력이 획일적인 역사를 가르치던 유신 정권 시절로 회귀하는 반민주적 행위이며, 국정화보다는 검인정제가 헌법 이념에 더 부합한다고 판결했던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는 반헌법적 행위입니다.

역사를 거슬러 과거를 살펴보면 국정교과서를 강요했던 나라들의 현실은 암울했습니다. 독일이 나치 지배 아래 놓였을 때였고, 제국주의 일본이 교과서를 국정화해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쳤던 때는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나라도 헌법을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고 계엄령을 선포해 국민들을 협박했던 유신시절에 교과서가 국정화 되었습니다. 역사교과서 발행체제는 1974년 박정희 정권이 국정화로 바꾼 이후 2007년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검정제로 개혁되었습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결코 역사학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사회가 힘들게 쌓아온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의 근간을 위협하고 품격 있게 발전해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를 심히 우려스럽게 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퇴행이기 때문에 철회 되어야 합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왜곡과 획일화 교육을 강요하는 일입니다. 인성 교육을 법제화하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일은 일제식민지시대의 교육을 답습하는 것입니다. 예절 교육과 교과서 통제를 통해서 일제가 구현하고자 한 조선인의 인간상인 순응적 식민(植民)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 일제 당국이 우리나라 교육에 간섭하면서 맨 처음 한 일이 교과서를 통제하고, 교육 현장에서 정의와 평화 등 인류의 고귀한 가치들을 가르치지 말라는 강요였습니다. 그 때부터 시작된 역사왜곡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정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는 정권의 입맛대로 역사교육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5년마다 한 번씩 교과서가 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정부가 일방적으로 확정한 하나의 교과서로 획일적 교육을 받도록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 다양성과 창의성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 역사에 대한 해석은 누구나 자유롭되, 사실 앞에서는 지극히 겸손해야 합니다. 정직한 역사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옳고 그름에 대해 용기 있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국민으로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적 정당성과 정통성은 권력이나 힘으로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정당성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법궤를 옮겨옵니다(삼하 6:1-19). 그 과정에서 자기의 권력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법궤를 옮기려 했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다윗이 모시로 만든 에봇을 입고 왕으로서의 권위와 체면을 벗어버리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법궤를 옮겨올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 정통성은 힘과 권력으로 억지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국민들에 의해서 저절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권력에 의지해서 추진하는 일은 정통성을 왜곡하거나 하나님과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적 정통성을 왜곡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2015년 10월 12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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