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부커상’ 한강의 ‘채식주의자’ 속 숨은그림 찾기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워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 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 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 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첫 구절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게 끝난다. “아내는 칼자국이 선명한 왼손으로 자신의 이마에 쏟아지는 햇빛을 가렸다. 나는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 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채식주의자>는 2007년 가을 출판된 3부 연작소설로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중편(中篇)소설 세편이 하나로 묶여 있다. ‘영혜’라는 한 여자를 둘러싼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서 소설은 진행된다. 즉 ‘채식주의자’에서는 영혜의 남편, ‘몽고반점’에서는 영혜의 형부, 그리고 ‘나무 불꽃’에서는 영혜의 언니의 시선이 드러난다.

<채식주의자>는 폭력에 저항하며 욕망을 거세하는 한 여성과 그녀를 둘러싼 파멸적 삶들을 관능적 시선으로 다룬 연작소설이다. 아내 ‘영혜’가 폭력을 상징하는 육식(肉食)과 육욕(肉慾)을 거부하며 자기만의 폐쇄적 세계로 도피하는 삶을 바라보는 남편의 이야기인 <채식주의자>,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처제(妻弟)인 영혜를 성적 욕구대상으로 삼는 형부의 이야기인 <몽고반점>, 그리고 영혜가 입원한 정신병원으로 찾아가는 언니가 들려주는 자매의 이야기인 <나무 불꽃>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 한강은 “이 소설은 우리가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계를 견뎌낼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고 설명했다. <채식주의자>는 ‘창작과 비평’ 2004년 여름호, <몽고방점>은 ‘문학과 사회’ 2004년 가을호, 그리고 <나무 불꽃>은 ‘문학관’ 2005년 겨울호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작가 한강은 연작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로 2016 맨부커 인터내셔널상(The 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2016)을 영국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 28세)와 지난 5월16일 영국 런던에서 공동수상했다. 영국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과 프랑스 콩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맨부커 국제상 최종후보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과 중국 현대문학 대표작가 옌렌커가 올랐으나 심사위원단 5명은 만장일치로 <채식주의자>를 선정했다. 심사위원장 보이드 톤킨은 “<채식주의자>는 압축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준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그들의 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라고 평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가장 관능적인 소설”, <AP통신>은 “심연을 흔드는 소설”, <뉴욕타임스>는 “미국 문학계에 파문을 일으키며 독자들과 공명할 것”이라고 평했다.

데보라 스미스는 지난 6월15일 서울에서 개최된 기자회견에서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었을 때 탁월하고 이미지가 강렬했다. 화자 3명의 목소리로 서술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라 번역가로서 독자들에게 매력적일 것이라 생각했다”며 “영국에서는 연작소설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채식주의자가 신선했으며, 3개의 단편이 굉장히 다른데 애틋함과 공포, 둘 중 어느 하나에도 치우치지 않고 작품 내내 완벽하게 잘 관리되는 문체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맨부커상’은 1969년 영국의 부커-맥코넬(Booker-McConnell)사가 제정한 문학상으로 매년 영국연방국가에서 출판된 영어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여 시상했다. 2005년 국제부문을 만들어 영어로 출간하거나 영어로 번역된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맨부커국제상’이 신설되었다. 상금 5만파운드(약 8600만원)는 작가와 번역자에게 각각 2만5천파운드씩 수여하고 있다.

1966년 등단하여 1988년 소설 <해변의 길손>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승원(77)의 딸인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詩)가,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장편소설, 산문집 등 10여권을 출간했으며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하여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작가 한강과 함께 수상한 데보라 스미스는 영국 케이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2010년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연구대학(SOAS)에서 한국학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해 2015년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데보라 스미스는 <채식주의자> 외에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안도현의 <연어>를 번역한 전문번역가다. 최근 한국문학번역원과 업무협약(MOU)을 채결하고 매년 1권 이상의 한국문학 번역서를 출판하기로 했다.

인간이 먹는 음식은 크게 식물성 식품과 동물성 식품으로 나눌 수 있다. 농협중앙회가 6월27일 발표한 ‘NH축경포커서’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육류의 월평균 소비량은 2005년 2.7kg에서 2014년 4.0kg으로 매년 4.5%씩 늘었다. 과일도 같은 기간 매년 0.6%씩 증가했으나, 쌀은 6.7kg에서 5.2kg으로 매년 2.8% 감소했고, 채소(시금치, 당근, 풋고추)도 3.7%씩 줄었다. 전체 가계(家計) 최근 3개월 월평균 식료품비 지출금액은 35만1000원 수준이다.

채식(vegetable diet)이란 종교적, 금욕적, 환경보호, 질병관리 등 다양한 이유와 목적으로 채소ㆍ과일ㆍ곡물ㆍ견과류만을 먹는 식생활을 말하며,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채식주의자(vegetarian)라고 부른다. 채식은 기원전 530년경 지중해 지방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피타고라스(BC 530년경)에게서 첫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이후 불교 보급으로 살생이 금지된 인도에서 발달했으며, 18세기 후반에는 동물 수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면서 서구에서 채식이 늘어났다.

<채식주의자>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혜’는 어느 날 꿈을 꾸고 냉장고에 있던 고기, 생선 등 육류는 물론 우유, 달걀 등 모든 동물성식품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리고 그녀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완전 채식주의자)가 된다. 이에 남편을 위시하여 가족들이 억지로 고기를 먹이겠다고 아버지는 딸의 뺨을 때리고, 입을 억지로 벌리게 한 뒤 고깃덩어리를 넣지만 고함을 지르며 고깃덩어리를 뱉는다. 그리고 영혜는 과도로 왼쪽손목을 찔러 자해한다.

‘채식주의’라고 해서 육식의 반대말은 아니다. 채식주의자 중에는 때때로 육식을 하는 경우도 있고, 섭취하는 음식을 달리하는 등 유형이 다양하다.

채식주의자 유형에는 비건(vegan), 락토(lacto), 락토 오보(lactor ovo), 오보(ovo), 페스코(pesco), 폴로(pollo), 플렉시테리안(flexiterian) 등이 있다.

‘비건’은 순수하게 채식만 하는 타입으로 고기를 비롯하여 동물로부터 얻는 모든 것(유제품, 달걀, 꿀 등)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다. 동물가죽으로 만든 옷, 모피, 화장품까지도 사용하지 않는다. ‘락토’는 알류(卵類)는 먹지 않지만 유제품은 먹는 채식주의자 유형이며, ‘오보’는 알 종류는 먹고 유제품은 먹지 않는다.

‘락토 오보’는 유제품과 알류까지는 먹는 유형으로 서양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입이다. ‘페스코’는 우유, 달걀, 생선까지 먹는 유형이며, ‘폴로’는 유제품, 달걀, 생선, 닭고기와 같은 조류까지는 먹지만 붉은 육류는 먹지 않는다. ‘플렉시테리안’은 평소에는 ‘비건’으로 채식을 주로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육식도 한다.

요즘 사찰의 ‘절밥’ 채식을 먹는 직장인들이 많다고 한다. <법보신문>은 범어사 낙산사 봉은사 금선사 통도사 보원사 영평사 길상사 등을 ‘공양간(식당)’으로 소문난 사찰로 소개한 적이 있다. 서울 삼성동 봉은사(奉恩寺)에는 점심때면 인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몰려온다고 한다. 절밥을 찾는 이유로 점심값을 아끼면서 건강한 ‘채식’을 먹은 후 경건한 사찰 내부를 산책하면서 힐링(치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인 외에도 택배 기사, 야쿠르트 아줌마, 환경미화원들도 단골이라고 한다.

절밥은 사찰음식인 만큼 고기는 없지만 볶음 김치, 취나물, 배추 겉절이, 오이지, 그리고 밥이 제공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布施, Buddhist alms)의 개념으로 1000원을 내면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하거나 독거노인들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물론 1000원을 내지 않아도 식사를 할 수 있다. 평일에는 700명, 주말에는 1500명이 절밥을 먹는다고 한다.

채소 위주의 채식과 고기 위주의 육식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식단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균형식단’으로 식생활을 하여야 한다. 즉 탄수화물ㆍ단백질ㆍ지방ㆍ비타민ㆍ미네랄 등 5대 영양소를 곡류, 고기류(생선, 달걀, 콩류 포함), 채소류, 과일류, 유제품류 등 5개 식품군에서 적절한 비율에 맞춰 섭취하는 것이 최고의 건강식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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