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영웅 무하마드 알리를 죽음으로 몰고간 파킨슨병은?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몇 년 전 필자의 고교 동창생 한 명과 파인트리클럽 시니어회원 한 명이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으로 오래 투병하다가 사망했다. 최근에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는 말로 유명한 전설의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가 파킨슨병과 32년 동안 싸우다 지난 3일 74세를 일기로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삶을 마감했다. 알리는 1986년 재혼한 부인과 함께 마지막 나날을 보냈으며, 슬하에 7남2녀를 두었다.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세 차례 올랐던 알리는 1981년 39세의 나이로 은퇴했으며, 1984년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심각한 권투 후유증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파킨슨병을 앓게 되었다.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1985년 레바논과 1991년 이라크에서 미국인 인질 석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엔개발계획(UNDP) 친선대사로 활동을 했으며,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성화 최종주자로 나서 떨리는 손으로 점화를 해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9일 알리의 고향인 켄터키주 루이빌의 프리덤홀에서 1만4천명이 운집한 가운데 치러진 추도식에서 추도사(追悼辭)를 했다. 추도식은 이슬람 예배 형식으로 진행됐지만, 고인의 뜻에 따라 기독교ㆍ유대교ㆍ불교ㆍ모르몬교 등 다른 종교 인사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알리는 인종과 종교 차별에 반대하며 평소 통합을 강조한 인물이다.

장례식은 10일 알리가 어릴 적에 살던 집에서 가족장으로 치른 후 19마일 떨어진 묘지(Cave Hill Cemetery)까지 16대 리무진 행렬이 이어졌으며, 많은 시민들이 도로변에서 “알리” “알리”를 연호하면서 ‘Muhammad Ali, The Greatest’를 떠나보냈다. 저 세상으로 떠나가는 알리가 편안하게 가도록 고속도로를 비롯한 모든 도로가 통제되었다. 필자는 인터넷(Yahoo News) 중계를 통해 시청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고인은 옳은 일을 위해 싸운 사람으로 마틴 킹 목사와 넬슨 만델라와 함께 섰고, 다른 사람들이 꺼릴 때 앞장을 섰다”고 말했다.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알리의 삶을 “링 안에서는 챔피언, 링 밖에서는 영웅”이었다고 압축해서 말했다.

알리는 1942년 미국의 남부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태어나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열두 살 때 자전거를 도둑맞고 찾아간 경찰서에서 “자전거 도둑을 혼내 주려면 권투를 배워보라”고 권한 경찰관의 말에 복싱을 시작했다고 한다. 빠른 주먹과 현란한 발놀림으로 알리는 18세이던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고향이지만 인종차별로 인하여 식당 출입을 거절당하고, 백인 갱들에게 위협을 받았다. 이에 알리는 올림픽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버리고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1964년 헤비급 챔피언 소니 리스턴에게 7라운드 TKO승을 거두고,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그리고 이름도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았던 캐시어스 클레이를 버리고 가장 대중적인 무슬림 이름인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다.

알리는 1967년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하여 미국 사회를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고 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 법정에서 “나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 나라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데 남의 자유를 위해 싸울 순 없다”고 말했다. 알리는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3년간 링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1974년 조지 포먼을 8회 KO로 누르고 세계 챔피언에 복귀했다.

1981년 링을 떠날 때까지 알리의 통산 전적은 56승(37KO) 5패였다. 은퇴 회견에서 “자유와 정의, 평등을 위해 싸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알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했다. 작년 말에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발언을 겨냥하여 그는 “이슬람을 이용하는 이들에 강력히 맞서 싸워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1995년 평양에서 열린 스포츠 행사에서 당시 북한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고위관리가 북한의 우월성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면서 “북한은 도덕적으로 미국보다 우월하고, 우리가 원하면 미국과 일본을 제거할 수 있다”고 떠벌이자 알리가 “이런 후레자식들을 증오하는 건 당연한 거야”(No wonder we hate these mother fuckers)라고 일갈했다. 알리는 미국 프로농구 선수 로드먼과는 달리 북한 정권을 전혀 칭송하지 않았다.

알리는 1984년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는 “신이 세상 최고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점을 알려주시려고 나한데 이런 병을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알리의 어록에는 “나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나는 내가 위대함을 알기 전부터 이 말을 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싸우는 것을 포기할 때 당신은 패배한 것이다” 등도 포함되어 있다.

매년 4월 11일은 세계 파킨슨병의 날(World Parkinson’s Day)이다. 파킨슨병은 영국의 의사 제임스 파킨슨(James Parkinson, 1755-1824)이 1817년 최초로 학계에 보고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생일인 4월 11일을 ‘세계 파킨슨의 날’로 제정했다. ‘레드튤립(red tulip)’은 파킨슨병의 상징으로 관련 학회 및 협회에서 심벌로 사용되고 있다.

파킨슨병은 치매, 뇌졸중과 함께 세계적으로 3대 노인성 뇌질환으로 꼽히고 있으며, 파킨슨병 환자는 60세 이상에서 인구의 약 1%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04년 3만798명이었던 파킨슨병 환자가 2013년에는 9만2721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파킨슨병은 뇌의 흑질(黑質, nigra)에 분포되어 운동신호를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을 생산, 저장하는 신경세포의 수가 급속히 줄어들어서 생기는 병이다. 파킨슨병은 유전적 인자와 환경적 인자가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킨다는 ‘다인성 가설’이 가장 보편적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가족력 없이 발병하지만, 약 10% 정도에서는 가족성 파킨슨병이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파킨슨병 환자들은 60대 이상에서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10-15%의 환자는 50대 이전에 발병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조기발현 파킨슨병이라고 부른다. 주요 증상은 손발이 떨리고, 몸이 굳으며, 행동이 느려지고, 말소리가 잘 안 나오며, 얼굴 표정이 없고, 걸음걸이가 나빠진다. 파킨슨병 환자의 일반적인 자세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처진 어깨로 몸통을 앞으로 굽힌다.

수전증은 보통 밥을 먹을 때나 글씨를 쓸 때 손이 떨리지만 파킨슨병 환자의 ‘떨림’은 가만히 있을 때 떨리는 게 특징이다.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을 비비는 듯한 동작을 특징적으로 보이며, 한쪽 팔이나 다리에서 먼저 시작되는 비대칭성을 보인다. ‘느린 움직임’은 행동이 느려지고 운동의 진폭이 작아지는 상태를 말한다. 전체적으로 행동이 느려지고, 얼굴 표정이 감소하여 목소리가 작고 가늘어지며, 글씨를 쓸 때 글자의 크기가 작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근육의 경직’은 몸이 굳어서 운동할 때 마치 로봇과 같이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관절을 수동적으로 움직이면 저항이 증가하며, 의사가 환자의 관절을 움직여보면 뻣뻣하여 유연성이 없는 것이 느껴진다. ‘자세 이상’은 환자의 몸 전체가 굽어 있어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이며 똑바로 걸을 수가 없어서 보행 장애로 걷다가 앞으로 넘어지기도 한다.

진단은 전형적인 파킨슨병인 경우에는 임상 증상들과 신경학적 검사로 충분히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임상 증상이 유사한 2차 파킨슨병이나 비정형 파킨슨증후군을 감별하기 위하여 뇌 MRI 등을 시행하기도 하며, PET 검사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파킨슨병은 치료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병이 진행되면 점점 증상이 심해져 걷거나 움직이기가 어렵고 나중에는 혼자서 생활하기 힘들어진다. △기억력 장애 △수면 장애 △자율신경 장애 △통증 등 다양한 비운동 증상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이같은 비운동장애는 경우에 따라 운동장애보다도 더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증상이므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파킨슨병 치료는 약물치료, 물리치료, 수술적 치료 등을 할 수 있다. 파킨슨병의 치료는 뇌 속에 부족해진 도파민을 보충하는 것에서 시작되므로 도파민 전구물질인 레보도파(levodopa)를 기본으로 하는 레보도파 요법이 일반적인 치료방법이다. 이는 도파민을 함유한 신경세포가 소실되는 것이 파킨슨병의 기전임을 감안하여 체내에서 대사되어 도파민으로 바뀌는 레보도파를 투여하는 방식이다.

약물치료를 시작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약효 소진 현상이 나타나 약물 효과가 점점 떨어진다. 또한 파킨슨병의 여러 증상들 중에는 도파민성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것도 있으므로 이러한 비운동성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증상에 따라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적 요법을 시도한다. 우울증은 파킨슨병의 가장 흔한 기분장애이며, 항우울제 등을 투여한다.

파킨슨병 환자는 흔히 지속적인 운동 부족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과 질병이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이상 증상에 대한 적절한 치료적 대응책이 준비되어야 한다. 운동요법에는 이동 운동, 뻗기 운동, 근력 운동 등 모두 중요하다. 물리치료에는 자세교정, 보행훈련, 언어치료 등이 포함된다. 최근 전형적 파킨슨병에 대한 수술적 치료 요법이 개발되어 국내 대형 병원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는 뇌의 깊은 곳에 위치한 시상하핵(subthalamic nucleus) 등에 고주파 전기자극을 가함으로써 파킨슨병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이다.

파킨슨병에 대한 치료는 주로 증상을 완화시켜 환자가 최대한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만성 진행성 질환인 파킨슨병 환자의 증상은 서서히 악화되고 대부분 10년 정도 지나면 다양한 합병증으로 인하여 사망이나 심각한 장애가 나타난다. 대한파킨슨병학회는 무엇보다 조기 치료가 중요하므로 운동에 조금이라도 장애를 느끼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1980년대에 히트를 한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의 주연배우 마이클 폭스도 30살 무렵인 1991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으며, 2000년에 ‘파킨슨병 연구를 위한 마이클 J. 폭스 재단’을 설립하였다. 폭스는 최근 CNN 방송 홈페이지에 “알리의 사망을 통해 파킨슨병을 주위에 환기하고 이 병을 정복할 수 있도록 전 사회가 함께 힘을 모으자”는 내용의 기고문을 올렸다. 폭스는 “불가능은 할 수 없다는 선언이 아닌 도전과 모험”이라는 알리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면서 알리가 끝내지 못한 싸움을 끝내서 그를 기리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몫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