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아버지의 너털웃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어김없이 어버이날이 돌아온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어버이날을 기뻐하기보다는 가슴에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가 너무 많다. 아버지는 참 고독한 분이다. 그래서 언제나 아버지는 멀리 바라본다. 멀리 바라보기에 허물을 잘 보지 않는다. 멀리 바라보면 미운 사람도 사랑스럽고 그리움만 산처럼 쌓인다.
힘든 삶의 여정(旅程)에서도 너털웃음으로 참아낸다. 자존심이 무너지고 굴욕감을 참아내면서도 미소 지으며 집안을 들어서는 우리들의 아버지! 아버지는 말 못하는 바보처럼 말이 없다. 잘 표현할 줄 몰라서 자식들로부터 오해도 많이 받는다.
아버지는 눈물도 없고 잔정도 없는 돌부처같은 사람이 아니다. 말이 없기에 생각이 더 많고, 사랑의 표현이 약하기에 마음의 고통이 더 심한 것이 아버지다. 그러나 아버지는 작은 사랑에는 인색하지만 큰 사랑엔 부자다. 대범하게 용서하고 혼자서 응어리를 풀어내는 데는 대단한 도사(道師)다.
그리고 멀리 바라보기에 내일을 예견한다. 자식을 바로 잡으려 때로 고성을 질러도 자식들이 눈물을 흘릴 때는 아버지는 가슴에 눈물이 강물처럼 흐른다. 아버지의 사랑은 잘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랑은 열반에 드셔야 아마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꼰대라고 비웃었던 자식들은 없을까? 또 속물이라고 마음에서 밀어낸 자식은 없는가? 그런데 세상에는 온통 어머니만 있고 아버지는 없는 세상인 듯하다다. 아들이고 딸이고 다들 세상에서 우리 엄마만큼 고생한 사람 없다며 “우리 엄마, 우리 엄마” 한다. 그럼 그 동안 우리 아버지는 무얼 하셨기에 그런 대접을 받는 신세로 전락하셨을까?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느라 묵묵히 집안에 울타리가 되고 담이 되었고, 새벽같이 일터로 나가 더우나 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윗사람 눈치 보며 아랫사람에게 떠밀리면서, 오로지 여우같은 마누라 토끼같은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일에 일신을 다 바쳐 왔을 것이다.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마냥 흐뭇하고, 여우같은 마누라 곱게 치장시키는 재미에 내 한몸 부서지는 것은 생각 않고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아온 몸일 것이다. 예전엔 그래도 월급날 되면 월급봉투라도 내밀며 마누라 앞에 턱 폼이라도 잡으며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이젠 그나마 통장으로 깡그리 입금되어 죽자고 일만 했지 돈은 구경도 못해 보고, 마누라에게 받는 용돈이 부족하여 갖은 애교를 떨며 용돈 받아 살아간다.
요즈음은 청소도 아버지 몫이다. 세탁기 빨래를 꺼내어 너는 일도, 청소기 돌리는 일도, 애들 씻기는 일도, 분리수거하는 날 맞춰 쓰레기 버리는 일도, 다 아버지 몫이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참 불쌍하다. 옛날 아버지들은 그래도 집안에서만큼은 황제처럼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을 위해서는 돈도 시간도 투자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아버지는 어머니처럼 화장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옷을 사치스럽게 사입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일터만 오간다. 그러다 어느 날 정년퇴직하고 집만 지키는 아버지를 어머니는 ‘삼식이’라며 힘들어 하고, 딸들은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여행도 다니시고 나가 놀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집을 나가면 조금의 돈이라도 낭비할까 그저 노인정이나 동네에서 맴도는 신세다. 집 나와 봐야 갈 곳도 없다. 겨우 인근의 공원만 어슬렁거린다. 공원에 가봤자 남들의 내기장기에 훈수 두다가 퉁박당하기 십상이다. 차라리 마누라 눈치 밥이지만 주는 밥 먹고 집에 들어앉는 것이 마음 편하다.
아무리 시대의 흐름이라지만 아버지는 마음이 아프다. 요즘 장성한 아들딸들이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얹혀살며 늙은 부모를 일터로 내모는 세상이다. 이런 현상을 누가 만들었나? 그건 어려서부터 자식들의 자립심을 키워주기는커녕 뭐든지 알아서 해준 아버지의 책임이 크다.
세계에서 부모에게 의지하는 걸로 한국 젊은이가 일등이라고 한다. 참으로 슬픈 아버지의 심정일 것이다. 어느 시인이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술도 안 마시는 나같은 아버지는 무엇으로 응어리진 가슴을 쓸어내릴까 싶다.
경남 사천에서 30대 남매가 재산 문제로 혼자 사는 60대 아버지를 살해하려고 시도하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다. 남매는 시내에 있는 아버지 집에서 전기충격기와 가스분사기로 아버지를 쓰러뜨린 뒤 마구 때려 살해하려다 어머니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남매를 만류한 어머니도 애초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드러나 자녀들과 함께 구속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리 재산이 좋다고 해도, 그리고 아무리 남편이 밉다고 해도 이런 범행을 저지르는 세상이 무섭기만 하다. 사회구조 변화로 아버지들이 누렸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그나마 돈 벌어다 주는 기계 취급받지 않으면 다행으로 여겨야 할 지경이라는 게 요즘 아버지들 하소연이다. 어버이날만이라도 아버지 손을 꼭 잡아 드리면 어떨까?
<아함경>(阿含經)에는 진정으로 부모님의 은혜를 갚는 세 가지 효(孝)가 나온다. “의식(衣食)을 제공함은 하품(下品)의 효양(孝養)이요,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함은 중품(中品)의 효양이며, 부모님의 공덕을 여러 부처님께 회향함은 상품(上品)의 효양이라 한다.”
우리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 한 송이, 용돈 몇 푼 드린다고 효를 다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부처님께 회향하는 공덕을 아버지는 바란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한다. 겁이 날 때는 너털웃음을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