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100년, 소태산 부처님 말씀과 하얼빈 ‘벨루가 고래’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육도사생(六道四生)이란 말이 있다. 육도(六道)는 일체중생이 선악의 업인(業因)에 따라 필연적으로 윤회(輪廻)하는 길을 천도(天道)?인도(人道)?수라(修羅)?축생(畜生)?아귀(餓鬼)?지옥(地獄)의 여섯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사생(四生)은 모든 생물이 몸을 받아 세상에 태어나는 형태를 태생(胎生)?난생(卵生)?습생(濕生)?화생(化生)의 네 가지로 분류한다.

이 가운데 태생은 어미의 배를 빌어서 태(胎)로 출생하는 유정들을, 난생은 껍질로 된 알을 깨고 출생하는 유정들 즉 닭, 오리 등을 이른다. 습생은 어둡고, 물기 있는 땅에서 형체를 낳는 것으로 모기 등의 곤충류, 화생은 종족을 번식치 않는 제천(諸天). 귀신, 도깨비 등의 유정을 말한다.

사생과 육도는 넓은 의미로 보면 우주안의 일체생령의 유전하는 삶이 다 포함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전변(轉變) 유전(流轉)하는 인간의 삶이나 심리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다. 사생의 경우를 우리 인간의 심리상태에 비추어보면, 오랜 세월에 깊이 물든 습성이 태생이요, 성품을 깨치지 못해 우미(愚迷)한 생각을 가진 것이 난생이며, 정견(正見)을 갖지 못하고 사견(邪見)에 끌려 다니는 것이 습생이요, 육도윤회에 끌려 다니는 것이 화생이다.

육도의 경우에도 인간의 심리상태의 육도와 현실생활의 육도가 있다. 심리상태의 육도는 청정(淸淨) 무욕(無慾)한 마음, 평화로운 마음, 편안한 마음을 가지면 곧 천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분별 시비 심을 일으키거나, 고락?죄?복?선악?미추?행?불행?극락?지옥 등을 구별하는 마음이 인도다.

또한 번뇌 망상 심?산란 심?방황 심?복잡 심?부동심(浮動心) 등이 수라이고, 무명 심(無明心)?우치(愚癡) 심?파렴치심 등이 축생이다. 또 삼독오욕 심?앙앙불락 심?자리타해심 등이 아귀이며, 시기질투심?중상모략 심?투쟁심?삼독심 등이 지옥이다.

현실생활상의 육도는 모든 욕심이 텅 비어버린 생활, 헌신봉공생활, 성직(聖職)생활 등이 천도다. 희로애락 시비이해의 감정 속에 생존경쟁의 생활이 인도이고, 사치와 향락과 퇴폐생활 또는 방랑과 유랑의 생활이 수라다. 그리고 정치, 경제, 도덕적이든 인권이 없는 생활, 남의 앞잡이 생활이나 금전의 노예로 전락한 생활이 축생이다. 또한 욕구불만과 불평불만에 가득 찬 생활이 아귀다. 또 원망과 투쟁의 생활, 상극 악연의 생활, 감옥생활, 교통지옥, 입시지옥 등의 생활이 지옥이다.

이와 같이 육도세계는 인간이 몸을 바꾸어서 윤회하는 경우도 있으나, 보다 더 현실적으로 일생동안 또는 하루에도 수없이 육도윤회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생과 육도의 세계를 멀리 생각할 것이 아니다. 인간의 현실생활 속에서 또는 찰라 찰라의 생각에서 찾아야 한다.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時無量劫)임을 알고, 일념만년(一念萬年)의 생활을 할 때 인간은 사생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육도윤회에 자유롭게 된다.

시방일가(十方一家)라는 말이 있다. 불보살들은 우주 전체를 한 집안 삼는다는 뜻이다. 광대무량하고 대자 대비한 불보살의 마음을 시방세계에 비유하는 말이다. 불보살은 시방세계를 자기 집으로 알아 내 집 남의 집을 구별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 민족 남의 민족의 구별도 없고, 나라와 종교의 차별도 없으며, 사생의 차별도 없다.

몇 년 전 중국 하얼빈에서 깊이 6m 수조(水槽)에서 어떠한 호흡 장비도 사용하면 안 되는 다이빙대회가 열렸다. 대회 참가자들은 ‘벨루가 고래’와 함께 수영장 바닥까지 가라앉아서 견딜 수 있는 만큼 머물다가 수면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상황이 멈추게 됐다. 이 대회에 참석한 양윤이란 학생은 입수(入水)해 다시 올라오려는 순간 수영장의 극도로 찬물 때문에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난 것이다. 움직일 수 없고, 수면 아래로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벨루가 고래는 그녀가 위험한 순간인 걸 알았고 그녀의 다리를 입에 물고 물 밖으로 밀어줬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인간들은 고래들을 포획해 자유를 빼앗았지만, 동물들은 인간을 친구라 여기며 생명을 살려줬다. 인간에게는 동물을 다스릴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를 지킬 의무가 있을 뿐이다.

이 세상은 사람끼리만 공존하는 세상이 아니다. 사람끼리만 사랑하고 도움을 주며 아끼고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마음으로 대화하며 가슴으로 통하는 동물친구들과 육도사생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삼동윤리(三同倫理)가 있다. 원불교 소태산(少太山) 부처님의 ‘일원주의(一圓主義)’에 입각하여 모든 종교·민족·국가·사회가 다함께 실천해야 할 윤리의 방향을 정산(鼎山) 종사님께서 ‘동원도리(同源道理)·동기연계(同氣連契)·동척사업(同拓事業)의 세 강령으로 제시한 윤리다.

‘동원도리’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교파가 그 교리나 제도 또는 형식에 있어서는 각각 특색과 차이점이 많으나,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의 근원적 진리에 바탕하고 있으며, 그들의 궁극 목표 또한 이 진리의 실현에 있다는 것이다.

‘동기연계’는 이 세상에는 수많은 인종·민족·국가·씨족의 구별이 있으나, 그 근본을 추구하면 온 인류와 생령(生靈)이 한 근원에서 나온 동포요, 한 기운으로 연계된 형제라는 것이다. 또 ‘동척사업’은 서로 다른 모든 사업과 주장도 그 근본 동기는 이 세상을 보람된 삶의 터전으로 만들자는데 있는 것이며, 또한 직접 간접으로 이 세상을 개척하는 데 한 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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