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일본서 배워야 할 독거노인 보살피는 법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얼마 전 어둑한 도심 변두리에서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리어카에 폐지를 가득 싣고 조금은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저분도 자식들도 두고 가까운 이웃들이 있으련만 조금은 편안함을 즐기며 저녁이 있는 삶을 누려야 할 텐데 아무리 전생의 업보라 한들 받아들이기가 힘이 들었다.
‘덕화만발’ 가족 중에 경기도 시흥시의 시민기자로 일하는 고본주(高本洲)님이 있다. 이 분의 기사 중 ‘저녁이 없는 삶’이라는 제목의 글이 덕화만발 카페 자유게시판에 실렸다. 그 글이 내 가슴을 시리게 한다.
시흥 삼미시장 앞에서 만난 노인의 얘기를 들으며 고령화 시대에 노후 준비가 안 된 노인들의 여생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백세시대란 말이 생소하지 않다. 실제로 주변에서 백세를 눈앞에 둔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지내면 그나마 다행인데 노인 독신가구가 급속히 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가족이 있어도 세상의 추세와 시대의 흐름이 바뀐 지금, 오히려 가족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신세가 되고 있다. 젊은 시절 가정을 위해 밤낮없이 헌신한 보람이 이것인가 하는 서글픔에 정신적 고립감이 심각하다. 안타깝게도 경제 문화 정서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노인들에게 백세 시대는 그야말로 충격이다. 그러고 보면 생물학적 수명연장이 모두에게 행복하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지금 젊다고 우쭐대는 우리 모두는 예비노인이며 잠재적 노인이다. 노년의 삶이 어떤지 생각할 때가 되었다. 건강관리는 물론 노후를 위한 자산 관리나 취미 생활 및 가족 간의 소통하는 방법을 미리 고민해 봄이 필요하다.
노인들은 과거 습득한 기술이나 지식을 후진양성을 위해 재능 기부하는 활동도 해봄직하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를 작성하여 하나하나 도전하며 경험하는 것도 기쁨이 될 것이다.
앞서 말한 삼미시장에서 만난 노인이 독백처럼 들려준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눈물 반, 웃음 반으로 살아왔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나 주변 상황이 하나둘씩 떠날 때마다 한숨이 나오고 외로움이 깊어진다. 가족과는 의사소통이 안 되고 내 심정과 기분을 공감해주는 식구가 없다. 비슷한 아픔을 겪는 동년배들만이 같은 스트레스를 겪고 있어 위로가 된다.
이 시대에 노인으로 산다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부디 그 노인의 앞날이 저녁이 없는 삶에서 소박하나마 저녁이 있는 삶으로 바뀌어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백세시대는 분명 축복이 아니고 재앙이 아닌가 싶다. 오래 전에 130세까지 사시겠다는 분을 만났다. 그분의 건강으로 보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왜 진시황(秦始皇)을 비롯한 수많은 왕후장상 고승대덕들이 불로장생을 못 했을까? 130세까지 인생을 즐기시겠다는 그 분도 별 수가 없으셨든지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것보다는 최근 주위의 무관심 속에 쓸쓸히 죽음을 맞는 독거노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얼마 전 부산의 도심 주택가 단칸방에서 60대 할머니가 숨진 지 5년이 넘어 시신이 백골 상태로 발견되어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준 적이 있다. 특히 그 할머니가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경찰 발표가 있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3년 현재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125만2천명으로 전체 노인 613만8천명의 20.4%에 해당한다. 노인 4명 중 1명이 혼자 사는 셈이다. 2035년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이혼과 사별로 독거노인이 343만명으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사회는 인구구성의 급속한 노령화에 따른 위기에 봉착했다. 2000년 65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인구에 7.2%를 차지하게 되었다. UN이 정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것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현재 총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10.3%로 증가하였다. 이런 추세라면 2019년과 2036년에는 각각 고령사회와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빈곤이나 사회적 소외, 가족 친지의 교류가 단절됨에 따라 노인들의 ‘고독사’가 날로 증가할 것은 뻔한 일이다. 우리나라보다 일찍이 독거노인들의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일본의 경우와 같이 우리도 자치단체와 지역공동체가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해 혼자 사는 사람들의 안부를 점검하는 방법으로 전기와 가스 사용을 확인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이 시간에도 단절된 생활 속에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아픈 몸을 한탄하며 미래에 대해 절망하는 독거노인들이 우리 곁에 살아가고 있다.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 이들을 돌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인간의 수명을 100세시대로 연장하는 시도를 법으로라도 막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일본에선 해마다 1만명 넘게 목욕탕에서 익사한다고 한다. 대부분 노인들이다. 홀로 살다 이렇게 죽으면 며칠씩 모른 채 지나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욕조 익사’를 막는 장치들이 등장했다. 또 가스 사용량으로 독거 노인의 안부를 챙긴다. 노인이 아침에 가스레인지를 켜면 사용정보가 무선시스템을 통해 복지단체나 가족에게 전달된다. 사용량이 ‘0’이면 복지단체에서 집으로 전화를 건다. 벨이 30차례 울려도 받지 않으면 구조대가 달려간다.
필자는 천만다행으로 이런 비극을 막으려고 둘째 딸 애가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가까이 있으니 언제라도 소통이 가능하다. 아직은 ‘저녁이 있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덕화만발을 통하여 전 세계의 덕화만발 가족과 소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 소원은 100세 장수가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갔다가 다시 돌아와 또 이 일을 하는 것이다. 인생은 거래(去來)다. 우리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가기 보다는 어서 갔다가 어서 오는 것이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