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중국인들에게 꼭 배워야 할 것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내가 좋아하는 말 중 화광동진(和光同塵)에 이어 또 하나는 ‘화이불류(和而不流)’다. “더불어 산다”는 뜻으로 <중용>에 나오는 말이다. <논어> ‘자로편’(子路編)에 나오는 ‘화이부동(和而不同)’과 비슷한 말이다.

공자의 제자 중, 사나우면서도 성격이 급한 자로(子路)가 스승에게 강(强)함에 대하여 물었을 때, 공자는 이 질문을 기회삼아 ‘진정한 강자의 도리’를 말해주며 그렇게 처신 할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해 답한 내용 중에 나오는 표현이다.

공자는 자로에게 군자는 “和而不流하고, 中立而不椅하니, 强哉矯라”(화합하되 휩쓸리지 아니하고, 가운데 바로서서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 강한 것이다)고 말씀했다. 나아가 진정한 군자는 “나라가 바르게 다스려질 때라면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온 바 뜻을 변치 말고, 나라가 바르게 다스려지지 않을 때에는 비록 죽음에 이르더라도 지조(志操)를 변치 않는 것이 강한 것”이라고 하였다.

얼마 전 고명한 선지식(善知識) 한 분을 만났다. 나와 비슷한 연배인데 건강하고 맑은 기운이 돌아 마치 신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시간 대화를 하다 보니까 장광설(長廣舌)을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틈도 안 주시고 유아독존(唯我獨尊)하는 것 같아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분도 자기가 소속한 집단이나 조직이 있을 터인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저리도 화이불류를 거부하고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것에 가슴이 답답하였다. 단체나 조직에 ‘화이불류’하는 사람이 많으면 분위기도 좋고, 부정과 비리도 생기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동이불화(同而不和)’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단체와 조직의 앞날은 결코 밝지 않다.

양극단은 분란을 야기한다. 정치이념적인 극우와 극좌, 경제적 양극화, 종교·교파 간 선악, 이단 시비처럼 이분법적 흑백논리는 반목만 커진다. 지금이 중용에서 가르치는 ‘화이불류’ 정신을 되새길 때 아닌가? 공자는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고, 가운데 바로 서서 기울어지지 않는 게 강한 것”이라고 타일렀다.

이처럼 중용의 도가 귀하기에 성리학의 비조(鼻祖)로 일컫는 북송시대 주돈이(周敦?, 1017~1073)는 “오직 중용만이 조화롭고 규칙에 배합되며, 통달한 이치이기에 성인의 일이다.(惟中也者 和也 中節也 天下之達道也 聖人之事也)”라고 했다.

중용은 불교의 중도(中道)와 궤(軌)를 같이 한다. 석가모니는 생로병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행했다. 석가모니는 제자들에게 감각적 쾌락과 고행의 두 가지 극단을 피하고 중도를 따르라고 했다. 그렇다. 불가(佛家)에서 이를 세속과 어울리더라도 때를 묻히지 아니한다는 ‘화광부동진(和光不同塵)’이 ‘화이불류’와 통하는 이유일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을 만날 때 네 가지 말조심(愼言)하는 특징이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한다. 사람이 패가망신하는 원인의 80%가 신중하지 못한 말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말조심의 4가지 특징을 알아보자.

첫째, 처세계다언(處世戒多言)이다.

사람의 처세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하면 반드시 손해가 따르기 때문이다.

둘째, 무도인지단(毋道人之短)이다.

남의 단점을 지적하지 않는 것이다. 맹자(孟子)는 남의 단점이나 과실을 지적하면, 후일 반드시 번거로움이나 분쟁을 일으킨다고 가르쳤다.

셋째, 기교천언심(忌交淺言深)이다.

우정이 얕으면 깊은 말을 나누지 말아야 한다. 잘 모르는 상대에게는 30% 정도만 말하라는 것이다. 속마음을 다 털어 놓았다간 어떤 위험에 부딪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넷째, 불언불개구(不言不開口)다.

자신과 관련 없는 일에는 아예 입을 열지 않는 것이다. 누가 물어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모른다고만 답할 뿐이다.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귀신이라도 나를 해칠 방법이 없어 상대가 파고 들어올 틈새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인들에게 말조심은 자신을 보호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대단히 신중하다. 그밖에 중국인들이 남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방법 중 남과 원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 남과 원수가 되면 상대는 한을 품고 보복할 기회를 노린다. 원한이 클수록 보복도 커진다.

고금을 막론하고 원한을 쌓아두고 화를 당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남과 원수가 될 행동을 하지 않아야 안전하다. 중국속담에 또 이런 것이 있다. 첫째 재물을 쌓지 말고. 둘째 원한을 쌓지 말아야 잠을 자도 안전하고, 길을 가도 편안하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원수가 되지 않는 핵심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남이 숨기고 싶어 하는 사적인 것을 들추어내거나 남이 싫어하는 금기를 범하는 것, 남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 권세를 휘두르며 남을 무시하는 것, 남에게 무례한 것, 남의 단점을 말하는 것, 홀로 잘났다고 설치는 것 등은 모두 남들과 원한을 쌓는 행동들이다.

우리나라사람들은 사소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체면을 깎아내리거나,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도통군자라 하더라도 혼자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에 홀로 빛나 본들 아무도 그 사람에게 다가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화이불류!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으면 외톨이는 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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