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앞두고 천태종 개조 지자대사의 ‘삼생사’를 떠올리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인과(因果)는 원인과 결과라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고 본다. 인(因, 원인)과 과(果 , 결과)라고 해도 결코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선악의 행위에 따라 고락(苦樂)의 결과가 온다고 하는 선인낙과(善因樂果)·악인고과(惡因苦果)의 인과응보의 도리를 무시해서는 윤리적 행위는 성립될 수 없다고 본다.
인과는 원인과 결과의 상대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씨앗을 뿌리면 싹이 돋아나듯이 과에는 반드시 인이 있게 마련이다. 인과사상은 업(業)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업은 사람이 마음과 입과 몸으로 짓게 되는 갖가지 생각과 말과 행위의 결과다. 업이 인과 과를 결속시키는 매체로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불교사상에서 인과는 업인업과(業因業果)를 의미한다.
인과는 자연의 법칙이며, 종교의 교리에 앞서는 우주의 질서다. 질서는 결코 신에 대한 기도나 제사를 통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세에서의 인간의 행위나 존재방식은 전생에 베푼 선이나 악업에 의해서 결정되고, 현세의 인간행위가 미래의 화복고락(禍福苦樂)을 좌우한다는 가르침을 낳게 되었다.
곧, 현세의 선악·길흉·화복·고락은 모두가 전세에 저지른 업의 과보다. 그래서 인과는 현세에 착한 행위를 한 사람은 선한 세계인 천계(天界)나 사람으로 태어나고, 악한 행위를 한 사람은 죽은 뒤에 지옥이나 아귀(餓鬼)·축생(畜生)으로 태어난다는 불교의 기본철학으로 정착하게 됐다.
그러나 단편적이고 눈앞의 일에만 집착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 인과를 감지하고 증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끊임없이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교리체계를 발전시켜왔다.
‘구사론’(具舍論)에서는 인을 6인(六因), 연을 4연(四緣), 과를 5과(五果)로 구분하여 인·연·과의 복잡한 관계를 풀어 나갔고, 대승불교에서는 이를 계승하여 보다 복잡한 관계를 전개시켜 왔다. 그리고 과보를 받는 것이 시간적으로 달리 나타난다고 보고 이를 삼보(三報)로 나누어 해석하였다.
즉, 과보는 인을 심어서 곧바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의 환경이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된다고 보았다. 짓는 그 즉시로 받게 되는 것을 순현보(順現報), 짓는 즉시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 받기는 받되 언제 받게 될지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로 구분한다.
그 인과를 극적으로 알려주는 것 중에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말이 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마침 다른 일과 공교롭게 때가 같아 관계가 있는 것처럼 의심을 받거나 난처한 위치에 서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인과경>(因果經)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기가 지은 업은 자기가 받고, 자신이 뿌린 씨앗은 자신이 거둔다.” 이 말은 곧 좋은 인연을 지으면 좋은 결과를 낳고, 나쁜 업을 지으면 악한 과보를 받는다는 인과의 철칙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천태대사 지의(智?: 538~597)의 ‘해원석결’(解寃釋結)이란 법문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천태 지의는 수나라(581~618) 시대의 승려로, 천태종의 개조(開祖)다. 존칭으로 천태대사(天台大師)·지자대사(智者大師) 또는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로 불린다.
지자대사가 어느 날 지관 삼매(止觀三昧)에 들어계셨다. ‘지(止)’는 마음에 망상의 흔들림을 모두 찰나에 변화하는 무상한 것임을 알고 멈추게 하는 작업을 뜻한다. ‘관(觀)’은 마음이 지의 상태에 이르면 자신의 마음속에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스스로 볼 수 있게 됨을 이른다.
그때, 산돼지 한마리가 몸에 화살이 꼬친 채 피를 흘리며 지나간 후, 곧 이어 사냥꾼이 뒤를 쫓아와 “산돼지 한마리가 이곳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이때 대사가 사냥꾼을 보고 “사냥꾼이여! 그 활을 던져 버리시오”하며 이런 법문을 하였다.
오비이락파사두(烏飛梨落破蛇頭)/ 사변저위석전치(蛇變猪爲石轉雉)/ 치작엽인욕사저(雉作獵人欲射猪)/ 도순위설해원결 (導順爲說解怨結)
삼생(三生) 전에 까마귀가 배나무에서 배를 쪼아 먹고 무심코 날아가자 나무가 흔들리는 바람에 배가 떨어져 그 아래서 빛을 쬐이고 있던 뱀의 머리를 때려죽이고 말았다. 이렇게 죽게 된 뱀은 돼지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뱀을 죽게 한 까마귀는 생을 마치고 꿩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숲속에서 꿩은 알을 품고 있었다. 이때 돼지가 칡뿌리를 캐먹다가 돌이 굴러 꿩이 죽었다. 이렇게 죽음을 당한 꿩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사냥꾼이 됐다. 이 사냥꾼이 그 돼지를 활로 쏘아서 죽이려는 순간, 지자대사가 이들의 지난 삼생사(三生事)를 내다보고 더 큰 원결(怨結)과 악연으로 번져가지 못하도록 사냥꾼에게 이 같은 해원(解怨)의 법문을 설해주게 된 것이다.
지자대사로부터 삼생사에 얽힌 법문을 듣게 된 사냥꾼은 크게 뉘우치며 그 자리에서 활을 꺾어 던지 버리면서 “다시는 살생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