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에게 전하는 말, “남편나무 잘 키워 부부나무로 결실 맺으라”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젊은 시절 온통 밖으로만 나돌다가 이 나이 들어서야 아내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도대체 남편이란 족속들은 어떤 존재일까?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배우자를 가리키는 호칭이다. 우리의 전통 관념에 의하면 아내와 남편은 대등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 않았다.

가계(家系)는 남자 계통으로 이어져야만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가정의 주축은 남자 즉 남편이요, 아내는 단지 가계의 존속을 위하여 보조적인 수단으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문화에서의 남편의 개념을 밝히기 위해서는 가정생활 및 부부관계에서 남편의 위치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남편이란 단지 아내의 배우자 이상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남편·신랑·사내·부군·아이아버지 등의 호칭은 단지 아내의 배우자를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감·사랑양반·가장·우리집주인·주인어른·나으리 등의 호칭은 남편이 한 가정의 주축이요, 우두머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더러는 남편과 아내를 각기 ‘하늘’과 ‘땅’에 비유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이것은 곧 전통사회의 가족생활에서 남편은 권위를 행사하고, 아내는 상대적으로 예속적인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친족제도는 부계제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가족의 중심이 남자, 즉 가장 또는 남편이어서 부부관계는 결코 대등한 관계로 인식되지 않았다. 혼인에서도 아내는 남편의 가문으로 옮겨와서 흡수되는 것이고, 서구사회에서와 같이 남녀 두 사람이 결합하여 새로운 가정을 만든다는 개념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또 아내는 두 남편을 섬겨서는 안 된다고 하여 비록 남편과 사별하더라도 개가(改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친정의 가문을 더럽히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남편의 생사와 관계없이 아내는 시댁에 남아 자신의 구실을 다할 것이 요구되었다.

우리나라 민요에는 부인들의 남편에 대한 원망과 한(恨)을 노래한 이른바 ‘남편요(男便謠)’가 적지 않다. 그 대부분이 시부모를 모시고 고생하면서 살고 있는 아내에게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속이나 썩이고 고통이나 주는 등 귀찮은 존재로서의 남편에 대한 한탄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대가족에서의 가장, 즉 남편들은 종래의 농경생활에서와는 달리 하루 일과의 거의 대부분을 가정 바깥에서 보낸다. 반면에 가정생활은 거의 대부분이 아내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다. 이런 생활양식의 변화로 남편의 전통적인 권위는 점차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현대가족에서 남편의 권위가 약화 내지 축소되었다는 점은 아내인 여성의 지위상승과 결코 별개의 것은 아니다. 사실상 현대사회에서의 생활양식은 전통사회에서처럼 남편의 강력한 권위를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남편이란 존재는 거의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것 같다.

KBS라디오에서 소개되어 감동을 주었던 글이 있다. ‘남편나무’라는 제목이다.

남편이라는 나무가 내 옆에 생겼습니다. 바람도 막아주고, 그늘도 만들어주니 언제나 함께 하고 싶고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나무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나무 때문에 시야가 가리고 항상 내가 돌봐줘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할 때도 많았습니다.

비록 내가 사랑하는 나무이기는 했지만, 그런 나무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귀찮고 날 힘들게 하는 나무가 밉기까지 했습니다. 괜한 짜증과 심술을 부리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나무는 시들기 시작했고,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심한 태풍과 함께 찾아온 거센 비바람에 나무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저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 다음날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나무가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여겼던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사랑을 주지 않으니 쓰러져버린 남편나무가 얼마나 소중한지 말입니다.

내가 나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이에 나무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그늘이 되었다는 것을!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는 쓰러진 나무를 일으켜 다시금 사랑해 줘야겠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필요한 존재임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나무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들의 남편나무는 혹시 잎이 마르거나 시들진 않는지요? 남편이란 나무는 사랑이란 거름을 먹고 삽니다.

일방적이고 굴종적(屈從的)인 부부관계란 있을 수 없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보듬지 않으면 남편이든 아내든 그 나무는 시름시름 앓다가 쓰러지고 만다. 나이 들어 다리도 아프고 눈도 아파 남편나무가 시들어 간다. 그런 내게 아내는 지팡이이며 눈이고 보호자다.

일방적인 사랑은 없다. 최근 쌍방이 함께 사랑하는 방법을 찾았다. 온종일 집안일을 하며 남편을 돌보느라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저녁에 온 몸을 주물러 주는 것이다. 이 일에서 기쁨을 느낀다. 그나마 남편 노릇을 조금이나마 하는 것 같아서다.

이제야 우리 집의 부부나무가 싱싱하게 피어난다. 부부의 도는 첫째 화합이다. 부부가 서로 경애하고 그 특성을 서로 이해하며 선(善)은 서로 권장하고 허물은 서로 용서한다. 둘째는 신의다. 부부가 서로 그 정조(貞操)를 존중히 하고, 세상에 드러난 큰 악이 아니고는 어떠한 과실이라도 관용하고 끝까지 고락을 함께 하는 것이다. 부부의 도를 실행하면 부부나무는 언제나 푸르고 풍성한 열매를 거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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