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서 가장 맘에 드는 대목 “성긴 대숲에 부는 바람은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명대의 고전에 <채근담>(菜根譚)이 있다. 明代 말의 문인 환초도인(還初道人) 홍자성이 저작한 책이다, 책의 구성은 전편 222조, 후편 135조로 되어 있다. 주로 전편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후편에서는 자연에 대한 즐거움을 표현 하였다. 내용은 인생의 처세를 다룬 것이다. 채근이란 나무 잎사귀나 뿌리처럼 변변치 않은 음식을 말한다.
1644년경 만들어진 <채근담>은 전집(前集)에서는 현실에 살면서도 현실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가짐과 처세, 후집(後集)에서는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풍류를 주제로 한다. 책의 내용은 경구적(警句的)인 단문들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지혜를 일깨워주며, ‘속세와 더불어 살되 비루함과 천박함에 떨어지지 않게’ 도와준다.
특히 필자 마음에 와 닿는 구절 몇 개를 소개한다.
바람은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지나가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기러기가 차가운 연못을 지나가도 기러기가 지나가고 나면 그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이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워진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소유하기를 원한다. 그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것,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면 가리지 않고 자기 것으로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남의 것이기보다는 우리 것으로, 그리고 우리 것이기보다는 내 것이기를 바란다. 나아가서는 내가 가진 것이 유일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기 위하여 소유하고 싶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얼마나 맹목적인 욕구이며 맹목적인 소유인가? 보라! 모든 강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듯이, 사람들은 세월의 강물에 떠밀려 죽음이라는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된다. 소유한다는 것은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사물이 어느 한 사람만의 소유가 아니었을 때 그것은 살아 숨 쉬며 이 사람 혹은 저 사람과도 대화한다. 모든 자연을 보라.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가고 나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듯이, 모든 자연은 그렇게 떠나며 보내며 산다.
하찮은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지나간 일들에 가혹한 미련을 두지 말라. 그대를 스치고 지나는 것 들을 반기고 그대를 찾아와 잠시 머무는 시간을 환영하라. 그리고 비워두라. 언제 다시 그대 가슴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경구다. 재색명리(財色名利)에 집착하지 않으면 좋겠다. 집착의 말로가 너무 허망(虛妄)하니까 말이다.
한 부부가 숱한 고생을 하면서 돈을 모아 80여평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장만했다.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어가면서 온갖 고생 끝에 장만한 아파트다.
거기다 최첨단 오디오 세트와 커피 머신을 사서 베란다를 테라스 카페처럼 꾸몄습니다. 이제 행복할 것 같았지만 사실 두 부부는 이 시설을 즐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루는 남편이 회사에 출근한 후 집에 무엇을 놓고 온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놓고 온 물건을 가지러 집에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정부가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 한 잔을 뽑아서 베란다의 테라스 카페에서 집 안의 온 시설을 향유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부부는 허겁지겁 출근해서 바쁘게 일하고 다시 허둥지둥 집에 들어오기에 자신들이 장만한 시설을 즐길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더 넓은 아파트 평수, 더 좋은 오디오, 더 멋진 테라스 카페, 더 근사한 커피 머신을 사기 위해 밤낮으로 일한다. 그렇게 살다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행복은 목적지에 있지 않고 목적지로 가는 여정(旅程)에 있다.
지금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지금 행복해야 된다. 나중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집착을 버리면 행복이 보인다. 재물은 모두 인연의 모임이다. 재물은 주인을 찾아 항상 흘러간다.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다른 주인을 찾아 흘러간다. 영원한 나의 것은 없다.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는 것에 애착(愛着) 탐착(貪着) 원착(怨着)을 두는 것이 바로 집착이다. 집착을 가지면 괴로움만 커질 뿐이다.
집착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나의 것으로 삼고자 하는 욕심을 놓아 버리면 근심과 두려움은 절로 사라진다. 부드럽고(柔), 화합하고(和), 착하고(善), 순수한(順)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이 유?화?선?순보다 더 큰 힘은 없다. 아무리 강한 것이라 해도 부드러운 것을 이기지 못하고, 쟁투는 화합을 넘어서지 못하며, 이기심은 선한 마음을, 약삭빠름은 순수함을 따라잡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