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하루 앞으로, ‘막말정치인’ 누군지 기억하시죠?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4.13선거가 내일로 다가왔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는 고사성어가 있다. 사람의 입이 화(禍)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송(宋)나라 태종이 이방에게 칙명을 내려 편찬된 <태평총류>에 나온다. 내용은 이렇다.

“정신은 감정에 의해서 발현되며, 마음은 입을 통해서 발표된다. 복이 생기는 것은 그 징조가 있으며, 화가 생기는 데도 그 단서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함부로 감정을 표출하거나 지나치게 수다를 떨어서는 안 된다. 작은 일은 큰 일의 시작이 되고, 큰 강도 작은 개미구멍으로 터지며, 큰 산도 작은 함몰로 기울어진다. 이처럼 작은 일이라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병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군자란 항상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달 새누리당 공천과 관련하여 윤상현 의원의 막말이 세간에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이른바 ‘막말파동’이다.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복종하게 만들면, 그 온몸을 조종할 수 있다. 배는 작은 키로 조종된다. 마찬가지로 혀도 작은 지체(肢體)에 지나지 않지만 큰일을 한다고 자랑한다. 그 자만이 지나쳐 아주 작은 불씨가 큰 수풀을 태워 버릴 수 있다.

혀도 불이다. 국민들이 이따위 막말정치판에 무슨 희망을 걸겠는가? 민심이 천심이다. 민심은 막말을 서슴지 않는 정치인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어려운 서민들이 안중에 있을 리가 없다. 도대체 국민을 섬기기는 고사하고 안중에도 없는 정치판을 보며 비분강개하지 않을 국민이 있겠는가?

윤기(尹?, 1741∼1826)의 <무명자집>(無名子集)』‘자식들을 깨우치고 스스로도 반성하며’(警兒輩 又以自省)라는 글에 세치 혀를 조심하라는 시가 나온다.

“사람에게 말은 물이나 불과 같다.(人之於言猶水火)/ 사람은 물과 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人非水火不生)/ 수재나 화재를 당하면 참혹하기 그지없으니(而罹其禍則甚酷)/ 조심하여 사용해야 폐해가 없다.(愼其害則無弊)”

윤기의 나이 57세 때인 1797년 남포 현감(藍浦縣監)에서 파직된 뒤, 1799년까지의 어느 시점에 쓴 작품으로 추정된다. 비록 파직이었지만 작자는 바쁜 직무에서 벗어나 집에서 한가로이 기거하며 지난날 화를 당한 일을 상기한다. 그리고 그는 자식들에게 해를 피하여 몸을 온전히 지키도록 경계시키는 한편 스스로를 반성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 글을 지었을 것이다.

윤기는 서문에도 말조심에 대해 이렇게 썼다. “입은 화를 부르고, 행동은 흔단(?端, 일에 틈이 생기는 실마리)을 여니, 명심하고 명심하여, 경계하고 조심하라.”(惟口招禍 惟動啓? 念?在? 必戒必愼) 사실 말에 대한 경계는 어느 시절 누구나 언급하고 있다. 말을 조심하지 못하면 크게는 가패신망하고, 작게는 창피를 당하고 미움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환란이 말에서부터 나온다. 한 번 입에서 나갔다 하면 말(馬)을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고, 손으로 가릴 수도 없으며, 바닷물로도 씻어낼 수 없으니, 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입을 다물고만 있어서도 안 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양쪽 다 옳다는 양시론(兩是論)으로 처세하면서 자신은 세상 살아가는 법을 안다며 자부하면 안 된다. 말을 삼가되 의리와 인륜에 관계된 것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할 때는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의리와 인륜에 관계된 일이라면 화를 당할지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을 윤기는 은연중에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 왜 남의 단점이나 허물을 내 입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첫째, 자기를 상하게 하는 화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대개 남의 단점이나 허물을 전할 때는 “이것은 너에게만 말하는 것인데” 하면서 비밀스럽게 얘기한다. 하지만 조심하지 아니하면 언젠가는 상대방이 알게 되고 도리어 자신에게 화가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둘째, 과연 내 자신은 완벽한가 하는 것이다. 아마도 남의 허물이나 단점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한 사람은 그리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말 한 마디라도 어찌 가볍게 쏟아 낼 수 있을까?

셋째, 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단점이나 허물 또는 비밀을 상대방에게만 얘기 할 수 있다. 그러나 듣고 있는 상대방이 나의 허물이나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의 허물이나 비밀을 말하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 신뢰가 무너져 가까이 못할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구시화문’이라 했지만 실은 ‘구시화복문(口是禍福門)’이다. 왜냐하면 잘못 쓰면 입이 화문이지만 잘 쓰면 복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은 항상 상대방을 살리는 말, 서로 화(和)하는 말, 넉넉한 말을 해야 한다. 이것이 군자의 말이다. 4.13 총선에서 막말의 정치배(政治輩)를 뽑아서는 안 된다. 말 한 마디에도 죄와 복이 왕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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