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100년] 육바라밀···부처도 사람, 서원 세워 수행하면 ‘성불’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지난 4회에 걸쳐 소승불교의 ‘삼법인’(三法印), ‘십이연기’(十二緣起)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에 대해 알아보았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대승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을 공부해 보자. 우리나라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보살의 실천 행을 육바라밀이라고 한다. 생사의 고해를 건너 이상향인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실천수행법이다.

불교의 교리 상으로는 바라밀은 미망(迷妄)과 생사의 차안(此岸, 이 언덕)에서 해탈과 열반의 피안(波岸,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를 위해 보살이 닦는 덕목·수행·실천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바라밀은 뜻에 따라 번역하여 도피안 또는 도라고도 한다.

도피안(到彼岸, 피안에 이르다)은 열반이라는 이상적인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도(度)는 현실의 차안에서 이상적인 상태인 피안으로 사람들을 넘기기 위한 덕목·수행 또는 실천이라는 의미다. 육바라밀의 수행법에서 보시를 제일 먼저 둔 까닭은 사회의 모든 사람이 상호협조적인 보시자선을 행하는 것이 대승불교로서는 가장 필요한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육바라밀에는 팔정도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는 이외에 팔정도에 없는 보시와 인욕이 포함되어 있다. 이 두 가지가 대사회적인 것으로서 이타적(利他的)인 대승불교의 특질을 나타낸다.

첫째,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이다. 보시는 재시(財施)·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의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재시는 자비심으로서 다른 이에게 조건 없이 물건을 주는 것이고, 법시는 다른 사람에게 부처의 법을 말하여 선근(善根)을 자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외시는 스스로 계(戒)를 지켜 남을 침해하지 않고 다른 이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 주는 것이다.

둘째,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이다. 계율을 지키고 항상 자기반성을 하여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는 것이다. 지계는 부처가 제자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막기 위하여 설정해 놓은 법규를 지키고 범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다. 가지가지 선을 실천하고 모든 중생을 살찌게 하는 행위까지를 포함한다.

셋째,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이다. 고난을 이겨나가는 법(忍辱)을 진실로 인정하고 이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욕은 온갖 모욕과 번뇌를 참고 어려움을 극복하여 안주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인 성나고 언짢은 마음을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한다.

인욕에는 네 가지가 있다.

1.복인(伏忍)으로,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먼저 성나는 그 마음을 조복(調伏)하여 억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역경만 참아서는 안 되며, 자기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순경(順境)도 참아야 한다. 그 이유는, 역경을 참지 못하면 분노가 치밀어서 투쟁하기 쉽고, 순경을 참지 못하면 유혹에 빠져서 몸과 마음을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2. 유순인(柔順忍)으로, 사람이 참기를 많이 하면 저절로 조복이 되어서 역경이나 순경을 만날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3. 무생인(無生忍)으로, 참고 견디어 보살의 지위에 오른 사람의 인욕 행을 말한다. 인생이 무상하며 세상이 허황함을 깨닫고 일체만법(一切萬法)이 인연으로 모였다가 인연으로 흩어지는 진리를 깨닫고 보면 별로 성낼 것도 없고 참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4. 적멸인(寂滅忍)으로, 이것은 부처의 지위에 있어서의 인욕행이다. 생사고해에 뛰어나서 본래부터 적멸한 열반의 경지에 서서 볼 때 한 물건도 없는 경계를 의미한다.

넷째,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이다. 보살로서의 수행을 힘써 닦으며 꾸준히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정진은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 마음으로 항상 부지런히 닦아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다는 생각과 닦을 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정(精)은 순일무잡(純一無雜)을 의미하고 진(進)은 용맹무퇴를 말한다.

다섯째, 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이다. 마음을 안정시켜 올바른 지혜(無分別智)가 나타나게 하는 수단인 선정(禪定)을 닦는 것을 말한다. 선정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공부로서 망념과 사념과 허영심과 분별 심을 버리게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정신을 통일하는 것이다. 일심이 되어야 지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섯째,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다. 진실하고 올바른 지혜, 즉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작용시키는 것을 말한다. 반야는 지혜라고 번역한다. 모든 사물이나 이치를 밝게 꿰뚫어보는 깊은 슬기다. 지식과 다른 점은 지식이 분별지(分別智)인 데 반하여 지혜는 무분별지다. 보살이 피안에 이르기 위하여 수행하는 육바라밀 중 마지막의 반야바라밀이 반야다. 반야는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①문자반야(文字般若)는 부처님이 설한 경(經)·율(律)·논(論) 모두를 가리키는 것이고 ②관조반야(觀照般若)는 경·율·논의 문자반야를 통하여 진리를 알아내고 진리에 의하여 수행하는 것이며 ③실상반야(實相般若)는 부처가 체득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육바라밀을 무량한 세월 동안 수행함으로써 성불하게 된다. 부처는 누구이고 중생은 누구인가? 부처도 사람이다. 서원(誓願)을 세워 하고 또 하고 되는 날까지 수행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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