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이런 사랑해 보신 적 있나요?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열부(烈婦)라는 말은 기혼녀로서 남편의 뒤를 따라 죽는 부인을 이른다. 또 목숨을 끊음으로써 강포자(强暴者)에 항거하는 부인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며칠 전 아내와 점심을 먹다가 나의 식사와 일상사에 세심하게 마음 써주는 것이 너무 고맙고 미안해 “열부 났네! 열부 났어!” 하고 놀린 적이 있다.

놀리긴 했으나 생각해 보면 지금 이 나이에 아내마저 없다면 어찌 했겠나? 잘 걷지도,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면 아마 이렇게 살아 있지도 못했을 거다. 열부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목숨을 바쳐 정조(貞操)를 지키는 열부가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조선시대의 전통사회에서는 수많은 과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일부종사(一夫從事)’, ‘불경이부(不更二夫)’의 예를 지켰다. 우리의 열부와는 다르지만 다른 모습의 영국판 감동의 열부가 있어 소개한다. 영국 지하철 안내방송에 얽힌 감동 실화다. 2012년 런던의 엠벵크먼트 역에 매일 아침이면, 이곳을 찾아오는 60대 여인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전철을 이용하지 않고, 하루 종일 승강장에 앉아 있다가 그냥 돌아갔다. 이런 행동이 수개월째 반복되자, 역무원들은 그녀를 의문의 여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2012년 11월, 수개월째 조용히 승강장에 머물러 있던 그녀가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역무원을 찾았다.

역무원에게 다가간 그녀는 울먹이며 “Mind the gap!”이라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 ‘Mind the gap’은 열차 탑승 시,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틈을 조심하라는 안내 메시지다. 그녀는 왜 이 안내 문구를 말하며 울먹인 걸까? 사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의 이름은 마가렛. 1992년 모로코로 휴가를 떠난 그녀는 공항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매력적인 목소리를 듣게 된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시 여행의 가이드를 맡았던 오스왈드.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마가렛과 오스왈드는 사랑에 빠지고, 둘은 11년 연애 끝에 2003년 결혼을 하였다. 남편 오스왈드는 배우를 꿈꾸며 혼신의 노력을 다했지만 크게 빛을 보진 못했다. 그러나 오스왈드는 아내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다.

2007년, 오스왈드는 갑작스러운 심혈관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스왈드가 떠나고 홀로 남은 마가렛은 자신을 한 없이 사랑해준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친다. 절망과 상실감에 휩싸인 마가렛에게 유일한 위안은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는 것이었다.

남편의 사진을 보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녀는 어느 날, 오스왈드가 젊은 시절에 전철의 안내 메시지를 녹음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됐고, 그 길로 마가렛은 집 근처 전철역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전철역에서 남편 오스왈드가 녹음한 “Mind the gap”이라는 안내 방송을 듣는 순간 마가렛은 마음에 큰 위로를 얻었다.

이후, 그녀는 매일 전철역을 찾아가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며 삶의 의미를 찾아갔다. 그런데 안내 방송이 디지털로 전환되며 새로운 여자 목소리로 방송이 바뀌었고 오스왈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역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영국에서 오직 엠벵크먼트 역에서만 오스왈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가렛은 매일 집에서 180km 떨어진 엠벵크먼트 역까지 찾아가 오스왈드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엠벵크먼트 역마저 안내 방송이 디지털로 바뀌어 오스왈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자, 그녀는 다급히 역무원을 찾았던 것이다.

이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역무원들은 다시 오스왈드의 목소리로 안내 방송이 나올 수 있도록 런던교통국에 요청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런던교통국은 마가렛이 집에서도 오스왈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안내 방송을 디지털로 복원해 선물했다. 그 뿐 아니라 런던 교통국은 엠벵크먼트 역에서만은 오스왈드 목소리로 안내 메시지가 나올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영국에서 유일하게 엠벵크먼트 역에서는 오스왈드의 목소리로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다. “Mind the gap!”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정의 비롯은 부부다. 그래서 부부간에는 도가 있어야 한다. 성인도 “군자(君子)의 도는 부부로 비롯된다”고 했다.

부부의 도를 알아보자.

첫째, 화합(和合)이다. 부부가 서로 경애하고 그 특성을 이해하며, 선은 서로 권장하고 허물은 서로 용서하며, 사업은 서로 도와서 끝까지 알뜰한 벗이 되고 동지가 되는 것이다.

둘째, 신의(信義)다. 부부가 서로 그 정조를 존중히 하고, 방탕하는 등의 폐단을 없이 한다. 그리고 세상에 드러난 큰 잘못이 아니고는 어떠한 과실이라도 관용하고 끝까지 고락을 함께하는 것이다.

셋째, 근실(勤實)이다. 부부가 서로 자립하는 정신 아래 부지런하고 실답게 생활하여 넉넉한 가정을 이룩하는 것이다. 또한 인륜(人倫)에 관한 모든 의무를 평등하게 지켜나간다.

넷째, 공익(公益)이다. 부부가 합심하여 국가나 사회에 대한 의무나 책임을 서로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선사업이나 교화 교육사업 등에 힘 미치는 대로 협력한다.

부부간에 도가 있으면 열부(烈夫)도 나고 열부(烈婦)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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