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경허와 제자 한암 스님의 ‘화광동진’ 삶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말이 있다. <노자>(老子) 4장에 나오는 글이다.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과 함께하다”라는 의미다. 자신의 덕과 재능을 감추고 세속을 따르고 속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비유하는 것을 말한다.

“도는 비어 있어 아무리 써도 차지 않는다. 연못처럼 깊어 만물의 으뜸인 듯하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만들고 혼란함을 풀어 주며,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과 함께한다. 깊고 그윽하여라. 무엇인가 있는 듯한데 나는 누구의 아들인지 알지 못한다. 제왕보다 먼저일 것이로다.”(道沖而用之, 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湛兮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王之先.)

노자 56장에는 이렇게 말한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 법이며, (아는 척)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이목구비를 막고 욕망의 문을 닫으며, 날카로운 기운을 꺾고 혼란함을 풀고, 지혜의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과 함께하니 이것을 현동(玄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친해질 수도 없고 소원해지지도 않으며, 이롭게 하지도 않고 해롭게도 하지 못하며, 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 귀한 것이 된다.”

이렇게 지혜의 빛을 늦추고 속세의 티끌과 함께한다는 뜻의 ‘화기광 동기진’에서 ‘화광동진’이란 말이 유래했다. 그런데 불가(佛家)에서도 부처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그 본체를 숨긴 채, 스스로 윤회의 굴레를 타고 인간계(人間界)에 태어나 중생들 속에 섞여 살면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말로 쓰기도 한다.

그러니까 불가의 화광동진은 빛을 감추고, 진속(塵俗)에 섞인다는 뜻이다. 자신의 뛰어난 덕성(德性)을 나타내지 않고 세속을 따른다는 말이다. 속세의 티끌과 같이 한다는 뜻인 화광동진은 자기의 지덕(智德)과 재기(才氣)를 감추고 세속에 맞춰 따름을 이르는 말이다.

특히 불가에서는 속세에 살면서도 번뇌에 물들지 않는다. 항상 열반(涅槃)의 도를 수행하는 원력수생(願力受生)의 실천을 강조한다. 이것이 대승보살(大乘菩薩)의 정신을 실행하려는 일종의 화광동진행(和光同塵行)이다.

우리는 티끌먼지 속에 허덕이는 불쌍한 중생들이다. 그런데 종교가 각자 섬기는 그들의 신(神)을 향해 열심히 기도만 잘하면 부자가 되어 잘 산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천당이니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식의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선동획책을 한다. 그건 이미 참종교의 모습이 아니다.

지금 일부 종교에서는 너무 똑똑한 성직자들이 신도들의 눈을 속이고 돈을 긁어 모으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내용을 알아보니 노후대책이 서지 않아 그렇게 열심히 돈을 밝힌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조금 바보처럼 살아가는 대다수 성직자들의 모습은 여간 성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그렇게 화광동진하는 많은 성직자들에 의해 세상은 조금이나마 맑고 밝고 훈훈해지는 것이다.

청나라 정판교(鄭板橋, 1693~1765)라는 사람은 ‘난득호도(難得糊塗)’를 삶의 철학으로 삼았다. 난득호도는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면서 살기도 힘들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이 쓴 시(詩)에서 이렇게 읊었다.

“총명해 보이기도 어렵지만/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어렵다./ 총명한데 바보처럼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 내 고집을 내려놓고, 일보 뒤로 물러나면/ 하는 일마다 마음이 편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의도하지 않아도 나중에 복이 올 것이다.”

그럼 화광동진과 난득호도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경허(鏡虛, 1849~1912) 선사가 제자 한암(漢巖, 1876∼1951) 선사와 가까이 오래하고 싶은 마음에 글 한 편과 시(詩) 한 수를 지어 한암에게 전했다.

“나는 천성이 화광동진을 좋아하고 더불어 꼬리를 진흙 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스스로 삽살개 뒷다리처럼 너절하게 44년의 세월을 지내다 우연히 한암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선행은 순직하고 또 학문이 고명하여 1년을 같이 지내는 동안에도 평생에 처음 만난 사람인양 생각되었다.

그러나 오늘 서로 이별하는 마당에 서게 되니, 아침저녁의 연운(煙雲)과 산해(山海)의 멀고 가까움이 진실로 보내는 회포를 뒤흔들지 않는 것이 없다. 하물며 덧없는 인생은 늙기 쉽고, 좋은 인연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 즉, 이별의 섭섭한 마음이야 더 어떻다고 말할 수 있으랴.

옛날 사람은 말하기를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 차 있지만, 진실로 내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랴’고 하지 않았던가. 과연 한암이 아니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지음(知音)이 되랴. 그러므로 여기 시(詩) 한 수를 지어 뒷날에 서로 잊지 말자는 부탁을 하노라.”

북해에 높이 뜬 붕새 같은 포부/ 변변치 못한 곳에서 몇 해나 묻혔던가./ 이별은 예사라서 어렵지 않지만/ 뜬 목숨 흩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으랴.

이처럼 간절한 스승의 글과 시를 받아본 한암 스님은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스승께 바쳤다.

“서리국화 설중매는 지나갔건만/ 어찌하여 오랫동안 곁에 둘 수 없을까./ 만고에 변치 않고 늘 비치는 마음 달/ 뜬세상에서 뒷날을 기약해 무엇하리요.”

도인들의 화광동진 하는 모습,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지덕과 재기를 자랑삼는 일 없이 속인과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추던 경허 선사와 월정사에서 마지막 좌탈입망(坐脫立亡)에 드신 한암 선사의 화광동진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빛나기는 쉬워도 번쩍거리지 않기는 어려운 것이다. 조금 바보처럼 사는 것이다. 무조건 베푸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위하여 맨발로 뛰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면 바로 그 모습이 화광동진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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