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도 말했다 “인생은 언제나 단 한번의 선택뿐”이라고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명예회장] 인생이란 무엇일까? 무엇을 얻고 무엇을 찾으려고 태어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얻을 수 없고 찾을 수 없는 것이 인생살이다. 어쩌면 고통, 슬픔, 괴로움, 아픔 속에 살다가 죽는 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다.
경전에서는 한 마디로 인생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라고 했다. 생로병사의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생(生)도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것만이 생이 아니다. 태어나서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고도 적어도 30세까지는 배우고 단련하고 자라는 것이다.
노(老)는 30세 이후 점차 늙어가는 것을 말한다. 늙어 가면서 50대까지는 돈도 벌고 가족도 부양하며 자식들 공부시키고 노후생활도 준비한다. 늙어가는 것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숙기(老熟期)이고 다른 하나는 노쇠기(老衰期)다. 노숙기는 인생의 절정기로 익어가는 것이고, 노쇠기는 60부터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또한 병(病)과 사(死)는 같은 것이다. 약존약망(若存若亡)이라 했다. 죽을 것도 같고 살 것도 같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노와 병사가 우주의 진리이고 자연의 순리인데 사람들은 늙어갈수록 아프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 친다. 잘 죽어야 잘 태어날 수 있는데 말이다. 죽는 것에도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
1차죽음은 숨이 멎고, 2차죽음은 체온이 식어가며 3차죽음은 몸에서 수분이 다 빠져나간다. 4차죽음은 백골이 되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흩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5차죽음도 있다. 우리의 인생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천추(千秋)에 빛나는 이름도 있고, 죽자마자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허무한 죽음도 있다.
죽으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나쁜 일만 하다가 가는 사람은 사람들이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좋은 일만 하다 떠나는 사람은 칭송 속에 좋은 곳으로 간다. 어차피 사는 인생 널리 베풀고 공덕을 높이 쌓아 많은 사람들의 추모 담(追慕談)을 들으며 천년만년 그 이름을 드날리면 어떨까?
생로병사란 어차피 고통, 그래서 인생이 고해(苦海)라 했다. ‘고’ 가운데 노쇠기에 들어 더욱 고통 속에 산다면 그보다 더한 괴로움과 비참함은 없을 것이다. 이 노쇠기에는 삼고(三苦)와 삼금(三禁)이 따른다. 이것을 알아야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다.
첫째, 삼고(三苦)다. 여기엔 빈고(貧苦), 병고(病苦), 독고(獨苦)가 있다. 젊어서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 설 수 있다. 그러나 늙으면 정열이 사라져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늙고 병들면 어디서 돈도 빌릴 수 없는 처량한 신세를 면할 수 없다, 병고를 이기지 못해 많은 노인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둘째, 삼금(三禁)으로 노욕을 부리지 않으며, 추억담을 하지 않고 중담(重談) 즉 한 얘기 또 하는 것을 말아야 한다.
제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물었다.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을 사과나무숲으로 데리고 갔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과수원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며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사과를 하나씩 골라오도록 했다. 다만 다시 뒤로 되돌아갈 수 없으며 선택은 한번뿐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학생들은 사과나무숲을 걸어가면서 유심히 관찰한 끝에 가장 크고 좋다고 생각되는 사과를 하나씩 골랐다. “모두 제일 좋은 열매를 골랐겠지?” 학생들은 서로의 것을 비교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자기가 고른 사과가 만족스럽지 못한가보지?” “선생님 다시 한번만 고르게 해 주세요” 소크라테스는 껄껄 웃더니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바로 인생이다. 인생은 언제나 단 한번의 선택을 해야 하거든.”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서지만 기회는 늘 한번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