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최후의 승리는 탁월함보다 인내에 달려있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인생에서 최후의 승리는 탁월함에 있지 않고, 인내하는 자에게 있다. 참는 것, 인내하는 건 꾸준함과 같다는 말이다. 어려운 것, 아픈 것을 참는다는 것도 인내지만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꾸준함을 잃지 않는 게 진짜 참는 것이다.

꾸준함을 잃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면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최후의 승리자에게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인내를 해야 하는 대상, 그러니까 인내해서 이루려는 목표가 옳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참고 있는 것은 결국 잘못된 결과를 낳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경쟁에서 낙오자가 될까 불안해 한다. 세상은 앞서가는 승자만을 격려하는 곳이 아니다. 조금 모자라고 다소 부족할지언정 바른 서원(誓願)을 세우고 간단없는 수행을 통해 삶을 충실히 살아내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다. 올바른 경쟁을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그 긴 기간 이어지는 인생길에서 일순간의 실패와 좌절로 절망하면 안 된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늘 이길 수만은 없다. 경쟁에서 패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것에 익숙한 우리는 흔히 학교에서 1등을 하는 아이가 가장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나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칭송받는 사람들 중에는 학교 성적이 그리 우수하지 않았던 사람이 꽤 많다.

그들은 비록 학업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끈기가 있었다. 끈기는 목적을 이루는 동력이자 습관이기도 하다. “싫은 일을 하는 시간 5분을 인내하는 사람은 50분도 인내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탁월함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끈기라는 자양분을 먹고 사는 것이다.

“결국은 끈기가 실력”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화려한 성취를 이룬 모든 사람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끈기다. 지금 이 순간 다소 흔들리고 잘못 해도 괜찮다. 긴 인생 동안 원하는 것을 향해 ‘지성여불’(至誠如佛) 정신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결국 최후의 승자로 남을 것이다. 그 지극한 정성이 곧 부처다. 그리고 정성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것임을 잊으면 안 된다.

<삼국지>에서 자만에 빠진 관우가 허망하게 죽자, 장비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복수를 다짐하다가 부하에게 죽임을 당하고, 유비마저 절치부심하다 세상을 떠난다. ?이제 촉한(蜀漢)의 운명은 제갈량의 두 어깨에 달렸다. 북벌에 나선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위와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돌풍이 몰아치더니 촉 군의 군기가 부러지고, 제갈량은 그것을 자신의 운명이 다한 것으로 여기고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촉한의 운명도 이것으로 끝장이 났다. 한편 위나라의 대장군 사마의는 삼방곡에서 제갈량의 화공을 당했다.

모진 화공은 그의 모든 군사와 식량을 삼켜버렸으며 패전은 시간문제였다. ?사마의의 목숨도 경각에 달렸다. 그런데 그 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마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사마의는 하늘이 자신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평생 조조와 그의 친족들에게 의심을 받고 무시당해 왔으며, 이미 죽은 제갈량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수모를 받아온 사마의다. 세상에서 제갈량의 탁월함을 칭송할 때 사마의는 언제나 2류였다. 그러나 유비, 조조, 손권 모두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지만, 2류 인생 사마의의 후손이 삼국을 통일한다.

탁월함의 상징이었던 제갈량은 실패를 다룰 줄 몰랐다. 한 국가의 운명을 군기가 부러지는 사소한 징조에 걸었다. 그러나 사마의는 실패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숱한 모함과 수모, 2류 인생의 설움 그리고 죽음의 고비에서도 ?잡초처럼 일어나는 법을 알았고, 하늘마저 자신을 돕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최후의 승리는 탁월함에 있지 않았고, 인내하는 자에게 있다. 만년 2류 인생의 사마의는 수모를 견디고 모함을 이겨낸 인내의 진정한 승리자다.

무릇 천하만사가 다 본말(本末)과 주종(主從)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근본을 알아서 근본에 힘쓰면 끝도 자연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끝을 따라서 끝에만 힘쓰면 근본은 자연 매(寐)하여지고 만다. 또한 주를 알아서 주에 힘쓰면 종도 자연히 좋아질 것이나, 종을 따라 종에만 힘쓰면 주가 자연히 매하여 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에게 마음은 근본이 되고 육신은 끝이 되며, 세상에 있어서 도학(道學)은 주가 되고 과학은 종이 되는 바 이 본말과 주종을 분명히 알아야만 비로소 도를 아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능히 천하사(天下事)도 바로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큰 도에 발원(發願)한 사람은 짧은 시일에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면 안 된다. 잦은걸음으로는 먼 길을 가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으로는 큰 도를 이루기 어렵다. 저 큰 나무도 작은 싹이 썩지 않고 여러 해 큰 결과요, 불보살도 처음 발원을 퇴전(退轉)하지 않고 오래 오래 공(功)을 쌓은 결과다.

인생길에는 평탄한 길만 있지 않고 고난과 고통이 가시덤불처럼 널려 있다. 그것들에 온몸이 찢겨 상처가 생기고 피가 흐른다. 그것을 치료하는 상비약이 있다. 그것은 인내라는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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