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입으로 ‘화’ 자초한 윤상현 의원의 선택은?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사람들이 몸과 입과 마음으로 업(業)을 짓는 것을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라고 한다. 신업(身業)은 몸으로 짓는 업으로 살생(殺生)ㆍ투도(偸盜)ㆍ사음(邪淫)을, 구업(口業)은 입으로 짓는 업으로 망어(妄語)ㆍ기어(綺語)ㆍ양설(兩舌) 악구(惡口)가 이에 해당한다. 또한 의업(意業)은 마음으로 짓는 업으로 탐애(貪愛)ㆍ진애(瞋?)ㆍ치암(癡暗)을 말한다. 이를 통칭하여 10악업(十惡業)이라고 한다.
‘신구의’ 세 가지 업이 축적되어 업력(業力)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면 업의 훈습(薰習)은 거듭되어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로 만들고 만다. 심지어 사람의 얼굴, 생각마저도 그 업의 훈습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진리의 도량(道場)에 이르려면 이 세 가지 업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세 가지 업을 벗어나는 방법은 첫째 신체의 청정(身淨), 둘째 입의 청정(口淨), 셋째는 생각의 청정(意淨)이다. 이 세 가지 법을 갖추면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나는 새는 그물에 걸리기 쉽고 가벼이 날뛰는 짐승은 화살을 맞을 위험이 크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설산에서 6년 동안 앉아 움직이지 않으셨고, 달마는 소림굴에서 9년 동안을 묵언으로 침묵하셨다.
그런데 현 정권에서 제일 잘 나가는 국회의원 중 한명인 윤상현 의원의 ‘전화 막말 파문’이 정치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살생부 파문과 당내경선, 사전여론조사 유출 파문으로 심각한 공천 갈등을 겪고 있는 새누리당에서 당 대표에게 욕설과 함께 공천에서 배제시켜야 한다는 녹취록이 공개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구업의 산물이다.
허목(許穆, 1595~1682)의 <기언>(記言)의 ‘기언서’(記言序)에 ‘금인(金人)의 명(銘)’이라는 말이 나온다. “물이 깊으면 소리가 없다./ 경계하라!/ 많은 말을 하지 말고/ 많은 일을 벌이지 말라/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고/ 일이 많으면 해가 많아진다.”(戒之哉! 毋多言, 毋多事. 多言多敗, 多事多害)
이 글에 나오는 ‘금인의 명’의 금인(金人)은 주(周)나라의 시조 후직(后稷)의 사당 오른쪽 계단에 있던 쇠로 만든 사람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주나라의 태묘(太廟)에 가서 이 금인을 보았는데, 입은 세 겹으로 봉해져 있었고, 그 등에 “옛날에 말을 삼가던 사람이다. 경계할지어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입은 뭐가 문제인가? 화의 문이 되는 것이다. 힘을 믿고 날뛰는 자 제명에 못 죽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 반드시 적수(敵手)를 만나게 된다.…경계해야 할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미 대륙에 부는 태풍도 저 아마존의 작은 나비의 날개 짓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온 나라를 막말 파동으로 몰아넣은 폭풍도 작은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술이 취해 큰소리로 떠들면 위엄도 없고, 존경도 받지 못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채 충동적으로 튀어나온 말은 소음이나 한풀이에 불과하다.
속이 빈 깡통일수록 말이 많고 요란하다. 지혜가 적을수록, 수행이 부족할수록, 말이 많고 큰 목소리를 낸다. 어리석고 생각이 짧을수록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지 못한다. 이것이 구업을 저지르는 모습이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말에는 무게가 없다. 말에 무게가 없으면 메아리가 없다. 시끄럽기만 할 뿐, 감동도 감응도 없다. 생각이 깊고 인품이 중후한 사람은 말하기 전 생각을 많이 한다. 생각이 깊으면 저절로 말수가 줄어든다. 때문에 말에 무게가 있고 위엄과 진실이 엿보인다.
설득이나 위로도 큰 목소리로 하는 게 아니다. 작은 소리로 진심을 담은 올바른 말을 하고 정당한 방법을 제시해야 설득이나 위로도 통한다. 입을 무겁게 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말을 쏟아내면 실수가 많고, 설화(舌禍)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소리가 크고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사람이다.
성현들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경계했다. 부처님께서는 “눈, 귀, 코, 입을 단정히 해 몸과 마음을 항상 바르게 지키라”(端耳目耳鼻口 身意常守正)고 하셨다. 불교에서는 구업(口業)의 죄가 엄중하다. 예수님께서도 “말이 많으면 죄도 많다”고 하셨다.
깨달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항상 몸과 말과 생각 이 세 가지를 깨끗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몸을 깨끗이 하려면 생명 있는 것을 죽이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며, 간음하면 안 된다. 둘째, 말을 깨끗이 하려면 거짓말하지 말고, 아첨하는 말을 하지 말며, 이간질하지 말고, 나쁜 욕을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생각을 깨끗이 하려면 모든 탐욕과 분노와 그릇된 판단을 하지 않으면 된다.
인간의 몸을 받고 사는 우리는 그것이 선업이든 악업이든 항상 업을 짓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 세 가지 업이 쌓여 어떤 에너지를 축적한 업력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 그런데 업력이 선업보다 악업의 에너지가 더 강렬한 자는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로 만들게 되고, 자기 얼굴, 생각, 행동, 목소리까지 변하게 만든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는 말이 있다. 송나라 태종이 이방에게 칙명을 내려 편찬된 <태평총류>에 나오는 구절이다. 작은 일은 큰 일의 시작이 되고, 큰 산도 작은 함몰로 기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