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설 막강한 논리는?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카페’의 강동민(언우) 민족문화역사연구소 이사장이 재작년 열반에 들었다. 강 이사장이 민족문화역사연구소를 세우고 오랜 세월 우리 고대사를 연구하여 우리민족의 근원인 대동이(大東夷)의 위대함을 널리 알려주었다.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대동이(大東夷)에 대해 알아보자.
그리하려면 먼저 ‘이(夷)’에 대하여 바르게 알아야 한다. 흔히 우리민족을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부른다. ‘夷’를 ‘오랑캐 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됐다. 지나(중국)족들이 그렇게 만든 것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일부 학자들이 이(夷)를 (大+弓)으로 보고 ‘큰 활을 잘 쏘는 민족’으로 말하는데 이도 잘못된 말이다. 夷는 (弓+大)이며, 夷는 (弓+ 一+人>을 뜻한다. 궁(弓)은 예언서에 나오는 궁궁을을(弓弓乙乙)의 弓(궁)이다. 즉 활을 두 개 합하면 ‘일원상’(一圓相)이 되며 또는 우주의 진리, 하늘을 뜻한다.
大는 (一+人)으로 하나(一, 하늘)의 사람이란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하늘(하나, 一)을 섬기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夷’는 하늘 사람 천자(天子)를 뜻한다. 즉 이족(夷族)은 ‘천손족(天孫族)’이라는 말이다. 지금의 중국 중심부, 이 지역 역사를 논할 때, 그 중심에 있으면서 동아시아를 지배한 어질고, 예절바르고, 창의력이 넘치고 또 평화를 사랑하는 ‘동이족’을 빼놓을 수가 없다고 한다.
해동성인(海東聖人)으로 추앙받는 공자(孔子)도 동이족이요, 주역과 역법(曆法)을 창안했다는 희화자(羲和子)는 물론, 농사법과 의학을 발전시켰다는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도 동이족이라고 한다. 그리고 동양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최고의 성군(聖君)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도 동이족이요, 최초로 철갑(鐵甲)에 구리투구로 무장하여 박치기 전법으로 유명한 치우(蚩尤) 천황도 동이족이다.
또한 갑골문자, 상형문자, 표의문자, 한문자(漢文字)를 만든 것도 동이족이요, 절개로 유명한 백이(伯夷)와 숙제(叔弟)도 동이족이라고 한다. 또 현재 남아 있는 고대지도는 우리 조상인 동이의 나라인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부여가 아시아의 동방 전체를 지배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자료다.
이에 놀란 중국 당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동이족이 한(韓) 민족의 조상이 아니라 자기네 조상이라고, 역사왜곡을 진행중이다. 그러나 아무리 손바닥으로 해를 가린다 해도 동북공정이라는 치졸한 방식으로는 자기들의 추악한 욕심만 드러낼 뿐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그럼 이 천손족인 동이족을 외국 학자들은 어떻게 보아왔을까?
첫째, 대만의 서량지(徐亮之) 교수다. “한(韓)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으로 한문자를 창제한 민족입니다.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로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학자적 양심과 중국인으로서 사죄합니다.”
서량지 교수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 1943년 10월 초판에서 이렇게 썼다. “4천여 년 전 한족(漢族)이 중국 땅에 들어오기 전에,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묘족(苗族=東夷)이 점령하여 경영하고 있었다. 한족이 중국에 들어온 뒤에 점점 서로 더불어 접촉하였다.”
“중국의 책력법(冊曆法 ? 달력)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이다. 그의 혈통은 은(殷)나라, 상(商)나라의 동이족(東夷族) 조상이다.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실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둘째, 장개석(蔣介石) 총통의 말이다. 중국 총통 장개석(1887~1995)은 이시영 상해 임시정부 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내 고향이 옛날 백제(대륙백제) 땅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의 선조는 대륙의 주인이었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소? 그러니 나라를 빼앗겼지.”
셋째, 임어당(林語堂)이다. 중국의 석학이요 저명한 문학평론가인 임어당(1895~1976)을 만난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1902~1999) 박사가 여담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나라는 한글전용에 문제가 많다.” 그러자 임어당이 놀라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자는 당신네들 동이족 조상이 만든 문자를 우리가 빌려 쓰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습니까?” 무안을 당한 안호상 박사는 이후 평생을 민족사관에 매진하여 역사를 다시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넷째, 왕동령(王棟齡)의 얘기다. 중국 역사학자인 왕동령(王棟齡)은 <중국사>에서 이렇게 썼다. “한족(漢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에 현재의 호북(湖北), 호남(湖南), 강서(江西) 등 지방은 본래 묘족(苗族=東夷)의 영속지였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이(九夷)인데 임금은 치우(蚩尤)였다.” 묘족(苗族)은 오늘날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 호북, 호남성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 소수민족이며, 위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도 고대에는 동이족의 한 지류였음을 알 수 있다. 구려(句麗)는 구려(九黎), 구이(九夷)를 말하는 것으로, 이 구이의 군주가 치우(蚩尤)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동이족의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이제 그 자부심만으로는 안 된다.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우리 그 대동이의 위대한 역사를 이 시대에 재현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