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현 막말사태’를 보며 항우와 유방을 떠올리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일렁이는 거친 풍랑을 두려워 할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여당은 파벌싸움에 급기야 당대표를 향해 막말을 퍼붓고, 야당은 분열의 소용돌이에 빠져 서로 삿대질이다. 참으로 백성을 우습게 보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사태를 보고 있는 국민들의 가슴 속엔 거친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국민 마음은 수면 아래 흐르는 물살처럼 움직이다가도 이따금 성난 풍랑으로 일렁이곤 한다. 그러나 이 이치를 모르는 정치권은 백성을 우습게 보고 스스로 오만해지고 있다. 국가의 권력은 거대한 물결 위에 뜬 큰 배와 같다. 많은 국민을 태울 수도 있지만 그만큼 더 큰 위험을 안고 있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권력을 잡은 배의 사공들은 더욱 정신을 차려서 키를 잡고 노를 저어야 한다. 잠시도 방만해서는 안 된다. 권근(權近, 1352~1409)의 <양촌집>(陽村集)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주옹(舟翁)에게 물었다.
“그대는 배에서 사는데, 고기를 잡는다고 하자니 낚시가 없고, 장사를 한다고 하자니 재물이 없고, 나루의 관리(官吏) 노릇을 한다고 하자니 강물 가운데만 떠 있고 물가로 오가지 않습니다. 깊고 깊은 물 위에 일엽편주를 띄우고서 가없이 드넓은 만경창파를 건너갈 제 세찬 광풍이 불고 거친 파도가 일어나 돛대가 기울고 노가 부러지면, 정신은 두려워 달아나고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을 터이니, 위험을 무릅쓴 몹시 무모한 짓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도리어 이를 좋아하여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아주 떠나 돌아오지 않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주옹이 말한다. “아아! 그대는 왜 생각하지 못합니까? 사람의 마음은 잡으면 있고, 놓으면 없어져 변화무쌍합니다. 그래서 평탄한 땅을 밟을 때는 편안하여 방자해지고, 위험한 곳에 있을 때는 떨면서 두려워합니다. 떨면서 두려워하면 조심하여 튼튼히 지킬 수 있고, 편안하여 방자하면 반드시 방탕하여 위망(危亡)해 지게 마련이니, 나는 차라리 위험한 곳에 있으면서 항상 조심할지언정, 편안한 곳에 살면서 스스로 방종해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내 배는 고정되지 않은 채 물 위를 떠다니니 한쪽으로 편중되면 반드시 배가 기울어집니다. 따라서 좌로도 우로도 쏠리지 않으며, 어느 쪽이 무겁지도 않고 어느 쪽이 가볍지도 않은 상태에서 내가 그 중심을 잡고 평형(平衡)을 지켜야만 내 배를 기울어지지 않고 평온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풍랑이 일어나도, 홀로 평안한 내 마음을 어찌 흔들어 어지럽힐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요, 인심은 하나의 거대한 바람인데, 미미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일신이 그 속에서 가물가물 흘러가는 것이 마치 작은 일엽편주가 드넓은 물결 위에 떠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배에서 산 뒤로부터 세상 사람을 보면 그저 편안한 것을 믿고 환란을 생각하지 않으며, 욕심을 맘껏 부리고 종말을 걱정하지 않다가 서로 풍랑 속에 빠지고 마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어이하여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나를 위태하다 합니까.”
말을 마친 주옹은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아득히 펼쳐진 강과 바다, 그 물 위에 빈 배를 띄우노라. 밝은 달빛을 싣고 나 홀로 가노니, 한가로이 노닐며 평생을 마치리라” 하고는 그 사람과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떠났다.
이 글은 초(楚)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 양촌 권근이 어부사를 인용한 것이다. 주옹(舟翁)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늘 배 위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는 풍랑이 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배 위에 살지언정 사람들이 모여 사는 뭍에는 오르지 않는다.
그 까닭을 주옹은 “편안해 보이는 세상에선 방종하기 쉬워 더 위험하고, 물 위에서는 조심하여 더 안전하다” 또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요, 인심은 하나의 거대한 바람인데, 미미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일신이 그 속에서 가물가물 흘러가는 것이 마치 작은 일엽편주가 드넓은 물결 위에 떠다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순자(荀子, BC 298?~BC 238?)도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조선의 숙종은 14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이 물과 배의 관계를 ‘주수도’(舟水圖)란 그림으로 그리게 하여 자신의 경계로 삼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물이요 권력은 물 위에 뜬 배’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물결로 쉬지 않고 움직인다. 잔잔한 물결은 세상을 맑히고 생명을 살리지만 사나운 물결은 세상을 뒤엎고 생명을 해칠 수 있다. 걸핏하면 세상을 아수라의 싸움판으로 몰아가는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지역과 남북의 갈등은 한국이라는 큰 배를 기울게 하고 뒤엎을 수도 있는 거친 풍랑이요 무거운 짐일 것이다.
중국 진(秦)나라의 폭정에 항거하기 위해 최초로 민중봉기를 일으킨 사람은 부역자였던 ‘진승과 오광’이었다. 이들은 가혹한 세정과 노역에 불만을 품은 농민들을 선동해 농기구를 버리고 대신 창과 칼을 앞세워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요동치는 세파의 한 가운데서 진나라와의 싸움을 통해 최후 승리를 거둔 이는 유방(劉邦)이다. 그는 진나라 수도 함양을 점령했을 때 궁궐의 진귀한 보화와 재물에 손대지 않고 봉인을 한 후 철수했다. 또 그동안 진나라의 가혹하고 번잡한 법을 모두 폐기하고 ‘약법삼장’(約法三章)이라는 단 세 가지 법률만 공포해 백성들의 민심을 얻었다.
그런데 뒤이어 함양에 도착한 항우는 진나라 왕을 처형한 후 궁궐의 모든 보물을 약탈하고 아방궁에 불을 질렀다. 결국 항우는 역사 밖으로 사라져야 했고, 백성의 민심을 얻은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이뤘다. 민심을 얻어야 만사형통이 된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은 초심을 잃고 민심 위에 군림하며 너무 제멋대로다. 왜 그들은 일렁이는 거친 풍랑의 무서움을 모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