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신격호 회장의 두 아들과 ‘TV동화 행복한 세상’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옛날에는 자식을 많이 낳았다. 나도 6남매의 맏이다. 어렵게 자라 이미 고등학교 시절에 어머니를 도와 쌀장사를 시작했고, 어린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며 공부를 시켜 다 출가를 시켰다.

그렇게 자란 형제들이 이제는 다 일가를 이루고 잘 살아가는 것을 보면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를 헛되게 받들지 않은 것 같아 일말의 자긍심도 느낀다. 그러나 딱 하나 바로 밑의 여동생을 오래전 암으로 여읜 것이 여한으로 남는다.

그렇게 자란 형제들이 어찌 나만의 일이겠는가? 최근 형제들의 재산싸움 하는 것을 보면 가히 점입가경이다. 재벌가 형제들의 경영권 다툼을 보면 한심한 지경이다.

그들은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 수 있다는 극단적인 행태까지 드러낸다. 그동안 우리나라 10대그룹 중 삼성, 현대, 한진, 두산 등이 재산 상속을 두고 비정한 형제간 소송전과 싸움을 일으켰고, 10위권 밖에서도 금호, 태광 등도 재산싸움에 합류했다.

작년에는 연 매출 83조원을 올리는 재계 5위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터졌다. 창업자 신격호 회장이 며칠 전 무장해제 되었다고 한다. 형제간의 재산싸움은 개인이나 재벌기업이나 마찬가지다.

재작년이던가??의정부에서 30대 남성이 재산분배 문제로 가족과 다투다가 아버지 집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형과 어린 조카 3명이 숨지고 어머니와 형수가 중화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돈을 놓고 벌이는 형제간의 소송 전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그들이 피를 나눈 한 아버지 어머니의 자식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돈을 놓고서는 가족도 형제애도 안중에 없는 것 같다. 피도 눈물도 없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개인이나 재벌기업을 막론하고 만연되어 있는 재산다툼은 가족(가정)의 중요성이 점차 해체되어 가는 비극적 현상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돈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우리 어렸을 때의 형제애를 보여주는 ‘TV 동화 행복한 세상’이 가슴을 적셔 옮겨본다.

수업이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곧 비가 쏟아졌습니다. 저는 학교 문 앞에 서서 쏟아지는 빗줄기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학교까지 마중을 나오셨겠지만, 1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한꺼번에 부모님을 여읜 후, 제게 우산을 가져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쏟아지는 비처럼 제 마음에 슬픔이 밀려오려던 찰나, 친구가 다가와 우산을 내밀었습니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까지 사이좋게 우산을 쓰고 함께 걸어갔습니다. “고마워, 잘 가!” 친구 덕에 버스를 탈 때까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집 앞 정류장이 다가올수록 내린 뒤가 걱정이었다. 집으로 재빨리 뛰어가자고 마음먹고 버스에서 내리려던 순간,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남동생이었다.

수업이 일찍 끝난 동생은 비를 흠뻑 맞고 돌아와선 우산을 들고 저를 마중 나온 것이다. 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집으로 향하던 우리는 개울 앞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비 때문에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있었다. 교복을 입은 데다 하나뿐인 신발이 마음에 걸려 개울 앞에 얼어붙은 나에게 동생은 대뜸 등을 내밀었다.

“자 누나, 업혀!” “뭐? 네가 나를?” “누나 신발 젖으면 안 되잖아 내가 누나 정도는 업는다 뭐.” 너무나 의젓하게 고집을 부리는 통에 동생의 등에 업히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저보다 덩치가 큰 누나를 업고 가며, 가끔 멈칫하고 서선 웃음 한 번 지어 보이고, 또 가다 웃어 보이며, 그렇게 개울을 건넜습니다.

미안하면서도 동생이 어느새 다 자란 것 같아 든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피곤했던지 그날 밤 동생은 일찌감치 잠이 들었습니다. 이불은 다 차버리고 양말도 벗지 못한 채 곯아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아휴, 얘가 얼마나 피곤했으면… 그렇게 힘자랑하더니만…” 양말을 벗겨 주려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 버렸습니다.

터지고 찢어지고 피멍까지 맺힌 상처투성이 발, 그러고 보니 오늘 동생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습니다. 개울을 건너다 멈칫 서서 웃어 보였던 건, 애써 아픔을 감추려는 몸짓이었던 것입니다. 제 발에 피멍 맺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누나 신발 걱정을 해 준 동생. 저는 잠든 동생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며, 엄마의 마지막 당부가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네 동생은 네가 보살펴 줘야 된다.”

동생에게 아내가 생기고, 제게 남편이 생겼을 때, 자형이 생기고, 올케가 생겼을 때, 그 자리에 언제나 함께 일 것 같은 가족은 또 다른 가족을 찾아 떠납니다. 물론 각자의 가족이 생겨도 서로를 향한 마음이야 변함없으리라 다짐해보지만, 살다 보면 그게 맘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형제간에 서로 온전히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 다시 만들래야 만들 수 없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형제자매다. 그러면 이렇게 형제간에 우애를 이어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형제의 도’를 실행하는 것이다.

형제는 한 기운을 받아 태어나서, 한 기운으로 자라난 천륜(天倫)이다. 그래서 형은 아우와 우애하고 아우가 형을 공경(恭敬)함은 천륜의 자연스런 차서(次序)다. 따라서 형제는 좋은 일에 같이 기뻐하고, 나쁜 일에는 함께 걱정할지언정 부당하게 이해를 다투거나 공명(功名)을 시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형은 형의 도리만 다하고 아우의 공경을 계교(計較)하지 말며, 아우는 아우의 도리만 다하고 형의 우애를 계교하지 않는다. 그러면 반드시 천륜의 정의(情意)를 길이 지키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형제의 도’를 다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우들의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를 잊지 않고 지금까지 실행해 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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