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향노루의 비극’과 ‘왕가네식구’ 주제가 ‘사랑 찾아 인생을 찾아’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사람들이 저마다 오색무지개를 잡으려는지 정신없이 달려간다. 그런데 그 무지개를 잡았다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재작년이던가 <KBS> 드라마 ‘왕가네식구’ 주제가 ‘사랑 찾아 인생을 찾아’를 듣다가 그 가사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 가사의 일부를 들어본다.
“사랑 찾아 인생을 찾아/ 하루 종일 숨이 차게 뛰어다닌다. 서울 하늘 하늘 아래서/ 내 꿈도 가까이 온다/ 인생을 하하 사랑도 있고 우정도 있고/ 하늘 아래 살고 있고/ 저마다 다른 인생 속에/ 또 하루를 바쁘게 산다/ 우리 인생 살다보면/ 힘든 날도 수없이 찾아오지만 /사랑하나 그 사랑하나 찾으려고 몸부림치네.”
사향(麝香)노루라는 동물이 있다. 홀로 살고 겁이 많으며, 시베리아에서 히말라야 산맥에 이르는 산악지대에 산다. 큰 귀에 꼬리는 아주 짧고 뿔은 없으며, 사슴과(科) 동물들과는 달리 담낭이 없다. 모피가 회갈색이고, 털이 길고 거칠며 어깨 높이가 50~60㎝이고, 엉덩이 쪽이 어깨 쪽보다 약간 높다. 수컷은 뒷 어금니가 길어 코끼리 이빨처럼 아래로 뻗어 나왔고, 배 쪽에 사향을 생산·저장하는 사향주머니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216호로 지정(1968년)되어 있는 한국산 사향노루는 한반도의 경우 목포에서 백두산에 이르는 지역에서 소수가 포획되기도 했으나 격감하여 현재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어느 숲속에서 살던 사향노루가 코끝에 와 닿는 은은한 향기를 맡았다.
“이 은은한 향기의 정체는 뭘까? 어디서 누구에게서 시작된 향기인지 꼭 찾고 말거야.” 그러던 어느 날, 사향노루는 마침내 그 향기를 찾아 길을 나섰다. 험준한 산 고개를 넘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사향노루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온 곳을 다 헤매도 그 향기의 정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여전히 코끝을 맴도는 향기를 느낀다. 어쩌면 저 아스라한 절벽 아래서 향기가 피어나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향노루는 그 길로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험한 절벽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쪽 발을 헛딛는 바람에 그만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사향노루는 다시는 일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사향노루가 쓰러져 누운 그 자리엔 오래도록 은은한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죽는 순간까지 향기의 정체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몰랐던 사향노루! 이렇게 슬프고도 안타까운 사연은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도 나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더 먼 곳, 더 새로운 곳 또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만 행복과 사랑,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우리의 모습 아닌지?
끝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비명횡사한 사향노루의 비극을 거듭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무리 애 써도 우리 모두는 차츰차츰 늙어간다. 더군다나 나이 들어서도 치열하게 무지개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지만 측은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인생 후반기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구제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인생의 목표를 성공이나 돈이 아닌 나 자신의 행복 그 자체로 과감하고 확고하게 바꿔야 한다. 두 번째로 나 자신을 위한 나 자신의 목표가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를 좀 더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주변과 세상을 원망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과연 무엇을 했는지 나 자신을 구체적으로 점검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살아간다”는 말은 “곧 죽어간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인생은 그리 긴 것이 아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때론 헤매고 때론 멈출 수도 있다. 그렇다고 사향노루처럼 그 사향이 내 몸에 있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헤맬 수는 없다.
우리가 무얼 찾아 헤맨다는 것은 원하는 것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남을 원망을 하게 된다.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려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멈춰야 한다. 사향은 내 몸 안에 있다. 그런데 무얼 찾아 이 험한 세상을 헤맨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멈춰서 무얼 할까? 도(道)를 찾아야 한다. 도는 자연의 섭리요 이치요 변하지 않는 진리다. 도의 자리는 절대의 자리요, 귀일(歸一)의 자리며, 무형의 자리다. 도는 관찰(觀察)의 대상이 아니다. 도는 통찰(洞察)의 대상이다.
도를 찾으면 거기에 성공이 있고 무지개가 있으며 인생의 사향이 있다. 무릇, 도라고 함은 쉽게 말하면 길을 이름이다. 길이라 함은 무엇이든지 떳떳이 행함을 이름이다. 하늘이 행하는 것을 천도(天道)라 하고, 땅이 행하는 것을 지도(地道), 사람이 행하는 것을 인도(人道)라 한다.
인도 가운데에도 또한 육신이 행하는 길과 정신이 행하는 길 두 가지가 있다. 이렇게 이 도의 이치가 근본은 비록 하나이나 그 조목은 심히 많아서 가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러므로 어느 곳 어느 길을 막론하고 오직 이 당연한 길을 아는 사람이 도를 아는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도는 곧 우리의 본래 성품인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도’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도’다. 이는 만법을 통하여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여기에 근본해 있으므로 이 도를 아는 사람이 가장 큰 도를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불생불멸의 도와 인과응보의 도가 바로 인생의 사향이다. 이 도를 깨치면 더 이상 우리네 인생이 사향노루의 비극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