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넘어 웰다잉 시대···’셀프 장례계획서’를 생각해본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셀프가 대세인 시대다. 셀프 PR, 프 결혼, 셀프 출판 심지어 셀프 공천 등등 온통 셀프 천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셀프는 죽은 뒤에 장례를 자식들에게 맡기지 않고 본인이 직접 결정하는 ‘셀프장례’일 것이다.

셀프장례는 일본에서 먼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어느덧 우리나라에서도 노인들이 상조회사에 문의하여 가족 몰래 혼자 ‘장례계획서’를 작성한다는 것이다. 고령화시대 속에 ‘셀프장례’라는 고독한 풍경은 마지막 길을 더 외롭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 서글프면서도 공감이 가는 일이기도 하다.

실제로 어느 노인은 상조회사에 혼자 가서 ‘장례계획서’를 작성하고서 가족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렸다. 그러자 평소 검소하게 사셨던 아버지를 가족들도 이해하고 기꺼이 동의해 주었다고 한다. 그 분이 돌아가시자 자식들은 상조회사에 찾아가 장례계획서 대로 빈소(殯所)도 없이 이틀 만에 화장 후 간소하게 장례를 마쳤다.

왜 이렇게까지 노인들이 셀프장례를 고집하는 것일까? 그들은 한결같이 고비용 장례문화에 대한 반감작용으로 자식들에게 부담 주기 싫어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길 원하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가족 간의 유대가 약해져 독거노인이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독사(孤獨死)에 대한 두려움이 셀프장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든 요인인 셈이다. 요즘은 본인들만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셀프장례를 적극 지원한다고 한다. 그러기에 셀프장례는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광주광역시의 어느 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3년 전부터 먼저 독거노인 중 희망자에게 ‘장례계획서’와 거의 흡사한 ‘장수노트’를 작성하게 하고 있다. 그 안에는 죽으면 꼭 초대하고 싶은 사람과 장례 방식 그리고 수의와 영정을 보관해 놓는 위치 등을 적는다.

놀라운 일은 처음 80명으로 시작했는데 벌써 800명으로 늘어난 것은 연고 없는 독거노인은 무료로 장례까지 해주는 특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노인들에게 남겨진 일은 죽는 일밖에 없기에 장례 프로그램에 참여해 좀더 구체적으로 마지막 길을 스스로 준비하고픈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당장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 같지만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만약 부부 중 누가 먼저 죽으면 남은 한 쪽이 장례를 다 주관해줘도 된다. 그러나 혼자 남으면 자식이 해줘야 하는데 요즘 자식들이 남은 부모 노후와 장례를 책임져 준다는 보장이 없다. 자식만 바라보다가 잘못된 경우에 자식을 패륜아로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차라리 죽기 전 의식이 있을 때 깨끗하게 본인이 장례계획서를 만들어 놓으면 누가 먼저 가든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기에 자식들 신경쓰지 않게 하면서도 본인 장례에 대한 두려움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죽은 후,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 준비로 노후 계획안에 분명하게 죽을 때의 계획이 나와 있어야만 맘 놓고 죽을 수 있다.

인생은 움켜잡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데 묘수(妙手)가 있다. 돌아서면 쌓이는 물건들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벌어놓은 재산 베풀어야만 우리가 온 곳으로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다.

욕심(慾心)과 착심(着心)이 많을수록 그 영식(靈識) 높이 솟지 못하고 악도에 떨어지기 십상이다. 마치 탁(濁)하고 무거운 것은 아래로 가라않는 것과 같고, 맑고 가벼운 것은 높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시간과 공간들은 다 죽음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진실로 깨달아야만 남은 생이 행복해 질 수 있다. 웰빙을 지나 웰다잉을 말한 지 벌써 오래 되었다. 웰빙은 단순히 좋은 환경 속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 일에 초점을 맞췄으나 웰다잉은 잘 죽기 위한 준비다. 열심히 수행정진(修行精進)하고 적공(積功) 또 적공을 하는 게 지름길이다. 그러면 몸은 조금 부대껴도 마음과 영혼은 수행을 통해 완전한 해탈과 천도를 받을 수 있어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된다.

내 모든 인생의 과정은 죽음이라는 녀석과 처음이요 마지막 대면할 때, 두렵지 않게 맞이하기 위해 한 평생 죽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셀프장례는 단순히 죽은 뒤에 시신을 처리하는 일이 아니다. 죽음이 찾아와도 혼자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미리 계획을 세워서 죽는 그날까지 계속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 진정한 셀프장례다.

범상한 사람들은 이생에서 사는 것만 큰일로 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죽는 일이 더 크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태어나서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잘 태어나서 잘 사는 사람이라야 잘 죽을 수 있다. 그래서 생(生)은 사(死)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이라고 했다.

셀프장례계획서를 작성해두자. 그리고 죽어서 남의 손에 천도를 받을 것이 아니라 아예 살아 생전에 자신의 천도를 마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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