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70대 노부부의 ‘사전연명거부 의료의향서’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사람이 한 평생 살면서 무슨 일이 가장 큰일일까? 그것은 아마 살고 죽는 일이 제일 큰일일 것이다. 오죽하면 생사대사(生死大事)라 했을까? 그런데 문제는 죽을 때 어떻게 죽느냐 이다.
필자는 오랜 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좌탈입망(座脫立亡)의 경지는 못 가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며 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사전연명거부 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용하는 일산병원에 신청을 했다.
그런데 금방 될 줄 알았는데, 이미 사람들이 몰려 겨우 8월에야 차례를 얻었다. ‘사전연명거부의료의향서’란 생명 연장을 위한 특정치료방법 여부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서면으로 미리 밝힌 공적 문서를 말한다.
의학치료에 관한 의사 결정 능력이 있을 때, 자신의 연명 치료에 대한 의향을 미리 남겨, 죽음을 앞두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게 하려는 취지에서 2016년 2월 3일 공포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약칭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해 법제화 됐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1월 7일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서 의향서를 작성할 때 등록증 발급도 함께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착용, 혈액투석 및 항암제 투여는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가 없다. 따라서 임종 과정만을 연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의중이다.
생사가 대사라는데 나는 죽음에 임박해 몸에 파이프 꽂고 버티고 싶진 않다. 5월말 현재 ‘연명의향서’ 작성자가 22만명을 넘어섰다.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연명의향서는 자신이 연명 의료를 받을 경우를 대비해 의식이 있을 때 미리 작성해두는 것이다. 임종에 임박하면 자식들도 경황이 없어 병원에 실려 갔을 때는 이미 늦다.
장수국가 일본은 ‘웰빙’ 보다는 ‘웰다잉’의 나라가 되어 죽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시내 곳곳에 ‘웰다잉 다방’이 있고, 사찰은 이미 무병장수를 비는 사찰보다는 ‘9988234’를 축원하는 ‘핀코르’ 사찰이 유행이다.
<서경>(書經) ‘홍범편’(洪範篇)에는 오복(五福)의 하나로 아름다운 죽음, 즉 ‘고종명’(考終命)을 오복의 완성판으로 언급한다. 고종명은 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말한다. 평소 죽음에 대한 연마 없이 고종명을 바랄 수 없다. 생사연마의 일환으로 미리미리 ‘사전연명거부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