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합법화①] ‘웰다잉법’ 보건복지위 통과, 품격 있는 ‘죽음의 길’ 열리다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현대인은 이 세상에서 ‘잘사는 것(Well-being)’과 ‘잘 죽는 것(Well-dying)’을 희망한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삶의 질만 추구했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지에 대한 준비가 소홀했다. 최근에는 ‘삶의 질’만큼이나 ‘죽음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웰다잉(존엄한 죽음)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불필요한 치료로 고통 받지 않고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줄기차게 제기됐다.
존엄사(尊嚴死) 관련 법률이 화두가 된 것은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당시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던 58세 남성환자를 부인의 요구로 퇴원시킨 사건이며, 환자가 사망하자 환자의 형제들이 의료진과 아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까지 가는 법적 공방 끝에 2004년 아내에게는 살인죄, 의사에게는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는 상태인 환자의 퇴원을 허용했기에 살인방조죄(殺人幇助罪)가 확정됐다.
2008년에는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채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모 할머니의 가족들이 김 할머니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시키기 위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대법원은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존엄사를 인정한 판정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단 허용기준으로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했을 것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사전 의료지시가 있을 것 △사전 의사가 없을 경우 환자의 평소 가치관, 신념 등에 비춰 추정할 것 △사망단계 진입여부는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판단할 것 등을 제시했다.
이에 2010년 종교ㆍ의료ㆍ법조계의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해 연명의료 중단 제도화를 논의하였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2012년에는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정부에 연명의료 중단 제도화 입법을 권고했으며, 2013년 7월에는 연명의료 결정 대상 환자, 연명의료의 범위, 환자의 의사 확인 방법 등 환자들이 연명의료에 대하여 올바르게 결정할 수 있도록 특별법 형태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드디어 지난 12월 9일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웰다잉법(法)’이라 불리는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했다.
연명(延命) 치료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으로 임종기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 법은 회생(回生) 가능성이 없을 경우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 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게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연명의료를 중단하더라도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및 물, 산소 공급은 지속하도록 했다.
완화의학(Palliative Medicine)이란 삶이 제한된 질환을 가진 환자에게 삶의 질을 최대한 높이는 데 목적을 두고 연구하며 치료하는 의학의 한 전문 분야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완화의료(Palliative Care)는 통증과 다른 문제들, 육체적, 정신적이고 영적인 문제를 조기에 분별하고 적절한 평가와 치료를 통하여 고통을 경감하고 방지함으로써,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에 관계된 문제와 마주친 환자와 가족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접근이다”라고 정의하였다.
호스피스ㆍ완화의료(Hospice and Palliative Care)에서 제공하는 주요 돌봄은 다음과 같다. △통증 및 신체적 돌봄(통증, 호흡곤란, 구토, 복수, 부종, 불면 등 고통스러운 신체 증상을 조절한다) △심리적 돌봄(환자와 가족의 불안, 우울, 슬픔 등의 심리적 고통을 완화시킨다) △사회적 돌봄(경제적, 사회적인 어려움을 파악하여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하여 지원한다) △영적 돌봄(삶의 의미,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에 의한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임종 돌봄(임종 시기의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완화시키고 가족이 임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지한다) △사별가족 돌봄(사별 후 가족이 겪을 수 있는 불안, 우울 등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등이다.
이 법률안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권고안을 바탕으로 만든 제정안으로 그동안 입법 공청회를 통해 의료계, 법조계, 종교계, 환자단체, 정부 관련부처 등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차례 논의하며 조정된 법안이다. 특히 인간의 생명존중을 내세워 존엄사를 반대하는 일부 종교계의 입장도 다소 선회한 것으로 알려져 사회적 합의 속에서 법안이 제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