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욕망’ 절제하게 만든 ‘계영배’와 임상옥

계영배 단면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젊어서 한 때 주색잡기에 빠져 산 적이 있다. 명동 딸라 골목, 충무로 아지트에 악동들이 모여 밤이면 밤마다 술과 노름으로 밤을 지새웠다. 결국 하는 일 다 망치고 초라한 젊음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불연(佛緣)이 있어 일원대도(一圓大道)를 만나 그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억제 하고서야 행복에 겨워 마음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에 가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지나친 탐욕(貪慾)은 만병의 원인이 되며 건강한 자신을 폐인으로 만들 수 있다. 현대의학이 발달해 얼굴을 몇 번씩 성형수술로 뜯어고치다 심한 부작용으로 얼굴이 괴물처럼 변해 후회하며 평생을 살아간다면 ‘과욕은 조금 부족함만 못하다’는 교훈일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는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판을 치고, 살인이 난무하며,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이 난무한다. 세상이 이렇게 병들고 나니 인간이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계영배(戒盈杯)라는 것이 있다.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는 술잔’이라는 뜻이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술이 일정 이상 차오르면, 술이 모두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이 잔에는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지나침을 경계하는 선조들의 교훈이 담겨 있다.

조선조의 도공(陶工) 우명옥은 강원도 홍천사람으로 1771년 정조 5년에 태어났으며, 본명은 ‘우삼돌’이다. 단순하게 질그릇만을 구워 팔던 삼돌은 도자기로 유명한 분원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마침내 그는 큰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 궁중에 그릇을 만들어 진상하던 경기도 광주분원으로 들어가서 조선 땅 최고 명인이던 ‘지외장’의 제자가 되었다.

젊은 20대 초반의 청년 우삼돌은 주야로 스승의 지도 아래 피땀 어린 노력 끝에 그의 도예기술은 뛰어난 경지에 도달하였다. 그는 스승의 수준을 넘어 순백색을 띠는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냈고 궁중에 진상되었다. 그가 만든 백자 반상기를 만져보던 순조 임금도 탄복하며 상금을 하사하고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스승은 기쁨을 감추지 못해 촌스러운 삼돌이라는 이름 대신 ‘명옥’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우명옥은 뛰어난 도공으로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고, 명문세가들은 그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 큰 자랑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돈도 엄청나게 벌었다. 그러자 그의 가슴 속에는 교만함과 부도덕함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의 뛰어난 재능과 스승의 지나친 편애, 그리고 드물게도 도공으로 소문난 유명세는 주변에 시기와 질투를 낳았다. 동료들의 꼬드김으로 기생집을 드나들기 시작했으며 어느 날, 동료들은 뱃놀이를 하자고 유혹했다. 그들은 아름다운 기녀 한 명에게 명옥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단단히 부탁하였다.

우명옥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어여쁜 여자와의 향락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몰랐다. 다음날도 명옥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돈주머니를 차고 그 기녀 집으로 달려가 술을 마셨다. 타락해 가는 우명옥을 바라보며 동료들은 기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뱃놀이를 나갔던 배가 심야에 돌아오다가 폭풍우를 만나 동료들은 모두 빠져 죽고 명옥만 혼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 일을 겪은 후, 명옥은 지난날의 교만과 방탕함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스승인 지외장을 다시 찾아가 용서를 구하기로 작정한다. 초라한 몰골을 가지고 다시 찾은 광주분원. 인적은 끊겼고 가마에 불이 꺼진지 오래 되었건만, 먼 산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그의 스승은 제자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스승 지외장은 “네가 돌아올 줄 알고 있었다. 너를 내 아들이라 여기고 있는지 오래 되었는데, 부자간에 용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이젠 그릇을 굽지 말고 네 모습을 만들어 구워 보거라!”

다음 날부터 새벽 일찍 일어나 기도를 드린 뒤, 오랫동안 망설이던 작품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것은 몇 해 전 인연을 맺은 친구가 권했던 것으로, 명옥이 ‘설백자기’를 만들어 조선 땅에 이름을 날릴 즈음, 전라도 화순에서 젊은 선비 한 명이 찾아와 그에게 비밀리에 제작 방법을 전해준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친구의 이름은 하백원(1781∼1844)이었으며, 조선 후기의 실학자였다. 드디어 우명옥은 조그마한 술잔 하나를 만들어 스승인 지외장에게 바쳤다. “이게 무슨 잔인가?” “계영배(戒盈杯) 라는 술잔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지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술잔하고 어떻게 다른가?” “잔의 7부만 술을 따르면 마실 수가 있는데, 7부를 넘치게 술을 채우면 모두 밑바닥으로 흘러내려 사라지고 맙니다.”

그 후, 우명옥이 스승에게 바쳤던 계영배는 당대 최고의 거상인 임상옥(林尙沃, 1779∼1855)에게 전해졌고, 그는 이 잔을 늘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면서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상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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