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53] 노자 ‘도가사상’과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치명적 약점은?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 그릇과 같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채우기 위해 부단한 시도를 한다. 채울 수 없는 것을 채우려는 아이러니가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모든 경제활동은 인간의 욕망을 토대로 전개된다. 욕망의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사회는 존속할 수 없다. 사회주의는 개인들의 영리추구를 제도적으로 통제했기 때문에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사적 소유를 철폐해서 평등사회를 이루겠다는 이념은 현실의 논리를 간과한 유토피아적인 발상이다. 당黨이라는 권력체계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겠다는 것 자체가 오류였다는 것은 역사가 이미 증명을 하고 있다.
가장 정치를 못하는 것은 재산을 가지고 백성들과 다투는 것이다. 나는 몇 해 전 정부(국가)가 출자기관의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던 기업에 그동안 민간부문과 병행하여 해오던 업무를 몰아주던 조치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이때 나는 헌법소원청구서에서 이러한 국가의 행위는 국민(민간)의 기본권 침해일 뿐만 아니라 사마천이 <화식열전>에서 구분한 국가가 부富를 가지고 백성들과 다투는 것, 즉 백성을 길들이려고 하는 가장 나쁜 정치행태라고 지적했다.
<화식열전>은 지금부터 2100여년 전에 쓰여진 자본주의 경제이론의 최고最古, 最高의 고전이다. 사마천은 <화식열전> 서두에서 “지극히 잘 다스려지는 시대는 이웃 나라끼리 바라보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음식을 달게 먹고, 자기 나라의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자기 나라의 습속을 편히 여기고, 자신들의 일을 즐기며,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는 노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노자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의 공동체를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 꼽았다. 나라가 작고 백성이 적으면 모든 풍속이 교화될 수 있다는 노자의 생각은 지극히 유토피아적이다. 사마천은 도道라는 추상의 논리로 현실의 풍속을 통제하려는 노자의 입장에 대해 “그러나 이러한 것을 이루기 위해 근대의 풍속을 돌이키고 백성들의 눈을 막으려 한다면 이것은 아마 실행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지적했다. 현실은 구체적인 욕망에 의해 추동이 되는 것이지 추상의 논리나 강압적인 교화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다. 사마천은 백성들의 욕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귀와 눈은 아름다운 소리와 아름다운 모습을 한껏 즐기려 하고, 입은 소와 양 따위의 좋은 맛을 다 보려 하며, 몸은 편하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고, 마음은 권세와 유능하다는 영예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풍속은 백성들의 마음속까지 파고든 지 이미 오래다. 그러므로 미묘한 이론을 가지고 나와 집집마다 깨우치려 해도 도저히 교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화식열전>
‘미묘한 이론’이란 바로 노자의 도가사상을 의미한다. 좋은 옷과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백성들의 욕망이 ‘마음속까지 파고든 지 이미 오래’인데 그것을 무시하고 추상적인 논리로 백성을 교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마천의 생각이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노자의 도가사상이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욕망이 갖고 있는 저력을 너무나 쉽게 간과했다. 사회주의는 국가의 강압적 권력으로 개인들을 개조하고 통제하려 했다. 국가의 근본은 백성이다. 백성 위에 군림하는 국가는 오래 갈 수 없다. 국가란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이지 절대적인 조건이 아니다. 사마천은 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을 가장 잘 다스리는 방법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익을 이용하여 이끄는 것이며, 그 다음은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고, 또 그 다음은 백성들을 가지런히 바로 잡는 것이고, 가장 정치를 못하는 것은 재산을 가지고 백성들과 다투는 것이다.”(善者因之, 其次利道之, 其次?誨之, 其次整?之, 最下者與之爭) <화식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