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의 재밌는 철학] 중국 대국화, ‘사소(事小)의 지혜’로부터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걸고 개혁개방을 추진할 때, 많은 서양학자들은 그개념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며 성공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는 개념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모순 현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을 조금 이해하던 나는 그 성공을 예상했다. ‘모순의 공존’, 이것은 중국문화의 가장 큰 특색 가운데 하나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졸문 ‘개혁개방의 전통 문화적 기초’(오름 출판, 2004)라는 글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서양에서 모순의 공존은 개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니 불가능해야 한다. 모순은 상호 의존하거나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적대적이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서구의 패러다임을 우리는 학습하고 또 강요받았다. 아마 아편전쟁 이후부터일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는 아시아만의 특색이있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방문하였다. 한중간의 우의가 더 돈독해지고, 경제협력도 질적으로 고양된 방향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중요성과 위상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이제는 무의미해졌을 정도로, 중국은 근대의 굴욕을 극복하고 제국의 풍모를 착실히 회복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현실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가 한국에게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국가전략의 핵심적인 사항임에 분명하다. 여기서 나는 중국이 단순히 제국의 풍모를 회복하는 문제에 갇히지 않고, 현대적인 삶을 리드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패권을 수립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서구와 다른 아시아적 패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로 근본적으로는 아시아의 품위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중국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품위 있는 새로운 길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아주 오래된 고전에서 찾고자 한다.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이웃 나라와 관계를 맺는 데 원칙이 있는가?”하고 묻자 맹자가 답하였다. “있습니다. 오직 인자(仁者)적 군주라야 대국이면서도 소국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상(商)나라의 탕왕(湯王)이 갈백(葛伯)을 섬기고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은 곤이(昆夷)를 섬겼던 것입니다. 지혜가 있는 군주라야 소국의 입장으로 대국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주(周)나라 태왕(太王)이 훈죽(??)을 섬기고 월(越)나라 왕 구천(句踐)이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를 잘 섬긴 것입니다. 대국이면서도 소국을 섬기는 자는 천명을 기껍게 받아들이는 자이고, 소국의 입장에서 대국을 섬기는 자는 천명을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천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는 천하를 보존하고, 천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자신의 나라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孟子·梁惠王下)
여기에는 사소(事小)도 나오고 사대(事大)도 나오지만 나는 현대적 관점에서 사소(事小)의 의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싶다. 맹자가 말하는 대(大)와 소(小)의 문제는 주로 국가의 영토를 포함한 물리적 크기를 중심으로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에서 우리가 선린 우호관계를 맺고, 상호존중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국가의 크기와 상관없이 자기가 갖고 있는 우위점을 휘둘러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사소(事小)의 지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한 방면에서 우위점이 있는 나라는 대(大)의 입장에 서게 되고, 우위점이 없는 나라는 소(小)의 입장에 서게 된다.
작은 나라 섬기는 지혜 ‘부드러운 권력’ 창출
중국은 이미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었다. 중심 국가의 역할을 맹자 식으로 표현하면 “천하를 보존(保下)”하는 것이다. 중국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한국에 비해 대(大)의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나는 중국이 한국에게도 존경 받는 나라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그 이전의 중심국가와는 다른 아시아적 품위를 갖춘 존경 받는 중심국가가 되기를 바란다. 이는 단순히 ‘존경 받는다’는 만족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영속적인 중심국가가 되고 또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한국과 중국 양국의 우호 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일은 사소(事小)의 지혜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사소는 근육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강건한 팔뚝으로 행사하는 힘이 아니라 덕성이 가득 담겨있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행사하는 힘을 갖게 한다. 이것은 매우 ‘부드러운 권력(Benign Hegemony)’을 이룰 것이다. 미식축구적인 강건한 권력이 아니라 우슈(武術)의 부드러운 흐름과 같은 권력이 바로 사소의 지혜가 빚어낼 수 있는 권력이다. 이는 근대적인 권력이 아니다. 서구식권력도 아니다. 바로 아시아적이고 중국적인 권력이다. 현대적 권력은 바로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중국인에게 이런 지혜의 발굴과 실천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모순의 대립’이 아니라 ‘모순의 공존’을 실천해 온 중국인의 유전인자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표적 고전들에 바로 이러한 ‘사소(事小)의 지혜’와 ‘부드러운 권력(Benign Hegemony)’에 관한 내용이 가득 들어있다.
공자(孔子)는 인(仁)의 실천방안으로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고”(己所不欲, 勿
施於人. 論語·顔淵) “자기가 서고 싶으면 다른 사람도 서게 해주고, 자기가 통달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도 통달시켜 준다”(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論語·雍也)라고 말한다. 인은 유가에서 말하는 중심덕목인데, 인을 실천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사소의 원칙을 실천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나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우호관계를 더욱 증진시키기 위하여 한국과 중국 모두에게 사소(事小)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런 사소의 실천을 통하여 중국은 ‘부드러운 권력’을 창출하고, 그 결과 화해사회(和諧社會)와 화해국가(和諧國家)를 거쳐 화해교린(和諧交隣) 및 화해 세계(和諧世界)를 이루는데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소의 실천은 양국 간 우호관계를 확립해 줄 뿐 아니라 중국적이고도 아시아적인 지혜를 세계에 보여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