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54] 2100년전 ‘시장주의자’를 아십니까?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 사마천이 최고의 통치형태로 꼽은 ‘선자인지善者因之’의 논리는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경지로 내세운 노자의 도가사상과 같다. 소국과민과 맥을 같이 하는 ‘인因’의 통치는 현실에서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마천이 이를 최고의 것으로 내세운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염원하는 유토피아의 보편성에 대한 인정의 차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 최고의 통치형태는 ‘이도利道’이라는 것이 사마천의 생각이라 해석할 수 있다. 가르침을 통해 백성을 깨우치는 ‘교회?誨’는 유가의 통치논리이고, 법과 제도를 통해 백성을 바로 잡는 ‘정제整?’는 법가의 통치논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교육과 법령 등으로 백성을 교화하려고 한 유가와 법가의 통치논리는 좋은 옷과 음식을 원하는 백성들의 근원적인 욕망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점에서 ‘이도’보다 못하다는 것이 사마천의 논리다.

‘교회’와 ‘정제’의 통치보다 못한 것이 바로 백성과 이익을 놓고 다투는 ‘여지쟁與之爭’이다. ‘이익을 이용하여 이끄는 것’과 ‘재산을 가지고 백성과 다투는 것’은 둘 다 이익을 매개로 하고 있지만 차원이 전혀 다른 통치형태다. 전자는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후자는 백성의 삶을 곤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사마천은 왜 ‘이도’를 현실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통치형태로 꼽았을까? 그에 대한 답은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는 관자의 말을 인용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삶이 넉넉해야 백성들이 예절과 영욕을 안다는 것이다. 경제가 우선되어야 ‘교회’와 ‘정제’의 통치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선후先後의 관계를 설파한 것이 바로 사마천의 통치사상이다. ‘이도’ 후에 ‘교회’와 ‘정제’가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이 사마천의 견해이지 무조건 ‘이도’가 최고라고 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도’로써 삶의 토대를 마련하고 그 다음 ‘교회’와 ‘정제’로써 백성들의 예를 바로 세우는 것이 바로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인因’의 통치를 확립하는 방책이다. 그러하기에 ‘이도’와 ‘교회’와 ‘정제’의 관계는 중요성에 대한 선후의 문제이지 내용의 우열을 가리는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사마천의 ‘자연의 법칙’과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물건을 만들어 팔고 사는 일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자연의 이치와 같은 것이지 정령이나 교화와 같은 인위人爲로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사마천의 경제관이다. 인위적인 통제로 경제의 흐름을 규제한다면 백성들의 삶은 핏줄이 막혀 동맥경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산서지방에는 목재와 대나무 등이 많고, 산동지방에는 물고기와 소금 등이 많고, 강남지방에는 금과 주석 등이 많고, 북쪽지방에는 말과 소 등이 많은 것은 바둑돌을 벌여 놓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산재散在하는 것이라고 했다. 흩어져 있는 각 지역의 특산물은 유통을 통해 교류되는데, 이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인간의 욕망에 의해 촉진되는 것이라고 사마천은 보았다.

농부가 농사를 기다려 양식을 얻고 산택山澤을 관리하는 우인虞人이 각종 재료를 개발해 내기를 기다리며 공인工人이 각종 재료를 완성품으로 만들어내기를 기다리며, 상인商人이 각종 물건을 무역하고 유통하기를 기다린다. 이러한 일들이 어찌 관청이 정령政令을 발표하고 백성을 징발하며 기한을 정하여 수집해서 이뤄지는 것이겠는가? 사람들은 단지 자기 재능에 따라 역량을 극대화하여 자기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값이 저렴한 물건은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 값이 비싼 곳으로 그 물건을 가져가 팔려고 하고, 어느 한 곳에서 물건 값이 비싸게 되면 곧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 값이 저렴한 곳에서 물건을 들여오게 한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의 생업에 힘쓰고 자기 일에 즐겁게 종사하여 마치 물이 아래로 흘러가듯 밤낮으로 정지하지 않으며 물건은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가서 찾지 않아도 백성들이 스스로 가지고 와서 무역을 한다. 이 어찌 ‘도道’와 자연의 효험이 아니라는 말인가? <화식열전>

농부가 먹을 것을 생산하고, 어부와 사냥꾼은 원자재를 공급하고, 기술자는 원자재를 가공해 생필품을 만들고, 가공된 생필품을 시장을 통해 유통시키는 지속적인 과정에 대한 사마천의 설명은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에 대한 설명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저마다의 능력을 다해 노동을 하고, 생산된 물품들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싸지기도 하고 비싸지기도 하며, 물건들이 부르지 않아도 시장에 절로 모여들어 교환이 되는 일련의 이치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은 ‘자연법칙’이라는 사마천의 주장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거의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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