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59] 사마천의 ‘궁형’과 연암 박지원의 ‘나비’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사)아시아기자협회 부이사장] 사마천은 친구 임안에게 보내는 서신 <보임소경서>에서 궁형, 즉 생식기 거세의 치욕을 딛고 <사기>를 쓰게 된 심정을 절절하게 서술했다. 사마천은 흉노와 싸우다 곤경에 처해 병사들과 함께 흉노에 투항한 이릉李陵을 변호하다 한 무제를 기만했다는 죄로 투옥되었다. 당시는 죄인이라 하더라도 거액의 돈을 내면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사마천은 돈이 없어 결국에는 궁형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당시에는 궁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사마천이 죽음을 택하지 않고 궁형의 치욕을 택한 것은 오로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한 일념 때문이었다. 만약 자신이 죽음을 택한다면 그것은 ‘아홉 마리 소 가운데서 터럭 하나 없어지는 것九牛一毛’처럼 의미 없는 일이며, 사람들은 내가 죄를 피할 길이 없어 스스로 죽었다고 여길 것이라고 사마천은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란 진실로 한 번 죽지만 어떤 경우에는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경우에는 새 터럭보다 가벼우니 이는 죽음을 이용하는 방법이 다른 까닭”이라는 논지로 자신의 선택이 함의하는 바를 설명했다.

선비란 형벌의 치욕을 당하기 전에 목숨을 끊는 것이 도리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바 이는 죽음을 다루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게 사마천의 생각이다.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一家의 말을 이루고자 했는데 이릉의 일로 화를 당하게 되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애석한 마음이 들어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몰랐다고 고백하며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지와 소회를 밝혔다.

나비를 잡는 마음

<사기>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을 명백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서술의 의미가 확연한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모호해지는 오묘한 변화가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사기를 읽는 묘미이자 어려움이다. 연암 박지원은 그러한 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린아이가 나비 잡는 광경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지요. 앞무릎은 반쯤 구부리고, 뒤꿈치는 까치발을 하고, 두 손가락은 집게 모양으로 내민 채 살금살금 다가갑니다. 손끝이 나비를 의심하게 하는 순간 나비는 그만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자 아이는 웃고갑니다. 부끄럽고 한편 속상한 마음, 이게 사마천의 글 짓는 마음입니다.(연암이 친지 박희병에게 보낸 편지)

연암은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의 마음을 ‘나비를 잡는 아이’에 비유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나비 곁에 다가가 손을 내밀며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의 심정은 삶의 절박한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해되기 어려운 경지다. 사마천이 치욕을 감내하며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노력의 결정체가 눈앞의 ‘나비’로 외화되어 나타났을 때의 떨림과 두려움, 그것이 바로 ‘망설임의 순간’이다.

이제 손만 뻗어 저 나비를 잡으면 나의 모든 치욕이 보상될 수 있을 것 같아 주저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나비가 휙 날아가 버렸을 때 사마천은 미소를 지으며 ‘부끄러움과 속상함’의 심정으로 사라져 버린 나비의 뒷모습을 유유히 바라봤을 거다.

완성이란 미완성의 다른 표현이다.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미처 보지 못한 빈틈이 생겨 주인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나비로 비유된 사마천의 <사기>였다는 것이 연암의 설명이다. 날아가 버린 나비는 이제 독자의 몫이 된 셈이다. 텍스트란 저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독자의 해석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텍스트는 원래 저자가 의도했던 바와는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은 저자가 미처 보지 못한 빈틈을 메워 텍스트를 완성시켜갈 수도 있고, 원저자의 의도를 왜곡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러한 연유로 사마천은 ‘제 뜻을 알아줄 사람’에게 <사기>를 전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연암 박지원이 사마천의 마음을 ‘나비 잡는 아이’에 비유해 설명한 이유는 <사기> 독법의 첫걸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사마천이 나비를 잡는 심정으로 사기를 집필했듯이 독자들도 나비를 잡는 심정으로 사기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암은 <열하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실대로 짓는 곳에 글의 참 맛이 있는 것이니 하필이면 먼 옛날을 끌어 올 게 무엇인가? 한당漢唐은 지금이 아니요, 풍요風謠 또한 중국과 다르다. 반고班固나 사마천이 만약에 다시 살아 나온다 하더라도 결코 반고나 사마천을 배우지 않을 것이다.(열하일기)

연암 박지원은 16살 때 처삼촌인 이양천李亮天에게 <사기>를 배웠다. 연암은 사기를 배우며 사마천의 사상에 깊게 매료되었다. 연암이 <항우본기>를 모방해 <이충무전李忠武傳>을 지었다는 사실만 봐도 그가 사마천에게 받은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연암이 “결코 반고나 사마천을 배우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은 ‘사실대로 짓는 곳’과 ‘지금’이라는 표현에 있다. 사실에 입각한다는 것은 당대의 현실에 족한다는 것이다.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는 ‘지금’과 다르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연암의 생각이다. 연암은 사마천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사마천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을 말한 것이다.

연암은 아들 박종채朴宗采에게 ‘인순고식 구차미봉因循姑息 苟且彌縫’이라는 글자를 써주며 천하의 모든 일이 이 여덟 자로부터 잘못된다고 했다. “늘 하던 일이라고 여겨 만사를 그대로 따라 하고, 마음 편한 것만 찾아 매사를 임시변통으로 처리하는” ‘인순고식 구차미봉’의 태도가 일을 그르치는 원인이라는 지적은 연암의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연암의 그러한 세계관이 사마천을 읽는 일에도 적용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만사를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편한 것을 버리며 불편함 속에서 새로운 방도를 찾아내는 것이 공부의 정도正道다. 그러한 공부법이 바로 연암이 사마천을 읽는 독법의 요체다. 그것은 사마천의 ‘나비’를 자신의 ‘나비’로 만들어가는 절실한 과정이며, 삶의 매순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지혜의 방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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