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61] 술꾼 당신께 조지훈 수필 ‘주도유단’ 일독을 권함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그러므로 ‘술이 극도에 이르면 어지럽고 즐거움이 극도에 이르면 슬퍼진다.’고 하는데, 모든 일이 다 이와 같습니다. 사물이란 지나치면 안 되며, 지나치면 반드시 쇠합니다._「골계열전

시인 조지훈은 ‘주도유단酒道有段’이라는 수필에서 술 마시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품성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면 사람마다 급수가 다르듯 같은 술을 마셔도 사람에 따라 인격의 다름이 드러난다는 것이 조지훈 선생의 가르침이다. 이는 “첫째 술을 마신 연륜이 문제요, 둘째 같이 술을 마신 친구가 문제요, 셋째는 술을 마신 기회가 문제며, 넷째 술을 마신 동기, 다섯째 술버릇, 이런 것을 종합해보면 그 경지를 알 수 있다”는 말로 요약된다.

조지훈 선생은 음주의 단계를 9급부터 9단까지 모두 18단계로 구분하였다. 주도의 모든 단계를 일일이 거론하기에는 번잡함이 있어 마지막 단계가 무엇인지만 밝혀보겠다. 주도의 최고 경지인 9단의 명칭은 ‘폐주廢酒’이며, 이는 술로 말미암아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에 해당되며, 별칭으로 열반주涅槃酒라 한다. 이 경지까지 가야할지 의문이 들지만 골똘히 생각해보니 참으로 묘하다. 이유는, 모든 쾌락의 끝은 죽음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술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극極으로 치닫게 되면 파국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사기>의 ‘골계열전’은 순우곤, 우맹, 우전이라는 세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풍자에 능한 사람들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토크콘서트’의 유명 게스트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기지와 해학으로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말재주들이 능하다보니 사마천도 그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 사람들 중 순우곤의 주론酒論은 시인 조지훈과 비슷한 면모가 있다.

제나라 위왕威王이 순우곤을 불러 댁은 얼마나 마셔야 취하는가, 라고 묻자 자신은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취한다고 대답했다. 이에 왕이 “한 말에 취하는 사람이 어찌 한 섬을 마실 수 있는가” 의아해 하며 이유를 물었다. 이에 대해 순우곤은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을 했다. 대왕이 계신 앞에서는 몹시 두려워서 엎드려 마시게 되어 한 말에 취하고, 어버이에게 귀한 손님이 찾아와 마시게 되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면서 어른들의 끝잔을 받아 마시며 여러 차례 일어나다 보니 두 말에 취하고, 오래 못 보던 친구를 뜻밖에 만나게 되면 사사로운 생각과 감정을 터놓게 되어 대여섯 말에 취하고, 같은 고향마을의 남녀가 모이게 되면 술을 돌리며 쌍육과 투호놀이도 하고 남녀가 손을 잡아도 벌을 받을 일이 없어 기분이 좋아 여덟 말쯤에 취하고, 고향마을 남녀 친구가 돌아가고 나만 남게 되어 비단 속옷 은은한 향내를 느끼며 마시게 되면 즐거움이 극에 달해 한 섬은 마실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의 끝에 ‘주극생란 낙극생비酒極生亂 樂極生悲’란 말을 첨언했다.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럽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퍼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치는 세상의 모든 일에 적용되는 것이라 하자 위왕은 좋은 말이라 찬성하며 자신도 그 뒤로는 밤새워 술 마시는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극단은 파국에 이르는 첩경이다. 그러한 진리를 내심 잘 알고 있지만 무한 경쟁의 세상이 우리의 삶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일이 지천이다. 한 박자 느리게 걷고 때로는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야 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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