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62] “암탉이 울면 망한다고?” 사마천 시대 ‘가부장 편견’ 극복한 여인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사)아시아기자협회 부이사장]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서경>의 ‘목서편’牧誓篇 ‘빈계지신牝鷄之晨’에서 유래했다. ‘빈계지신’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새벽의 암탉’이다. 그런데 그 말이 여성에 대한 비하처럼 여겨지게 된 것은 은殷나라 왕 주紂가 애첩 달기에게 빠져 국정을 문란하게 하자 주 무왕이 “옛사람이 이르되 암탉은 아침에 울지 않는다고 했다. 또 암탉이 새벽에 울면牝鷄之晨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은나라 왕 주는 여인의 말만을 듣고 있다”라고 비판한데서 비롯됐다. ‘빈계지신’은 사기의 ‘주본기’에도 그대로 인용되었다.
사마천은 <사기>를 쓸 때 <서경>과 <시경>에서 자료를 많이 취하였다. 주 무왕이 ‘빈계지신’을 거론한 저변에는 여성에 대한 비하가 담겨있다. 표면에 드러난 것은 달기의 농락에 빠진 주에 대한 비판이지만 그 이면에는 수탉이 울어 아침을 알리는 일은 남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암탉이 새벽에 운다는 것은 통치의 법도를 벗어나는 일이라는 게 무왕의 논리이자 당시의 보편적인 통념이었다. 한마디로 여자는 정치에 나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자에 대한 무시는 유교가 정착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공자는 “오직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가까이 하면 불손하게 굴고 멀리 하면 원망을 한다”고 했다. 소인이란 도량이 없고 간사한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다. 간사하다는 것은 지조와 절개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와 소인배들에게 의기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유교사상의 한 폐단으로 지적이 되고 있다. 여자를 소인에 비유한 공자의 말은 가부장적인 사회의 남성지배를 합리화하는 측면으로 작용을 해서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빈계지신’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당시에도 남자 못지않은 의기로 이름을 떨치던 여성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사기>의 ‘자객열전’에 나오는 섭정의 누나 섭영이다. 또한 조선시대 김은애라는 여인도 섭영에 버금가는 의기를 보여 정조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섭정의 누나 섭영
사기의 자객열전에 섭정?政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사람을 죽이고 원수를 피해 제나라로 달아나, 가축 잡는 일을 하며 노모와 누이를 돌보며 숨어 살았다. 섭정이 무슨 이유로 사람을 죽였는지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나쁘게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은거하고 있던 섭정이 밖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엄중자嚴仲子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한韓나라 애후哀侯를 섬겼던 엄중자는 재상이었던 협루俠累와 사이가 아주 나빴다. 그는 협루에게 죽임을 당할 것 같아 한나라에서 달아나 여러 곳을 떠돌며 자신을 대신해 협루에게 복수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제나라 사람이 “섭정이라는 용감한 사나이가 있는데, 원수를 피해 백정들 사이에 숨어 살고 있습니다”는 말을 하자 엄중자는 그를 찾아가 정중히 사귐을 요청했다.
엄중자는 섭정의 어머니에게 술을 올리고 장수를 축원하며 황금 2,000냥을 내놓았는데, 섭정은 뜻은 고맙지만 노모를 봉양할 음식은 자신이 마련할 수 있다며 그의 호의를 거절했다. 엄중자는 자신이 원수를 갚아줄 사람을 찾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것은 사실이지만 당신이 의기가 높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 황금을 바친 것이지 달리 바라는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섭정은 노모가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에게 바칠 수 없다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완곡히 전달했다. 섭정이 거절했지만 엄중자는 서운함을 드러내지 않고 끝까지 예를 다했다.
그 후 세월이 지나 노모가 죽자 섭정은 “나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일할 것이다”라며 엄중자를 찾아가 원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엄중자가 한나라의 재상 협루라고 일러주자 섭정은 혈혈단신으로 호위무사들을 뚫고 나아가 관청 당상에 앉아 있는 협루를 찔러 죽인 후 스스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도려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고 죽었다. 섭정이 그리 한 까닭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혀진다면 누나 섭영?榮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나라에서는 자객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주겠다고 하였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소문을 들은 섭영은 “그는 내 동생일 것이다. 아! 엄중자가 내 동생을 알아주었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섭영은 동생의 시체를 부여 앉고 울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이 시체가 바로 자신의 동생인 섭정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사람들이 어찌하여 일부러 그것을 밝히는지 묻자, 자신의 동생은 나와 어머니를 위해 오욕을 무릅쓰며 백정으로 살았는데 이제 어머니도 천수를 누리다 돌아가셨고 자신도 시집을 가 편안히 살게 되자 동생은 일찍이 자신을 알아준 엄중자를 위해 협루를 죽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선비는 본래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고 합니다. 섭정은 제가 살아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훼손시켜 이 일에 연루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저에게 닥칠 죽음이 두려워 동생의 장한 이름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과 함께 동생 곁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 소문을 듣고 한나라는 물론 진나라, 초나라, 제나라, 위나라 사람들 모두가 “섭정만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의 누이 역시 장한 여인이다!”라고 했다. 섭정을 알아준 것은 엄중자이지만 섭정의 의기를 드높게 만든 것은 섭영이었다. 섭영의 용감한 행동이 없었다면 섭정은 일개 자객으로 치부되어 사람들로부터 망각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