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56] 사마천은 ‘현대수정자본주의’의 뿌리?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 사마천은 “쌀값을 안정시키고 물자를 고르게 유통시켜 관문이나 시장에 물건을 넉넉하게 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길”이라고 했다. 삼보三寶 즉 식량, 자재, 제품의 유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것이 국가의 최소한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익을 이용하여 백성을 이끈 다는 ‘이도利道’의 논리는 최소한의 규제로 시장의 활성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사마천의 ‘이도’는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반드시 먼저 국민을 부유하게 해야 한다. 국민이 부유하면 다스리기 쉽지만, 국민이 가난하면 다스리기 어렵다.治國之道 必先富民 民富易治 民貧難治”는 관자의 주장과 상통한다.

<평준서>는 <화식열전>의 자매편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사마천은 <평준서>에서 한 무제의 영토확장 정책으로 인해 야기된 경제파탄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한 무제는 국가의 재정을 늘리기 위해 소금, 철, 술 등의 전매 정책을 내세웠다. 사마천의 입장에서 보면 한 무제의 전매 정책은 “재산을 가지고 백성들과 다투는 것”이다. 한 무제가 영토 확장을 추진하기 이전 한나라의 경제는 매우 융성했다. 국가의 창고에 곡식이 넘쳐나 길가에 쌓아 놓은 곡식들이 썩어버릴 정도였다. 그런데 흉노의 정벌과 대규모 토목사업 그리고 궁중의 호화로운 생활로 인해 국가의 재정이 쪼들리게 되자 세금을 늘리고 염철을 국유화해서 세수를 늘렸다.

특히 곡물의 가격이 쌀 때 국가가 대량 매수를 했다가 가격이 오를 때 비싸게 내다 파는 ‘평준법’의 시행이 문제가 되었다. 평준법은 국가의 매점매석 행위를 정당화하는 시책이라 할 수 있다. 평준법과 염철의 국가운영은 모두 낙양의 상인 출신인 상홍양桑弘羊에 의해 입안된 것이다. 상홍양의 시책으로 한나라의 재정은 풍족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상업의 억제와 증세를 통해 얻어진 것으로 시장의 기능을 교란시키는 것이었다.

“대농의 여러 관원은 천하의 화물을 모두 장악하여 비쌀 때에는 그것들을 팔고 쌀 때에는 그것들을 사들이도록 하며, 이와 같이 하면 돈 많은 상인과 큰 장사치들은 큰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져서 근본[농업]으로 돌아가게 되어 모든 물건은 그 가격이 뛰어 오르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이런 방법으로 천하의 물가를 억제하는 것을 이름 하여 ‘평준平準’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천자는 그 제안을 옳다고 여겨 그렇게 하도록 했다.”<평준서>

국가와 결부된 대농들이 물가 억제라는 미명 하에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바로 ‘평준’의 본령이다. 요즘말로 하면 정경유착이다. 상홍양은 “모든 관청에서 나름대로 스스로 사고팔면서 서로 경쟁을 했으므로 물가가 이 때문에 뛰어 오르고, 천하에서 조세를 운송하는데 어떤 경우는 그 운송비도 충당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유로 평준법의 시행을 황제에게 제안했다. 자유경쟁이 가격을 상승시켰고, 그로 인해 조세 수급의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상홍양의 진단이다. 그에 대한 처방으로 내려진 것이 매점매석을 통해 시장을 교란시켜 상인들의 이익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평준법을 시행한지 1년 만에 한나라의 태창과 감천창은 곡물로 넘쳐나게 되었다. 그 공로로 상홍양은 좌서장左庶長 작위를 하사 받았고, 황금을 두 번에 걸쳐 1백근씩 받았다.

사마천은 상홍양의 억상抑商정책에 대해 복식卜式이라는 인물이 황제에게 진언한 말을 빌려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때마침 나라에 가뭄이 있어 황제가 기우제를 지내게 했는데, 이 때 복식이 “조정은 조세만으로 입을 것과 먹는 것을 충당해야 할 뿐인데, 지금 상홍양은 관리들로 하여금 시장에 늘어선 점포에 앉게 하고는 물건을 팔아 이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상홍양을 삶아 죽인다면 하늘은 비를 내릴 것입니다”라고 진언했다. 복식의 말은 <평준서>의 마지막에 나온다.

사마천이 <평준서>의 마지막을 복식의 말로 끝맺은 이유는 바로 상홍양의 정책이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기는 했지만 관리들이 시장을 교란시켜 이익을 챙기는 폐단을 낳았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상홍양의 시책은 사마천이 가장 저급한 정치의 형대로 지목했던 ‘여지쟁與之爭’의 대표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사마천은 현대 수정자본주의 경제이론을 이미 그 당시 수용하는 혜안을 갖고 있었다. 사마천은 <평준서>의 내용 전체를 평론하는 부분에서 “사물이 극성하면 쇠락하고 시대도 극점에 이르면 전환하니, 한 번은 질박한 시대, 한 번은 화려한 시대가 번갈아 나타나 처음부터 끝까지 변한다”고 했다. 꾸밈 없이 수수한 ‘질박한 시대’와 사치와 교만이 분수를 넘는 ‘화려한 시대’가 번갈아 나타나는 것이 변화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질박한 시대’에는 국가의 간섭이 필요 없다.

그러나 ‘화려한 시대’에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부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 본성이 극에 달하면 사치와 교만으로 변하게 된다. 이익을 이용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이도利道’의 통치도 어느 순간 쇠락하기 마련이라는 게 사마천의 생각이다. 그래서 교화를 통해 백성을 깨우치는 ‘교회?誨’와 법과 제도를 통해 백성을 바로 잡는 ‘정제整?’가 필요한 것이다. 사마천은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자유방임주의적인 원칙을 고수하는 한편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원칙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탄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적인 입장에서 한걸음 더 나가 수정자본주의 경제이론의 비조인 케인즈적 시각까지도 수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마천은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국가가 일정 정도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유경쟁의 원리까지 침범하여 시장을 교란 시키는 ‘여지쟁’의 행태는 용납하지 않았다. 사마천은 국가의 역할이란 국민들의 의식주와 관계된 물품들의 가격을 안정시키고, 물자를 고르게 유통시켜 시장의 활성화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헌법은 경제질서의 기본원리로 자본주의적 자유시장 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자유경쟁이 초래할 폐단을 시정하기 위하여, 즉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국가의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이때 국가의 관여는 어디까지나 예외적, 보충적으로 기능하도록 하고 있다. 사마천의 경제이념은 바로 우리 헌법에 의해서도 수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혜안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물건과 돈을 흐르는 물처럼 원활하게 유통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국가가 수행해야 할 임무라는 사마천의 주장은 정치 포퓰리즘으로 경제의 논리를 왜곡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소중한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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