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51] ‘돈을 버는 것’과 ‘쓸 줄 아는 것’의 차이점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 범려가 19년 동안 세 차례나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물자를 쌓아 두었다가 시세의 흐름을 보아 내다 판 것인데, 이는 ‘때와 쓰임을 알면 그때 필요한 물건을 알게 된다’는 것을 적절히 실천한 결과다. 범려는 자신이 거두어들인 재산을 두 차례에 걸쳐 가난한 친구들과 먼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사마천은 이를 “부유하면 그 덕을 즐겨 행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백규와 범려는 현실, 즉 시세의 변동을 잘 살펴 사고 파는 일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행하여 부를 축적했다. 이는 모든 부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범려와 백규는 자신이 얻은 부를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부자가 덕을 행하는 일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제일의 조건이다. 아울러 덕을 실천하며 자신의 생활에 있어 근검과 절약의 태도를 보인다면 그보다 더 훌륭한 모범은 없다. 범려와 백규는 바로 그 모범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요즘 일부 대기업들의 갑甲질 횡포가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재물은 덕으로 보존하지 않으면 곧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사마천은 “1년을 살려거든 곡식을 심고, 10년을 살려거든 나무를 심으며, 100년을 살려거든 덕을 베풀어라. 덕이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덕은 재물을 보존하는 영원한 금고라는 것을 우리나라의 대기업 운영자들이 꼭 유념했으면 한다.
돈을 버릴 줄 아는 용기
사마천은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는 속담은 빈 말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염라대왕도 돈쓰기 마련이다”라는 게 있다. 돈으로 못할 게 없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아테네의 티몬>에 나오는 “금? 귀중하고 반짝거리는 순금? 아니, 신들이여! 헛되이 내가 그것을 기원하는 것은 아니라네. 이만큼만 있으면, 검은 것은 희게, 추한 것은 아름답게 만든다네. 나쁜 것을 좋게, 늙은 것을 젊게, 비천한 것을 고귀하게 만든다네”라는 구절도 바로 돈의 무한한 위력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돈의 위력은 대단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는 말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각인이 되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뇌리에 먼저 떠오른다. 돈으로써 거짓을 참으로 꾸미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범려는 자신의 둘째 아들이 사람을 죽인 죄로 초나라에 갇히게 되자 “사람을 죽였으면, 죽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내가 듣건대,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라고 한다”며 막내아들을 보내 둘째 아들을 구명하려고 했다. 그러자 장남이 막내를 보내려는 것은 자신을 어리석게 여기신 거라 항변하며 목숨을 끊으려고 해서 결국에는 장남을 보내게 되었다.
범려는 상당한 양의 황금을 챙겨주면서 이것을 자신의 친구인 장생莊生에게 건네주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을 신신당부하였다. 그러나 장남은 장생을 신뢰하지 않고 따로 황금을 챙겨 초나라 관리에게 로비를 했다. 이 때 장생은 초나라 왕을 만나 덕으로 나라의 해를 없앨 것을 권했고, 그 말을 들은 왕은 사면을 단행하려고 했다. 장남의 로비를 받은 관리가 왕이 사면을 할 거라고 미리 알려주자, 장남은 사면이 되면 동생은 장생의 도움이 없어도 나올 거라 생각하여 장생을 찾아가 황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이에 치욕을 느낀 장생은 백성들이 지금 범려의 아들이 뇌물을 써서 왕께서 사면을 단행하게 되었다고 믿고 있으니 이를 바로 잡으시라고 간언을 했다. 초나라 왕은 화가 나서 범려의 아들을 먼저 죽이고 그 후에 사면령을 내렸다. 장남이 동생의 시신을 안고 집에 돌아오자 그의 어머니와 마을 사람이 모두 슬퍼했는데 범려는 혼자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정녕 그가 동생을 죽게 할 줄 알았다. 그놈이 동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돈을 아까워하여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큰 아이는 어려서부터 나와 함께 고생을 했고, 살기 위해 어려운 일을 겪었으므로 돈을 쓰는 데 상당히 신중하다. 막내는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잘 사는 것만 보았고, 좋은 마차와 말을 타고 다니며 토끼나 잡으려 다녔으니, 그가 돈이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어찌 알겠는가? 따라서 쉽게 돈을 쓰고, 아끼거나 인색하지 않다. 이 전날 내가 막내아이를 보내려 하였던 것은 그가 정녕 돈을 버릴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큰 아이는 그렇게 하지 못해서, 이에 결국 동생을 죽였으니, 사물의 이치로 보아 슬퍼할 일이 못된다. 나는 밤낮으로 둘째 아이의 시신이 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월나라 왕 구천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