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 사인 패혈증·심부전①] 뇌졸중과 폐렴 겹쳐 급속도로 건강 악화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거산(巨山)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전 0시 22분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88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주치의인 서울대병원 오병희 원장은 직접적인 사인(死因)은 “허약한 전신 상태에 패혈증(敗血症)과 급성 심부전(心不全)이 겹쳐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체력은 빌릴 수 없다”는 신념에 따라 새벽 조깅, 배드민턴 등으로 체력관리를 하였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남 거제에서 멸치 어장을 크게 한 부친 고 김홍조옹을 향한 지극한 효심(孝心)으로도 유명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부친이 2008년 9월 작고한 뒤 심신 양면으로 충격을 받아 건강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고령은 피할 수 없어 건강에 이상신호가 온 것은 2008년으로 경미한 뇌졸중 치료를 받았으며, 2013년에는 넓은 범위에 걸쳐 뇌졸중이 발생했다. 이에 2013년 4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반신불수를 동반한 중증 뇌졸중과 폐렴으로 1년 6개월간 입원해 있으면서 전신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김 전 대통령은 장기간 투병생활로 인하여 면역력이 감소해 폐렴을 수시로 앓았다. 또한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 협착증으로 스텐트(stent) 시술도 받은 바 있다. 지난 11월19일 발열 증세로 다시 입원했으며, 상태가 악화돼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타계했다. 서울대병원은 중환자실에서 특별한 수술이나 시술은 하지 않았으며, 인공호흡기 등 생명 연장 치료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YS’라고 불렸던 김영삼(Kim Young-Sam)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에서 출생했다. 1951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후 그해 당시 장택상(張澤相)이 국회부의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비서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손명순 여사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 3녀가 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거제에서 만25세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으며, 1992년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돼 국회의원직 사퇴로 38년간 의정활동을 마감하였다.
고인은 1993년 2월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취임하면서 ‘문민정부’를 열고 칼국수로 상징되는 ‘검소’를 내세우며 부패와의 전쟁을 벌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젊어서는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민주화의 초석을 다졌다. 군(軍)의 대표적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체하였으며,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등은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쟁취한 한국의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개혁으로 김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집권 초 90%를 육박하기도 했다.
한편 세계화라는 구호에 집착하면서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성급하게 1996년 가입하여 한국경제는 급속도로 추락했다. 방만한 경제 운영과 부실한 대처는 1997년 11월 ‘외환위기 사태’를 불러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만 했다. 또한 정권 말 가족관리를 잘못해 차남 현철씨가 무소불위(無所不爲)한 권력을 휘두르다가 알선 수재ㆍ조세 포탈 혐의로 구속 수감되면서 대통령의 부패척결 드라이브는 빛을 바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삶은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좌우명으로 삼았는데, 이는 “큰 도리나 정도(正道)로 나갈 때에는 거칠 것이 없으며, 누구나 그 길을 걸으면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있다.
빌 클린턴(Bill Clinton, 제42대 대통령, 1993.1-2001.1) 미국 대통령이 첫 정상회담차 1993년 7월 한국을 찾았을 때 YS는 ‘大道無門’을 붓글씨로 직접 써서 선물했다. 클린턴이 의미를 물었을 때 당시 청와대에서 영어 통역을 맡은 박진(전 국회외교통상통일위원장, 현 한국외대 석좌교수) 박사는 “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Righteousness overcomes all obstacles)”고 설명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갸우뚱했다. 박 전 국회의원은 “대도에는 문이 없다(A high street has no main gate)” “고속도로에는 요금정산소가 없다(A freeway has no tollgate)”고 덧붙였다. 그제야 클린턴은 손뼉을 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