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그 5천년의 생얼③] “월가를 점령하라” ‘大천재’ 그레이버···예일대서 테뉴어 거부돼

[아시아엔=김영수 국제금융학자, MIT대 경제학박사]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경제학자 겸 인류학자로 분류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은 분류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한다. 꼭 분류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 분의 글을 읽으면,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실족한다. 스캔달리조 당한다는 말이다. 자빠뜨려져 꽈당하고 코피 터진다는 얘기다.

이 분, 당연히(?) 젊어서 근무하던 예일대학교에서 테뉴어 못 받았다. 필자는 예일대를 참 싫어한다. 그 대학 학풍과 전혀 맞질 않는다. 답답하다. 화려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교한 것도 아니다. 이 양반 예일대에서 테뉴어 못 받았을 적에, 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 정도 영향력이 있었다. 하여간 촘스키를 보호하고 아이돌로 만드는 MIT와 Graeber를 자르는 예일대다. 나는 내가 MIT를 졸업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레이버는 예일에서 잘린 후 영국에 갔다. 런던정경대(London School of Economics)로 갔다. 거기도 원래는 지적 유산이 만만찮은 학교다. 그의 책 <빚…그 5천년의 역사>를 읽어보면, 지극히 난삽하고, 광인의 넋두리라고 볼 사람이 많을 거다. 미셀 푸코의 난삽함에 20배는 더 될 거라고 보면 된다. 하루 5페이지도 읽기 어렵다.

거기다 얼마 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street)의 주동자이기도 했다. 21세기의 아나키스트다. ‘아나키스트’ 참 오랜만에 본다. 반갑다. 한국 역사에서는 反日아나키스트들의 처절하고 통쾌한 일생이 여기저기 에피소드로 등장해 맘에 든다. 그래버도 당근 유대인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그의 저작을 독자들께 권하지는 못하겠다.

나는 여러 번 읽었다. 결론만 말해, “야마(핵심)가 뭐요?” 이런 식으로 남의 말을 끊는 사람들이 왕왕 있다. 그러면서 뭔가 자기들이 상당히 샤프하다고 오해하는 작은 두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 보면 불쌍하다. 결론 하나 내리는데, 700~800페이지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책들 중 참 좋은 책이 많은데, 이런 작은 ‘샤프볼펜같은’ 분들은 그런 큰 담론들은 원천적으로 소화가 불가능하다. 좌우지간 무척 난삽하다. “체계…그거 뭐꼬?” 이런 식으로 책을 썼다.

난 솔직히 말해서 그래서 더 통쾌하다. 싫으면 안 읽으면 된다. 난 좋아서 읽었다. 그것도 여러 번. 막강한 기억력을 장착하지 않으면 도저히 읽어내려갈 수가 없다. 수백 페이지 앞의 내용과 수백 페이지 뒤의 내용이 수십 갈래의 통로를 경유해 만난다. 안내표지판도 없다. 이런 식으로 독자들의 무한한 기억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난 다행히 컴퓨터로 노트해 가면서 읽어서 그나마 겨우 따라잡았다. 그래서 이렇게 안내하는 글도 쓴다.

까놓고 이야기하면 입시준비 참고서로는 빵점의 책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나는 더 좋다는 거다. 공부를 하려면, 즉 학문에 뜻을 두었으면 일단 체력이 강해야 한다. 소같아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 토론이고 뭐고 가만히 보면 기싸움이요, 결국은 체력싸움이다.

나는 학문적으로 전혀 성공하지 못했다. 학문적으로 전혀 성공 못한 나만 해도, 3시간 강연 전후로 맥도날드햄버거를 2~4개 먹기도 한다. 폭풍흡입이다. 아니면 체중이 확 준다. 그래서 며칠 고생한다. 그래서 이같은 대천재들의 경지를 어느 정도 멀리서나마 흠모할 수는 있다.

이 분 정도의 학문적 성과를 달성하려면 체력도 체력이려니와 기억력에는 전혀 걱정이 없어야 한다. 수천 권, 수만 권을 읽어도 대강은 기억해내야 하는 체력과 지구력 그리고 기억력이 있어야 한다. 어느 학문의, 어느 분야도 내 이야기와 관련된 내용이면 모두 다 알고 있어야 한다.

이 분이 사람들에게 무척 미움을 받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을 요구한다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러니 남들이 그에게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의 소통은 교육이라기보다는 제사행위에 가깝다. ‘네가 모르는 것을 내가 가르쳐주는 그런 수업료 받는’ 행위와는 좀 거리가 있다. 선수들끼리의 지적 잔치, 바로 그거다.

무슨 무슨 과? 그게 뭐가 중요한가? “경제과 교수인데, 왜 인류학을 이야기하나?” 그런 질문들은 이런 대천재 앞에선 정말 부끄러워진다.

얼마 전 박사들 대담을 들었는데, 자기 전공분야가 무엇인지를 갖고 거의 1시간을 이야기했다. 노자에 관해 혹은 무슨 무슨 시대의 아무개가 쓴 어떤 책에 대하여 전공한 자기에게 왜 공자에 관한 질문을 하느냐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 상대는 낄낄 웃는다. 저 사람들 저런 식로 시청자 우롱해도 되나 싶었다. 궁금하면 질문하는 거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거고, 알면 답하는 거지, 웬 전공타령인가?

예를 들어, 자레드, 그 사람이 무슨 과 교수인가? 의학, 사회학, 경제학, 생물학, 경영학…?

마찬가지로 그래버 이 사람이 무슨 과 교수인가? 인류학? 경제학? 사학? 신학? 당연히 예일대 인류학과에서 테뉴어를 못 받는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난 예일대학이 이래서 싫다. 이상하게 예일대는 전반적으로 학풍이 좀 답답하다. 하바드만 못지 않다. 뉴욕에 가깝다.

분류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말이다. 무슨 학과가 왜 그렇게 중요하냐는 얘기다. 밥을 먹고 살면 테뉴어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말이다. 하여간 오랜 만에 제대로 된 천재의 통쾌한 출현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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