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그 5천년의 생얼④] 그레이버, 불공정사회에 근원적 질문 “빚 왜 갚아야 하지?”
[아시아엔=김영수 국제금융학자] 그 통쾌무비한 천재 그레이버는 통쾌무비하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빚, 왜 갚아야 하지?”
“돈? 종이 아닌가?”
“그래서? 왜 너는 내게 종이를 주면서 돈이라고 우기는 거지? 돈, 그게 도대체 뭐지? 내가 네게 주는 종이는 왜 돈이 아니지?”
“돈이 원수? 원수가 뭐지? 돈이 뭐지?”
“빚…왜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갚아야 하지? 그 반대면 왜 안 되지?”
“화폐? 그거 누가 왜 만든 거지?”
이렇게 근본적인 큰 질문들을 던진다. 거의 모든 경제학 교과서를 훑어보면서, 첫 페이지부터 잘못 됐다는 걸 통렬하게 지적한다.
문제는 이 친구의 말이 옳다는 거다. 나는 이래서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고 확신한다. 이 세상 전혀 개같지 않다. 이런 친구들이 아직도 있는 거다. 그래서 여기 사바세계가 재미있고, 살 만한 거다.
큰 질문을 하고 큰 대답을 하는 David Graeber 이야기를 계속하자.
질문(1) : 요사이 빚 때문에 갚으려고, 또는 못 갚아서 고민하고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왜 빚을 못 갚는다고 고생해야하는 걸까?
이 분의 책은 아주 난삽하다. 몇 번 읽어야 겨우 정리가 된다. 내가 사실 지난 몇주 동안 나름 정리를 해보았는데, 이 분이 책을 쓴 순서와 거꾸로 논점을 정리하면 오히려 정리가 좀 된다.
첫 질문. 빚을 못 갚았다고 고민, 고생하는 것? 이 현상이 뭔가 좀 잘못 된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이다.
처음부터 빌리지 말았어야 하고, 꾸어주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빌려주고, 꾸고…그리고 나면 엄청난 부채 불이행 사태가 당연히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런데 그 결과 신용불량자와 파산자를 대량 만들어 놓고, 그 사람들을 사회의 변두리로 몰아낸 다음 반(半)노예상태에 빠뜨려 놓는 셈이다. “이런 전반적인 사태에 채무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다. 엄청 큰 질문이다.
신용불량자나 파산자라고 하면 마치 사치스러운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거나 도박이나 마약 중독 등의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는 듯 취급한다. 하지만 실제 그런 사람들은 지극히 적다. 오히려, 우리가 ‘정상’으로 생각하는 기본생활을 하기 위해 빚을 지게 된다.
예를 들어, 대학 나오지 않으면 취직도 안 되고,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고 겁 주는 사회를 만들어 놓았으니 학자금 융자를 받은 것이고, 직장에 나가려면 차 몰고 한참 가야 하는 지리적 환경을 만들어 놓았으니, 자동차 대부금을 얻은 것이다. 또 렌트를 얻지 못하고 집을 사도록 주거환경이 되어 있으니, 또 주택 이외에는 저축수단도 마땅치 않으니 주택 모기지를 얻은 것 뿐이다.
그나마 직장에서 월급도 펑펑 주고 안정적이면 어느 정도 견딜만 하겠으나 회사가 망하거나 대규모 감원을 해대니 별 도리가 없다. 이런 상황 하에서 누군가 가족 중에 병이라도 들면 곧장 파산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가족 모두가 건강한 집이 얼마나 되나? 집값은 늘 오른다고 온갖 선전을 해댈 적은 언제고, 집값은 왜 폭락하는 거냐 이 말이다.
이런 생활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자식만큼은 (빚을 내서라도) 비싼 학교를 졸업시킨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다고 해서 취직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와 자식, 둘 다 빚쟁이가 되어 빚이 쌓여가는 집에서 집값이 폭락하는 걸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내 자식이 뭐가 그렇게 모자라나? 뭘 그렇게 잘 못했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