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그 5천년의 생얼⑦] “이 독사의 자식들아!”···백인 아닌 중동사람, 예수 누굴 향해 외쳤나?

[아시아엔=김영수 국제금융학자] 현재 상당히 세력을 떨치고 있는 종교들은 거의 모두 돈에 대해 이야기하고 탐욕에 관해서 경고를 한다.

불교만 빼고 고리대금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그레이버의 문제의 발언이 시작하는데, 이 세상에 종교집단만큼 돈에 관해 이토록 지독하고 집요하고 악착스럽게 탐욕스러운 집단이 어디 또 존재한다는 말인가?

억수로 갖다바쳐도 전혀 고마워 하는 것도 아니고, 어려울 때일수록 오히려 더 갖다 바쳐야 한다고 가르친다, 안 갖다 바치면 온갖 나쁜 일이 다 생긴다는 저주를 통해 생뚱맞은 겁을 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있다. 미국 대공황 때 대부분의 교회에 가면 십일조 내는 사람은 직장을 잃지 않았다는 설교를 적어도 1년에 3~4회 듣게 된다.

한국의 IMF때 십일조 내던 사람들이 실직을 많이 했다. 그래도 예의 그 설교는 계속된다. 나는 목사님들이 약간 낯 간지럽지 않을까 궁금하다. 최소한 “십일조는 꼭 달러화로 환전해서 내야 실직 방지의 효과가 있다. 한화로 냈기에 효과가 없었다”는 정도의 설명은 해야 된다고 느끼는데, 목사님 가운데 자신이 실직한 분들도 많다. 그리고 교회가 파산하여 건물이 넘어간 교회도 많다. 그럼 그 목사님들과 그 교회들은 뭐냔 말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사람들을 칭찬하고, 갖다 바치고 망한 사람들을 적당히 묘한 방법으로 침묵시켜 버린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 큰 부잣집 할머니로 신앙심이 참 깊은 좋은 분이셨다. 그 분이 헌금을 펑펑 하셔서, 교회에서는 정말 황제급 권사님으로 칭송을 누리셨는데, 노년에 들어가시면서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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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슬슬 앵기는 사람들도 생기고, 나중에는 목사님들도 그저 귀찮게 취급하였다. 반면, 돈이 많았지만, 교묘하게 낼 때 낼 곳을 피하여 내지 않고, 여전히 돈이 많은 집안이 있다. 그분들은 아직도 교회에서 황제급 칭송과 존경을 누린다. 교회란 곳에서 대접을 받으려면, 실제로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많이 낼 듯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요새처럼 인터넷에, 방송에 전세계가 유비쿼터스(Ubiquitous) 하게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만한 일들을 다 알고 있는데 무슨 선교니 복음전파니 하는 것이 잘 먹힐 리 없다. 복음을 순수히 전하는 것과 이미 알고 있어,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반복학습과 강제세뇌를 통해 쑤셔 넣겠다는 것과 무엇이 차이란 말인가?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다 자기들이 알아서 이미 선택을 했고 그래서 선교할 것도 없는데 선교헌금을 걷고 또 걷는다. 선교헌금을 내면 축복받는다는 거다.

내가 보기엔 예수님에 관해선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제일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뭘, 왜, 어떻게 선교한다는 것인가?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예수님은 끝이 3번 정도 말린 파마를 하신 블론드 장발에 느슨한 가운을 입고 샌들을 끌고 다니는 백인인데, 원수를 그지없이 사랑하며 원수를 위해서 눈물로써 기도하는 그런 고상한 분이다. “원수를 사랑하기 전에, 처음부터 사람들과 원수를 짓지 않는 것이 더 좋지 않았겠느냐?”는 상식적인 의문이 발설되면, 여느 기독교 계파는 대혼란에 빠지곤 한다. 기독교인이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헐리우드영화를 통해 만나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거다.

모세가 찰튼 헤스톤과 같을 것이라는 것처럼 이런 기독교인들의 예수님에 대한 정형적인 인상은 정말 지우기 어렵다. 잔다르크(Joan of Arc)에서 모세의 부인이 Joan이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미국에서는 70%가 넘으니 할 말은 없다.

성경 속의 예수님은, 백인이 아닌 흑발의 수염 많은 중동인이고, 기분 나쁘면 상대에게 “이 독사의 자식들아!”(아마 히브리 원어로는 쉐갸, 쉐마와 같이 히브리어에 정기적으로 등장하는 단어)와 같이 지독한 갈릴리 사투리로 시원하게 욕을 퍼붓는 성격 괄괄한 지극히 남성적인 분이다.

적어도 21세기 한국의 대학 나온 평균 교양인보다는 입이 건 화끈한 블루 칼라 노동자 출신 카리스마 넘치는 걸진 이야기꾼이다. 많은 문제를 길고 차분하며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웩’ 하고 몇마디 화두식으로 던지면서 야단치는 식으로 면박을 주고 “오늘 여기까지!”라고 선을 긋는 분이다. 그래서 2천년이 지나도록 당대의 최고 석학들이 평생 목을 걸고 해석을 해도 아직도 잘 해석 못하는 언행도 많은 분이다.

이른바 <복음서>라는 것이 이래저래 안 읽는 사람들이야,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훈서, 도덕서, 윤리서라고 평생 착각하고 살겠지만 사실 돈에 관한 이야기, 빚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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