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임동근 뒷담화①] “그의 스피치에 푹 빠져 젊은 날을 후회했다”
[아시아엔=김영수 국제금융학자, 캐나다 이스트우드컴퍼니 CEO] 필자는 아침에 조깅하면서 강의를 듣는 습관이 있다. 좋은 강의, 조깅, 좋은 경치, 좋은 날씨. 인생에 이 보다 더 큰 낙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강의와 인터뷰가 있는데, ‘임동근’이라는 분의 인터뷰를 무척 좋아했다. 이번에 그분의 책이 나왔길래 사서 읽었다. 책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내가 그의 인터뷰를 왜 좋아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사람이 말을 할 때 여러 스타일이 있다.
첫째, 그냥 무식한데, 말까지 어눌한 사람이 있다. 일단 논외로 치자.
둘째, 말은 잘하는데, 좀 무식한 사람들이 있다. 피곤하다. 저질러 놓고 수습 못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 수습한답시고 괜히 자조적인 척한다. “세상 더럽다”는 소리를 하고…그냥 밑천이 좀 모자란 거다. 뜬금없이 자기를 돌아본다는 둥 반성하는 척하기도 한다. 벌려놓은 이슈를 그렇게 마무리 지으면 안전하기 때문이다. 자신더러 “내가 이 모양 이 꼴”이란 소리도 가끔 한다. 사람들은 그의 모양새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데도 말이다.
셋째, 매우 유식한데, 말이 좀 어눌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만나서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면 사실 대화의 시간투자당 가장 효율적인 투자를 한 거다. 어눌한데 뭘 물어도 서너 번 익힌 답을 던져주는 사람이다. 숨은 강타자들이 많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그래도 소신껏 밀고 나간다. 나는 YS를 참 좋아했다. 어눌하지만 뚝심이 있었다. 금융실명제는 김영삼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못했을지 모른다. 끝도 한도 없이 유식한데, 말이 좀 어눌한 대표적인 인물은 역시 <총 균 쇠>를 쓴 Jared Diamond다. 그가 누군가를 모르고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 맞먹고 타고 들려고 할 거다.
넷째, 엄청 유식한데, 말까지 잘 한다. 그런 분은 희귀종이다. 적극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다. 내 의견과 같으냐 아니냐를 떠나, 이런 분들은 무척 귀중하다. 자기 의견과 다른 데 이렇게 유식하고 말 잘하면 무척 미워하는 사람이 많다. 못난 이들의 특징이다.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이 그런 유형이다. 유식하고 말 잘하고…
다섯째, 엄청 유식하고 말까지 잘 한다.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들으면 음악이요, 쓰면 시다. 오바마 대통령과 손석희 앵커 같은 사람이 그렇다. 자기 의견과 다르다고해도 미워할 수 없다. 워낙 말을 아름답게 잘 한다.
앞서 말한 임동근 박사가 바로 다섯째 유형이다.
그렇게 말 잘하는 분은 말투에도 독특한 리듬이 있다. 문장의 서두에서는 오히려 소리가 작다. 지적 함량이 무척 높은 뒷얘기를 이미 생각하고 있는 거다. 상대의 관심을 차분히 끌고 올라가다가, 클라이맥스에서 문장을 탁 끊어버린다. 당연히 어퍼커트를 맞은 상대는 계속 생각하게 되고, 이 도사들은 다음 이슈로 넘어가 버린다. 거기서도 서두에는 소리가 또 작다. 무서운 두뇌를 가진 분들이다.
중간에 자기가 하던 말을 탁 끊는다. 어? 하고 생각이 들지만, 사실 우리가 하는 말 가운데 중간에 끊어버려도 문맥이 그대로 통하고 오히려 간결한 경우도 많다.
이런 분들의 다음 특징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식으로 대답할 것으로 기대하고 질문을 던졌는데, 권위를 가지고 한가지로 잘라서 답을 해주면서 여기저기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갈 이슈를 한 방향으로 완결짓는다. 조용하게 잘라버려서 잘라진지도 모르고 다음 이슈로 넘어가게 된다. 듣는 사람은 허걱대며 기가 막힌다.
물론 다음 질문, 또 그 다음 질문으로 연결이 되어나가면, 그런 대화는 성찰의 교재로서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분야든 막강한 두뇌를 가진 고수들은 질문과 토론의 전선을 자기가 선택한다. 뛰어난 군사전략가, 뛰어난 무술가도 마찬가지다. 전쟁과 싸움을 어디서 언제 누구와 벌일 건가를 자기가 선택한다. 상대를 몰고 다닌다. 오는 싸움은 절대로 받지 않는다. 싸움을 건다. 오는 싸움은 상대가 누군지, 얼마나 준비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