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천도 이래 서울 최대사건은 ‘아파트 등장’···보수화·강남3구 투표성향도 좌우

[아시아엔=김영수 국제금융학자, 캐나다 이스트우드컴퍼니 CEO] 필자가 서울을 떠나 유학을 간 것은 1980년이다. 임동근씨가 쓴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그 뒤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기가 막히게 잘 다루고 있다.

마치 수십년 오랜 잠을 깨고 난 사람 마치 립반 윙클의 우화처럼 지난 일을 브리핑해주는 그런 기분이 드는 책이다. 감탄에 감탄을 하면서 계속 읽고 있다. 본래 한번에 정리하고 넘어가려던 책인데, 두 서너번 더 읽을 예정이다. 원문보다 해석이 더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끔 이성계와 정도전이 한양에 정도한 이후 서울에서 벌어진 일 중 가장 큰 게 뭘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개인적으로야 필자의 출생이 제일 중요한 사건이겠으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아니 민주적으로 생각해 볼 때, 역시 ‘아파트’가 아닌가 싶다.

필자는 한국의 지난 30-40년간, 그리고, 앞으로 수년간, 한국의 거의 모든 정치 및 경제현상은 서울의 아파트라는 하나의 덩치 큰 변수로 거의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늘 생각한다.

아파트 가격이 올라서 중산층이라는 생각이 든 사람들, 아파트 가격이 더 올라서 자신이 상류층이라는 생각이 든 사람들과 그들의 투표 성향 같은 것을 생각해 본다. 사실, 그것이 거의 모든 선거를 다 결정한 거다. 한국의 보수화는 아파트에서 시작한 거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나는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 늘리지는 못하더라도 지키곤 싶다. 그런데, 저 xx들-종북, 좌파, 빨갱이들 때문에…’

이게 우리나라 보수(의 철옹성이라는 강남 3구)의 정신세계의 핵심이다. 거기서 시작해서 모든 것을 다 동원한 거다. 시작과 핵심은 그곳이다.

요사이는 강남출신 판사들과 그렇지 않은 판사들의 판결마저도 갈린다고 들었다. 강남 대형교회의 목사님들도 큼직한 비리를 저지른 후 반발하는 장로들이 출현하면, “종북좌파들의 음모…”라는 표현이 그대로 튀어나온다. 초교파적 신앙적 질문이 강남신학적으론 ‘좌빨’들의 선동이 되는 거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해먹은 것과 좌파와 무슨 관계냐”라고. 이 친구들은 수녀복 속에 기관총 숨기고 다니던 해방신학의 맛을 봐야 ‘좌빨’ 소리가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비리든 실력이든, 운이든 노력의 결과이든 자기는 ‘가진 자’라는 의식이 이들에겐 확실히 있는 거다. 그리고 자기 소유의 시장평가 총액에 악영향을 미칠 어떠한 존재도 ‘빨갱이’로 보이는 거다. 약간 부연설명하면, 자기에게 손해를 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 그런 논리를 펴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보다 적게 가진 사람은 ‘좌파’로 본다.

웃기는 건 자기에게 엄청 손해를 주는 논리를 펴더라도, 자기보다 엄청 돈이 많은 사람들은 절대로 좌파로 부르지 않는다. 마윈에게 인생의 갈 길을 물어보고, 버핏에게 우주의 철리를 물어보는데야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에 없다.

아파트 가격의 상승이 주춤하자,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 ‘극보수화’했다. 그걸 올릴 것 같은 사람, 그 사람이 사기전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믿는다. 엄청 더 큰 사기를 쳐서 자기 아파트가격을 올려줄 것 같기 때문이다. 이해된다.

한국의 보수화는 아파트를 통한 중산층의 확대가 설명할 수 있지만, 극보수화는 아파트가격이 주춤한 것으로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모두들 엄청 레버리지를 하였기 때문에, 아파트 가격이 조금만 내려도 순자산이 거의 전부 소각되어 버린다. 소위 자산가(프티 랑티에 프티브르조아)에서 하우스푸어로 되어버린다.

아파트 가격을 1%라도 올려줄 것 같은 후보가, 정의고 민주고 상식이고 통일이고 평화고 그런 ‘잡스러운 것’들을 추구하는 후보보다 절실하게 필요했다. 흠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매력적이었다. 더 유능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진 사람’인 자신이, 자신의 순자산이 전부 소실될 판에 그걸 올려줄 것 같은 성공신화의 신화에게 당연히 몰표가 나온다. 이해가 된다. 필자만 해도 누군가 요상한 사람이 재산이 다 날라 갈 나를 구해준다면, 그가 히틀러든, 히로히토나 무솔리니 스탈린 아베라도 찍을 것이다. 아니, 나서서 선거운동 걸지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구든 욕을 못하는 거다.

아파트는 기가 막힌 금융상품이었다. 나는 한국을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지킨 것이 6.25때는 조봉암의 농지개혁이었고, 6.25 이후에는 아파트라고 늘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사기만 사면 중산층의 상징으로 자리를 매겨줄 수 있었고 2)부동산이면서도 (부동산의 치명적 결함인 환금성 부족 없이) 환금성이 거의 현금과 엇비슷한 수준으로 높았으며 3)분양 청약경쟁이 높도록 분양가가 쌌고, 동시에, 건설회사는 거의 ‘無리스크’로 돈을 벌고, 산 사람은 거의 리스크 없게 재산이 불어난다. 4)처음에는 싼 땅을 정부가 공급하느라 이것이 가능했지만, 나중에는 삼성이 리모델링을 비즈니스 모델로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이 모델을 영속화했으며 5)중동에서의 건설력을 흡수할 수 있었고 6)그 버블을?중동특수와 월남전 특수 등 수출경기로 유지할 수 있었고?7)이른다 IMF사태 때도 유지할 수 있었으며(이로써 남한의 아파트는 신화가 아니라 부동의 진실로 자리매김을 했다) 8)전세시장에서 대기하다가 청약당첨으로 올라갈 수 있었고 9)거기다 들어가 살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전 세계에 이렇게 Win-Win-Win을 만들어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성공한 금융상품의 유래가 없다고 본다. 국채시장을 만들어 전쟁비용을 수세기동안 성공적으로 조달했던 영국의 금융가들도 주식회사를 만들어 지리상의 발견을 주도했던 이탈리아의 상인들도 거기에 못 미친다. 한국의 아파트라는 금융상품의 기발성과 천재성과 막강성 앞에서는 무릎을 꿇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결과 수천조의 (거의 절대로) 꺼지지 않는다고 봐도 되는 ‘튼튼건강 자산’을 만들어냈고, 거기에서 안정된 구매력을 창출해냈다. 심지어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내 아파트 한 채 팔면 이거 10개 산다”식의 쇼핑을 했죠. 7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경제력을 남한이 따라가지 못했는데, 남한이 아파트에서 수천조의 아파트 재산을 만들어 내고나선 게임이 양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부자와 빈자의 게임으로 바뀐다. 북한이 남한의 아파트와 같은 금융상품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면, 지금 게임의 양상은 아주 다를 것이다. 거긴 능력있는 경제관료가 없었고, 수출시장이 막혀있었다.

필자는 요사이 한국에 가서 지내는 날이 점점 많아진다. 한국이 아시아 지역을 커버하기에 점점 편한 허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각 도시를 커버하기엔 북경보다 서울이 더 편하다. 방사선 부채꼴로 커버가 된다. 그래도 여전히 아파트에 적응을 못한다. 강북을 고집하고, 공중에 붕 떠서 잠을 잔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차라리 한강변에 텐트를 칠망정 아파트서 어떻게 살아?’ 하는 주의(主義)다. 아파트는 내겐 영원한 이물질이요, 나는 아파트에겐 영원한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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