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그 5천년의 생얼⑨] 사제계급의 착취가 기독교정신 ‘호도’···본질은 용서·화해·구속
[아시아엔=김영수 국제금융학자] 돈을 숭배하라고 가르치는 종교는 거의 없다. 조폭 사무실에 “차카게 살지 말자”라고 써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차카게 안 사니’ 조폭인 거고, 실제로 돈을 숭배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종교 속에는 있으니, Graeber는 종교에 관해서 그렇게 매몰차게 이야기하는 거다.
예를 들자. 이런 경우에도 섹스를 하면 안 되고, 저런 경우에도 섹스를 하면 안 되고, 이런 여자와도 섹스를 하면 안 되고, 저런 여자와도 섹스를 하면 안 되고, 섹스를 하는 사람은 죽이고, 생각만 해도 곤봉으로 치고…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종교가 사실은 섹스교다. 섹스교라는 종교가 있다면, 아마 하나님과 섹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늘’ 섹스에 관하여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자 이 문장의 기능적 포인트는 ‘늘’ 이다. 말라는 이야기인지, 하라는 이야기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섹스 이야기를 늘 하는 거다. 섹스에 중독된 사람인 거다. 섹스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인 거다. 위의 “차카게 살자”는 말처럼 섹스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거다.
섹스라는 것 자체에 아직 눈을 뜨지 않은 공간에는 섹스를 금하는 섹스교가 존재할 공간이 없다. 마찬가지다. 기독교도 하나님과 매몬(돈의 신) 가운데 선택하라고 윽박지른다. 기독교가 돈에 관한 종교라서 그렇다. 돈의 발생과 발생시점이 같아서 그리고 깊은 연관이 있어서 그렇다.
태초에 천지를 만드신 그 시점과, 돈이 발생한 시점 사이에는 수억년의 시간적 공간이 분명히 있었을 것인데, 그때에는 하나님이 경쟁자가 없다가, 돈이 발생하면서 갑자기 경쟁자가 생겼다? 그건 아니지 아니다. 종교 자체가 돈의 발생과 동 시대에 깊은 연관을 갖고 있어서, 핵심개념 자체에 원천적으로 돈이라는 주제가 녹아있는 거다.
화폐가 발생하지 않는 원시사회에서, 그래서 매몬 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런 원시사회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가서 뭐라고 설교했는지 좀 궁금해 하실 독자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인류학에는 그런 연구가 많다. 예외 없다. 선교사들은 원주민들로 하여금 돈 맛을 알게 해주고, 돈을 사랑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좀 웃기지만, 그게 사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원래 섹스에 관심도 없는 아이들에게 끼니마다 기름진 것 먹이고 야동 틀어주어서 사춘기를 괴롭게 만들어 놓은 후, 섹스하면 절대로 안된다고 가르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겨우 청동기 시대 이후에나 나오는 사람이 만든 화폐의 신인 매몬신과 경쟁을 하자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사실 좀 웃기는 거다.
아마 요새 신약이 쓰여졌으면 하나님과 크레딧카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윽박질렀을 것이다. 10년 정도 후에 신약에 쓰여진다면, 하나님과 비트코인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윽박질렀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다른 종교를 비판하느라 바빠서 자기 종교에 관해서 잘못 알아서 그런 오해가 발생하는 거다.
빚, 용서, 화해, 구속(빚 대신 갚아주기) 등 자기 종교의 기본 핵심 컨셉에 관해 이렇게 많이, 이렇게 심하고 철저하게 오해하는 케이스도 동서고금의 모든 종교 역사 속에 드믈 것이다.
기독교가 유대인의 손을 떠나 원천적으로 품성이 야만적인 이교도들의 손에 들어가면서 처절한 병적인 왜곡화의 과정을 시작해서 그럴 것이다. 대중을 바보로 만들어 처절한 착취를 하는 조직으로서의 교회로 말이다. 우리 약간 까놓고 이야기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 오케이’ ‘예수님 오케이’ 그런데 ‘교회는 No’ ‘목사님도 No’라고 한다. 그런데 이 4가지 컨셉을 믹스하여 혼동시키고, 사제 계급의 지위를 은근슬쩍 우선 확보하고 조금 있으면 하나님의 위치도 슈킹한 후 혼동당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구조, 그게 문제의 핵심이 아닌가?
거의 모든 종교는 Primordial Debt에 관해 이야기한다. 원죄, 업보 등의 여러 표현이 존재하지만, 인류학에서는 그런 모든 컨셉을 Primordial Debt라고 한다.
이걸 갚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사제 계급이다.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거다. “그게 뭐지?” 하고 물으며 “그건 나 같은 전문가들만이 제대로 할 수 있는 복잡하고 위험한 행사야. 그러니 제물이나 가져와!”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게 Primordial Debt, 사제, 제물, 종교집단, 착취, 빚…의 구조적 핵심이다. 그레이버 주장의 핵심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이 구절을 이미 내 컴퓨터 속에 복사해놓았다. 따라서 시시때때로 ‘Control+V’ 키를 누르면 된다.
그런데 거기에다 대고 예수라는 입이 걸고 성격 우락부락한 양반이 엄청 큰 목소리로 사제들의 ‘나와바리’에 와서 판까지 엎어가면서 영업방해를 한다?
“제사가 아니라 긍휼을!” 하고 말이다. “이래저래 너희들이 하나님께 진 빚은 못 갚는다.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식구가 되니 그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 널 불쌍해 하신다. 그러니 너에게 못 갚을 빚을 진 사람들도 왠만하면 불쌍하게 봐주자. 너무 심하게 신체포기 각서의 이행을 촉구하거나, 딸을 해치거나 하는 채권추심 행위를 하고 그러지 말자” 이게 기독교의 핵심이다. 반면 빚진 자들도 채권자들도 이래저래 하나님 앞에서는 다 빚진 자일 뿐이니 ‘내가 요사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있을 뿐이지 기본은 아주 괜찮으니’ 자신있게 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거기서 좀더 가면 성스러운 것을 건드리게 된다. 기독교에 관해서는 여기까지만 하자. 그래도, 하나만 맛보기로, 에피타이저로 살짝만 건드리고 넘어가자. 마음에 준비가 되신 분들은 개인적으로 연락주시기 바란다. 극강 하드코스도 버라이어티한 컨셉을 장착한 채로 준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