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그 5천년의 생얼⑩] 日 고리금융업 ‘무진회사’가 번성하는 이유
[아시아엔=김영수 국제금융학자] 마틴 루터가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반발하여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그러나 루터도 기댈 곳이 있어서 교황에게 대든다. 즉각 화형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그 무엇 말이다. 바로 면죄부 판매라는 희대의 금융공학을 가지고, 한정된 시장을 두고 교황청과 경쟁하던 다른 면죄부 판매 군주들이 루터를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루터가 자신있게 교황에게 대든 것이다.
그래서 교황청은 더 화가 난 것이다. 독일의 촌구석에서 별로 존재감도 없는 루터가 신학적으로만 뭘 떠든들 뭐가 그렇게 화가 났겠느냐 말이다. 그런데 면죄부 판매시장의 경쟁들이 조직적으로 미는 루터가 문제를 일으킨 거다. 사안의 엄중성이 차원을 달리하게 된 거다.
여기서 포인트 하나. “모두 돈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거야”라고 설명하면 이상하게 아귀가 정말로 잘 맞는 사건이 많다. 특히 종교가 그렇다.
사실은 돈이 아니라 긍휼(엘레오스, 헤시드), 그게 답이다. 참고로 엘레오스에서 이름을 딴 ‘엘레오틴’이란 제품이 아주 좋다는 소문이 있다.
불교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무진회사’라는 단어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신가 모르겠다. 일본에 가면 아직 그 명칭이 남아있다. 신용금고를 의미한다. 서민을 대상으로 상당히 높은 이자를 받는 금융업을 하는 회사다. 일본에는 우리보다 불교의 흔적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데, 예를 들어 캐논 사진기의 캐논도 ‘관음’의 일본발음 ‘카노온’에서 나온 거다. 드래곤 볼이라는 대히트 만화 속의 ‘고쿠’도 손오공의 悟空, 모든 것이 공이라는 것을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다.
무진회사의 ‘무진’은 ‘무진장’의 무진이다. ‘무진장’은 현대 한국어에서는 ‘디립다’(들입다의 방언)의 비슷한 말로 쓰이는데, 사실은 아주 심각한 의미를 가진 종교용어다. 즉 아무리 써도써도 없어지지 않는 보배를 뜻하는 ‘Unexhaustible Treasure’를 의미한다.
여기서 잠깐 주제에 벗어났다가 다시 오자. 불교에 관해서 공부하려면 영어서적을 통해서 공부하는 것이 훨씬 머리에 잘 들어올 적이 많다. 서양사람들이 불교를 접한 것은 비교적 근대라서, 그 사람들의 새로운 눈으로 정리하여서 관점과 서술이 신선하다. 그리고 우리도 근대 서양교육을 받아서 관념자체가 서양적인 요소가 많다. 이에 따라 서양사람들이 영어로 정리해놓은 불교가 이해하기 쉬울 때가 왕왕 있다. 단지 Mahayana같은 용어 뒤에 한자로 대승(大乘)이라고 붙여주면 좋으련만 그렇게까지 친절한 영어책은 없다. 그래서 불교용어사전 앱을 만들어서, 읽을 적에 절로 뜨게 하면 참 좋을 것이라고 희망하여 본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
‘무진(無盡)’이라는 컨셉은 불교에만 발견되는 아주 독특한 컨셉이다. Primordial Debt 즉 업보는 억만 겁에 걸쳐서 쌓인 것이다. 따라서 내가 지금 하는 임시적 행위로서 도저히 갚을 수는 없다. 자기 손가락을 태우는 행위,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태우는 행위로도 Primordial Debt의극히 일부분도 갚질 못하는 거다. 대부분의 우리들의 행위는 오히려 업보를 더 쌓을 뿐이다.
방법은 단 하나. 영원히 지속하는 그 무엇에 선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사찰에서 운영하는 서민들에게 고리로 돈을 꾸어주는 금융업, 즉 무진회사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거기에 투자금을 기부해주고, 나오는 이자로 선행을 하면 영원한 빚을 어느 정도 갚게 되는 것이다. 왜냐면 영원히 지속될 회사에서 나오는 이익금은 영원히 나올 것이니 내가 기부한 돈으로 하는 선행도 영원할 것이다.
로직이 컴팩하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남의 돈을 슈킹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구라’는 준비해야 한다. 그게 최소한의 성의요, 예의다. 그저 “돈 바치라”고 악악 거려봐야 사실은 더 움츠려든다. 가끔 보면, 십일조 안 바친다고 화 내는 목사님들도 계신다. 어디서는 십일조 안 내는 장로 제명한다고 겁을 준다는 얘기도 들린다. 오죽 급했으면…그 옆에다 십일조가 아니라 0.9조만 바쳐도 교인자격이 유지된다는 교회를 차리면, 0.8조만 내도 된다는 교회가 나오기 전까진 성업을 할 것이다. 답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