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쓴 ‘대한민국 건국사’···한반도 분단은 1945년 9월 스탈린 지령서 시작

<사진=뉴시스>

스탈린 1945년 9월20일 “북한에 민주기지를 건설하라”?지령?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대한민국 건국사>가 출간되었다. 건국사는 학술서적이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회’가 취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이념적 입장이다. <건국사>는 대한민국의 연원을 1919년 기미독립만세운동에 두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것도 여기에서 촉발된 것이며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고 하여 이것이 대한민국의 건립은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건국사>는 일제 강점기 국내외 독립운동을 포괄하였으며, 중국과 만주에서의 좌익 활동도 포함하였다. 청산리 대첩 이후 독립전쟁이 사실상 종식되고 1930년대 김구가 지도한 의열단 투쟁이 독립운동의 주류가 되는 것을 부각시켰다. 윤봉길 의사의 장거가 장개석에 감동을 주어 한국의 독립을 약속한 카이로선언에 작용하게 된 경과도 추적하였다.

<건국사>는 대한민국의 건국에 기여한 최고의 인물을 이승만 박사로 보고 그의 사상과 행적의 전개를 추적하였다. 그는 1875년생으로 구한말 독립협회 활동으로 투옥됐다.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이승만은 미국 프린스턴 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받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그는 서방 지성인이 소련의 볼셰비키혁명에 막연한 동경을 하고 있던 1930년대 초반에 이미 소련의 실상을 간파하였다. 그는 또한 일본의 1941년 진주만 기습이 일어나기 전에 일본의 침략야욕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처럼 이승만은 루스벨트 대통령과 미 국무부 간부들을 경륜에서 압도하고 있었다. 미국은 1947년 트루먼에 이르러서야 소련의 실상을 알게 되고, 이승만은 트루먼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을 건설한 것이다.

<건국사>는 한반도 분단의 기원을 1945년 9월20일 북한에 민주기지를 건설하라는 스탈린의 지령에 두었다. 이 사실은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된 다음에야 밝혀진 것이다. 스티코프가 북한 지령을 담당한 사실도 샅샅이 밝혀졌다. 이를 보지 못한 1970~80년대 해방공간의 연구는 허구다. 이승만이 이 문서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나, 지성과 경륜으로서 이를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다. 애국자로서 김구는 이승만에 못지않은 민족의 영수이나, 국제정치의 냉엄한 흐름을 간파하지 못하여 대한민국의 건국을 반대하고 북행, 결국 김일성에 농락당한 과정도 살펴보았다.

<건국사>는 가급적 사실과 기록을 직접 인용하여 스스로 사실을 말하게 하였다.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이 새로운 사실 즉 “한국의 분단은 1945년 9월20일 이미 결정된 것”을 알게 되면 생각을 바꾸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는 바꾸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 등으로 시작된 이승만 독재는 누구도 옹호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사실상 끌고 온 이승만의 혜안과 공적도 가려질 수 없다. 이승만이 있었다는 것, 마침 트루먼이 소련의 공세를 봉쇄하는 대외전략의 전환을 단행할 수 있었다는 것은 천운이었다. 그러기에 트루먼은 6.25가 터지자 소련의 공세가 시작되었음을 직감하여 미군을 즉각 참전시켰던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사>는 이러한 과정과 논리를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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