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 칼럼] 일본 재무장·중국 중무장 속 박근혜의 선택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일본의 재무장과 중국의 중무장이 격돌한다. 안보법제 정비로 보통국가화 하는 일본은 1930년대의 독일의 재무장을 보는 것 같고, 시진핑의 군사굴기를 보고 있으면 1930년대의 일본의 질주를 보는 것 같다. 특히 중국의 군사 엘리트는 만주사변을 일으킨 관동군 참모들과 같이 기세등등하다. 모두 유쾌한 일이 아니며 우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극도의 주의를 요하되, 마냥 불안해 할 것만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이 국부적으로나마 충돌한다면? 코끼리와 고래가 밀고 당기는 것을 보고 북을 치는 토끼가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록히드 마틴이 수주하면서 trade-off로 약속한 F-35에 들어가게 될 핵심기술 이전을 미국정부가 거부하였다고 한다. 한미관계가 혈맹이라면서 이럴 수가 있는가? 국제정세는 이래저래 어려워져 간다.

시진핑이 전승절에서 연출한 일사불란한 수만의 병사들은 존엄을 가진 인간이 아니다. “독일은 이렇게 싸웠다”에 나오는 거대한 기계다. 중공은 전체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어차피 공산독재는 스탈린과 같이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돼서는 스웨덴의 팔메등이 실천해왔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도 설 자리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아베는 의회 다수를 확보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의회독재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다가는 일본 의회는 소화의 대정익찬회, 한국의 유신정우회와 같은 도구로 전락한다. 극단적 단순화이지만 이렇게 그림을 그려놓고 감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한국의 서대문 형무소에서 무릎을 꿇었던 하토야마 유키오 같은 정치인은 소화시대 고노에 후미마로와 같은 공경(公卿)처럼 대중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정치가 남의 일이 아니다.

국회가 롯데의 신동빈 회장을 불러놓고 작란(作亂)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한국의 의회권력도 지나치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통감한다. 국회가 국정감사에 사인(私人)을 부를 수 있는가? 사인(私人)이 국회 증인출석을 거부하면 벌금을 문다고 한다. 그 이상의 강제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신동빈 회장의 출석이 10대 재벌그룹 총수의 출석으로는 처음이라고 하는데, 이제 이에 대한 근본문제부터 접근해보자. 신 회장이 “x가 무서워서 피하지 더러워서 피하냐?”는 심정에서 국회에 출석하였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 국회가 희화화되는 것이다.

영국이 대처 이래 중흥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영국은 한때 실업률이 8%까지 치솟고, 세수는 줄고, 실업급여는 늘어나면서 재정적자는 1700억 파운드를 웃돌았다. 그러나 2010년 캐머런 총리가 집권한지 5년만인 지금 영국은 G7가운데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승승장구하며, 그동안 800억 파운드의 빚을 갚고 2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캐머런의 리더십은 ‘일자리 창출과 복지개혁 올인에 집중’, ‘끊임없이 정재계와 국민을 설득’, ‘나머지 정책은 장관에게 맡기는 위임’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영국 정계에서 순발력과 소통 능력이 가장 뛰어난 캐머런은 자신과 자신의 정책을 어떻게 세일즈하고 대중을 설득할지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역시 선진국은 인물이 많은 나라이다.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에 바라고 싶은 리더십도 ‘바로 이것’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대선뿐 아니라, 총선에서도 이러한 집중, 설득, 위임의 리더십을 보이는 주자를 보고 싶다. 자질로 보나 행적으로 보나, 터무니없는 자들이 정치판에서 횡행하고 있으니 신동빈 사건과 같은 웃음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국민은 정치권에 이승만, 신익희, 조병옥 같은 큰 인물을 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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