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22] 이승만 시대 조봉암 사형집행 정치보복 첫 사례
원한은 덕으로 보답하라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사)아시아기자협회 부이사장] 보복은 원한감정에 의해 촉발되는 사적인 행동으로, 주로 격정을 제어하지 못하여 벌어진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시에 비이성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인들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계몽을 펼쳤다.
격정의 감정은 주체하기 힘든다. 그것은 폭발적이며 우발적이기에 제어하기가 무척 어렵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란 용이하지 않다.
니체는 강자에 대한 약자들의 원한감정을 ‘르상티망(ressen timent)’이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이를 니체의 입장에서 해석해 본다면 땅을 사지 못한 약자의 질투 내지는 원한을 표현한 속담이라 할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원수에 대해 응징을 할 방법이 없는 약자들의 시기와 질투를 표현한 말이라는 게 니체의 생각이다.
일견 공감이 가는 바도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인간에 대한 일면적 고찰에 근거한 협소한 판단이라 여겨진다. 인간은 격정에 의해 행동하는 비합리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보다 높은 차원으로 자신의 삶을 지양해가는 반성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강자의 보복이나 약자의 원한은 둘 다 극복되어야 할 것들이다. 사적인 감정과 행동의 표출은 사회라는 공공의 영역에서는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이유는, 한 나라의 지도자나 고위층의 관료들이 갑이라는 위치를 활용해 타인에게 사사로운 원한을 앞세워 보복을 감행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큰 것은 작은 데서 생기고 많은 것은 적은 데서 생긴다. 원한은 덕으로 보답하라(大小多少 報怨以德)”고 했다. 사사롭고 작은 일에서 원한과 같은 큰 문제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노자는 원한은 보복이 아닌 덕으로 보답하라고 했다. 인간사의 골칫거리인 보복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힘은 덕치에 있다.
사마천이 <혹리열전> 서두에서 “상덕은 덕을 의식하지 않으므로 덕을 지니게 되고, 하덕은 덕을 잃으려 하지 않으므로 덕을 지니지 못한다”는 <도덕경> 구절을 인용한 이유도 통치의 근본이 덕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 서문에 해당하는 ‘태사공자서’에서 도가사상의 요체를 “행동을 무형의 도에 들어맞게 하며, 만물을 풍족하게 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사실, 덕을 의식하지 않으므로 덕을 지니게 된다는 노자의 말은 앞뒤가 없는 공허한 말장난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노자의 말이 통치자의 덕치와 어떤 연관이 있는 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사마천은 도가의 통치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가는 ‘억지로’ 하는 것이 없음無爲을 주장하면서 ‘하지 않음이 없는無爲不’ 것을 말하고 있는데……실질이 그 명분에 들어맞는 것을 바름端이라 하고, 그 실질이 명분에 들어맞지 않는 것을 거짓?이라고 한다. 거짓된 말?言을 듣지 않으면 간사한 신하는 생겨나지 않고,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가 자연스럽게 구분되며, 흰색과 검은 색이 즉시 드러나게 된다. 이와 같이 운용하고자 한다면 무슨 일이든지 이루어지게 되고, 천지자연의 도와 합치되어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상태로 들어가며, 천하를 밝게 비추어 다시 이름 없는無名 경지로 돌아가게 된다. <태사공자서>
바름이란 실질과 명분이 들어맞는 것이고, 거짓이란 실질과 명분이 합치하지 않는 것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논리가 도가 통치철학의 근본바탕이다. 이것은 통치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반에 두루 적용되는 도가의 논리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바는 바로 실질과 명분의 관계다.
실질이란 ‘실제로 있는 본바탕’이며, 명분은 ‘각각의 이름이나 신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나 일을 꾀할 때 내세우는 구실이나 이유 따위’를 뜻한다.
정치보복은 실질과 명분이 어긋나는 데서 행해진다. 이승만 대통령이 조봉암을 제거한 경우를 살펴보면, 명분은 국가의 안위를 위한 것이라 했지만 내심은 조봉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보복을 가한 것이다. 명분은 법질서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내심은 정적의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표적수사가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배경에는 바로 명분과 실질의 괴리가 도사리고 있다.
국가의 통치자나 조직의 지도자가 사사로운 감정이나 원한을 앞세워 보복행동을 하면 국민들은 그 지도자가 아무리 타당한 정책을 내세운다 해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덕이 없는 지도자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노자는 원한을 덕으로 갚으라 했다.
유방과 정조, 링컨의 통 큰 정치
11살의 나이에 자신의 생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것을 목도한 정조는 어렵게 왕좌에 올랐다. 정조는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노론세력에 대해 충분히 복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리하지 않았다. 정조는 노론, 소론, 남인까지 아우르며 골고루 인재를 등용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된 후 자신을 도왔던 공화당의 인물보다는 자신과 경쟁했던 민주당의 인물들을 내각의 요직에 더 많이 기용한 것은 물론 자신의 최대 정적이었던 윌리엄 슈어드를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정조와 링컨은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을 억누르고 국가경영을 위해 정적을 포용하는 정책을 펼쳤기에 두 사람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대의를 위해 개인의 사사로운 원한을 버리는 것이 통치자의 참모습이다. 유방은 자신을 곤경에 빠뜨렸던 항우의 신하 계포季布를 잡기 위해 현상금을 내걸었다. 계포는 복양현?陽縣의 주씨周氏 집에 숨었다. 주씨는 그가 계포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집은 위험하니 다소 불편하더라도 일신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계책대로 따라줄 것을 요구 했다. 계포는 그의 계책에 따라 노예처럼 머리를 깎고 칼을 찬 채로 노나라의 주가朱家에게 노예로 팔려갔다. 주가도 그 노예가 계포임을 짐작하고, 유방의 신하인 하후영夏候瓔을 찾아가 계포란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었다. 하후영이 어진 사람이라고 하자 때를 놓치지 않고 주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하는 저마다 자신의 군주를 위하여 일합니다. 계포가 항우를 위해서 일한 것은 그 자신이 할 일을 다 한 것뿐입니다. 항우의 신하라면 다 죽여야 한다는 말입니까? 지금 황상께서는 이제 막 천하를 얻으셨는데, 자신의 사사로운 원한으로 한 사람을 찾고 있으니, 어찌 천하 사람들에게 황상의 도량이 좁다는 것을 보이십니까!……이는 장사를 꺼려서 적국을 이롭게 하는 것과 같은데, 오자서가 초나라 평왕의 묘를 파헤쳐 그 시신에 매질을 한 것과 같은 원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째서 이 일을 조용히 황상에게 말씀드리지 않으십니까? <계포?난포열절>
유방은 천하를 얻었는데 어찌 속 좁게 당신이 어진 사람이라고 말한 계포를 못 잡아 안달이냐는 것이 주가의 말이다. 하후영이 주가가 한 말을 유방에게 그대로 고하자 유방은 계포를 용서한다. 군주가 사사로운 원한에 집착하는 것은 그 스스로가 도량이 좁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며, 군주의 도량이 좁은 것은 결국에는 적국을 이롭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바 그것을 바르게 고하지 않는 하후영 당신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주가의 직언은 우리시대 지식인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