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 “아녀자에게 속은 것도 운명이다”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한신은 괴통의 말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유방과 자신은 그런 사이가 아니라며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남의 우환을 제 몸에 지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제 마음에 품고, 남의 것을 먹으면 그의 일을 위하여 죽는다고 합니다. 내가 어떻게 이익을 바라고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며 괴통의 제안을 거절한다. 유방은 나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누어 준 인물인데 내가 어찌 그를 배반하겠냐는 한신의 마음은 나로서도 참으로 애석하게 다가오는데 하물며 간언의 당사자인 괴통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괴통은 성산왕과 성안군은 세상에 둘도 없는 사이였지만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이유에 대해 “우환이라는 것은 욕심이 많은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며 문종의 토사구팽에 대해 다시 상기시키지만 한신은 괴통의 제안을 거절하여 결국에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괴통의 판단과 분석은 매우 현명한 것이었다. 만약 한신의 공적이 없었다면 유방은 항우를 꺾을 수 없었다. 한신의 공은 실로 유방의 위치를 위협할 정도였기에 유방도 내심 그를 경계했다.
괴통은 만약 한신이 유방을 도와 항우를 물리치게 된다면 한신은 문종처럼 토사구팽을 당할 것이라 예견하고 있었다. 지략이 뛰어나서 군주를 떨게 만드는 자는 자신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게 되면 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공로는 천하에 둘도 없고, 지략은 아무 시대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천하를 삼분할 것을 권한 괴통의 제안을 한신이 받아들였다면 중국의 역사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르게 진행이 되었을 거다. 후에 한신은 절규한다.
과연 사람들의 말에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진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혜와 지모가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회음후열전>)
괴통은 남의 의견을 듣는 것이 일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조짐이라고 했다. 한신이 모반을 꾀하려다 실패하고 유방에게 잡혀 토사구팽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읊조린 사태는 바로 남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어쨌든 유방은 한신을 용서하고 초나라 왕에서 강등시켜 회음후로 삼았다. 한신은 이 일이 있은 후 유방이 자기의 지략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병을 핑계로 그와의 만남을 피하며 다시금 모반을 꾀하다 여태후의 계략에 넘어가 결국에는 목이 잘려 죽게 된다. 이때 한신은 “괴통의 계략을 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아녀자에게 속은 것도 어찌 운명이 아니겠는가?”라고 탄식한다.
때마침 거록군鉅鹿郡의 태수 진희陳稀를 토벌하고 돌아온 유방은 한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편으로는 기쁘게 한편으로는 안타깝게 여기며 한신으로 하여금 모반을 꾀하게 한 괴통을 잡아들이라고 하였다. 유방이 괴통에게 한신을 꼬드긴 죄로 삶아죽이겠다고 하자 괴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척이 기르는 개가 요 임금을 보고 짖은 것은 요 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개는 본래 자기 주인이 아닌 사람을 보면 짖게 마련입니다. 그 당시 저는 한신만을 알았을 뿐 폐하는 알지 못했습니다. 또 천하에 칼날을 날카롭게 갈아서 폐하가 하신 일과 똑같이 하려고 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능력이 모자랐을 뿐입니다. 그러면 폐하께서는 그들을 모두 삶아 죽이겠습니까? (<회음후열전>)
괴통의 말을 들은 유방은 그를 풀어주었다. ‘개는 본래 자기 주인이 아닌 사람을 보면 짖게 마련桀犬吠堯’이라는 괴통의 논리는 참으로 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개의 처지로 격하시킬 수 있는 처세가 어찌 보면 비굴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그러한 태도가 2인자로 살아가는 인물들의 생존법이라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